그대가 성경에서 보는 예수님도, 열두 제자도, 바울도, ‘인간관계’라는 관점에서는 모두 실패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 같은 고결한 인격이 어디 있을까요? 그러나 그분은 언제나 어디서나 미움을 받았고, 오해를 받았고, 핍박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가장 아끼는 열두 제자들에게 배신까지 당했습니다. 세상에 이런 실패자가 어디 있을까요? p.21
‘나와 나’의 관계를 생각할 때 그대가 정말 잊어버리기 쉬운 감각은 ‘나’라는 존재의 무게감입니다. 나는 그 자체로 사랑받기에 충분한 사람입니다. 적어도 그대와 내가 우주 같은 공통점인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는 이 사실을 복음으로 믿는 것입니다. p.36
그대가 위대해지거나 아름다워지는 유일한 방법은, 존재의 변화입니다. 그대에게 주어진 인생이라는 땅에, 그분의 말씀을 기경하는 존재의 변화입니다. p.63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나와 나’의 관계를 힘들어하는 이유는, 나의 역사 속에 얼룩진 상처 때문입니다. 무방비 상태로 있다가, 생각지도 못한 지점에 ‘나’는 상처를 받습니다. 타인의 작은 말과 행동, 혹은 오해, 또는 어떤 상황에 대해서 말입니다. p.66
사실 그들은 예수님의 ‘이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대상’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군중을 상대하셨던 지점을 생각해봅시다. 오병이어, 산상수훈, 호산나 사건 등등 모두 예수님의 ‘이웃’이 아니었습니다. 모두 예수님의 ‘사역의 대상’이었습니다. p.102-103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면서, 그들에게 섬김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그 섬김은 나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옆에 있는 사람에게도 동일한 것입니다. 그런 ‘서로’는 예수님이 스스로 종이 되어 발을 씻어줄 만큼, 귀하고 아름다우며,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일깨워준 것입니다. 그 이유는 결국 그들이 하나님나라에 함께 들어갈 동역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공동체에 있는 ‘나’ 혼자가 아니라, ‘너’와 함께 말입니다. p.123
그러니 신앙을 키운다는 참된 의미는,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점점 나의 주도권이 이양되는 과정인 것입니다. 즉, 그대는 이 과정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매듭이라고 하겠습니다. 아니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매듭입니다. p.169
하나님의 공간은 광야입니다. 하나님은 당신과 관계있는 사람들을 당신의 공간인 광야로 부르십니다. 하나님은 이 공간으로, 당신의 사람들을 부르지 않으신 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그의 아들인 예수마저도 이 공간에서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그 공간에서 책상에서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살아계심을 경험하게 합니다. 그 공간에서 인간은 자기부인과 하나님시인의 명확한 차이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 광야에서, 자신의 인생을 다르게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p.183-184
그리스도인의 관계를 다시 한번 성찰합시다. 그대는 결국 이 세상에서 이해받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또한 이 세상에서의 인정이 전부가 아닌 사람입니다. 그대는 교회라는 공동체에서 이해를 받고 힘을 얻고, 세상에 나아가야 하는 존재입니다. 이 당연한 섭리를 거부해서는 안 됩니다. p.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