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우리 몸의 상태는 하나님과 그분이 일하는 방식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영향을 미친다. 만약 밝은 빛이나 큰 소리로 인해 만성 편두통에 시달리는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은 화려한 조명을 비추거나 볼륨이 큰 음악을 사용하는 예배에 참석하는 것을 망설일 것이다. 밝은 빛이나 큰 소리가 나는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 사람이 믿음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판단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는 단지 본능적인 회피이기 때문이다.
p. 22
우리는 사람들이 예수님과 그분의 나라를 바라보도록 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새롭게 배울 필요가 있다. 슬로건이나 손쉬운 해결책, 피상적인 답변과 같은 것이 아닌, 병자들을 고치고 십자가에 달려서 인간의 고통과 죽음을 직접 체험하셨던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의 심오한 구속의 사랑을 사람들이 바라보도록 해야 한다. 예수님의 삶, 죽음, 부활은 우리가 사는 세상, 우리가 있는 자리, 우리가 당하는 고통, 신앙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방식을 계속 재구성하게 한다.
p. 45
창조물인 우리는 매우 연약한 존재들이다. 우리가 그렇지 않다고 포장하거나 연기하는 것은 우리나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상호의존과 교제는 인생과 행복한 관계를 위한 필수요소이다. 타락한 세상의 멸망이라는 어두운 전망 가운데 미래를 통제하거나 예측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는 우리로서는 주어진 매일의 삶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현재의 상태나 전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함과 사랑에 의지하여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약 4:13-16).
p. 100
하나님이 우리의 죄와 고통을 책임지는 방법은 우리 중 하나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대답은 성자의 성육신, 죽음에 이르는 고통, 몸의 부활이다. 하나님은 이 세 가지 사역으로 우리의 죄, 비참함, 고통과 싸움에 대한 책임을 지신다. 이것은 멀리 떨어져 있는 무관심한 하나님 개념을 반박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 우주적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이 세상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p. 117
예수님의 관심은 나사로를 포함하여 일시적으로 다시 살리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예수님이 약속한 “영원한 생명”은 끝없는 고난이나 고통의 삶이 아니다. 하나님도 그런 약속을 절대 하지 않았다. 그런 영원한 삶은 선물이 아니라 저주일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의 아들은 새로운 생명, 영원한 생명, 궁극적으로 죄와 저주에서 해방된 삶을 약속했다(cf. 요 5:26-29). 이 삶은 자유롭게 삼위일체 하나님을 경배하며 죄와 사망의 결과에서 벗어난다.
p. 177
이 책의 주요 작동 원리는 실재주의(realism)이다. 즉, 복잡한 실재로서 고통을 계속 추적하며, 사람들 사이의 다양한 상호작용의 실제 효과를 조사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실제적 구원의 의미를 고찰한다. 따라서 우리는 고통을 하찮게 여기거나 가볍게 다루는 것을 거부한다. 또한, 실재주의는 아픔을 겪는 사람들의 고통을 감정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경계한다. 사명은 아무리 작은 고통이라도 그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자기 고통을 넘어서 다른 사람에게까지 확장되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경험하게 한다.
p. 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