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오웬
종교 개혁 이후 교회사 속에서 그 신학적 영향력과 영적 감화력에 있어서 존 칼빈(John Calvin, 1509-1564)과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청교도를 대표하는 가장 탁월한 신학자’ 중 한 사람이다.
영국 오스퍼드주 시골의 청빈하고 근면한 청교도 교구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존 오웬은, 열 두 살에 옥스퍼드 퀸즈 대학에 입학하여 열여섯에 문학사를, 열 아홉에 문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수재였다. 에섹스의 포드햄에서 첫 번째 목회를 시작한 그는 그곳에서 11명의 자녀중 1명을 제외한 모두를 잃는 시련을 겪기도 하였다.
그는 영국 의회로부터 자주 설교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는데, 이를 통해 올리버 크롬웰의 눈에 띄어 궁중 목사가 된다. 이 후 오웬은 크롬웰의 후원을 받아 옥스퍼드 대학의 부총장이 되지만, 1660년 크롬웰의 공화정이 물러나고 왕정 복구가 이루어짐에 따라 그의 남은 28년의 여생을 가택에 연금된 상태로 보내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고난의 세월은 오히려 그에게 신학적 연구와 저작을 본격적으로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고, 그 기간 중 80여권의 설교집, 강의록, 소논문, 주석 강해서 등의 방대한 저서를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