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위해서는 바쁘고 하나님을 위해서는 게으른 이들을 향한 영적 권고
방종을 미덕으로 여기고 더 많이 쉬지 않음을 어리석게 여기는 이 시대를 위한 처방
욜로와 소확행의 시대를 지나 갓생을 외치는 때에 필요한 가치 있는 삶의 원칙
40만 독자가 선택한 그 책
출간 20주년 200쇄 기념 NEW EDITION
게으름 죽임 없이는 거룩한 삶도 없습니다.
게으름은 마음에 뿌리를 내린 그릇된 자기 사랑입니다.
영혼의 변화 없이는 게으름과 결별할 수 없으며
게으름과의 결별 없이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모든 악한 욕망이 그러하듯이 게으름 역시 은밀하게 숨겨져 있어 그 심각성을 깨닫기가 쉽지 않습니다. 게으름은 거룩한 삶의 은밀한 대적입니다. 게으름은 정체를 숨긴 채 우리의 신앙을 병들게 하고 우리의 삶을 갉아먹는 영혼의 바이러스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성숙을 방해하는 이 게으름을 버리지 않고는 참된 영광과 기쁨에 이르는 길을 갈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것을 찾아 나서고자 합니다. 이것은 일찍이 없던 영적 탐구의 여정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그 뿌리를 찾아내고 과감한 수술을 시작할 것입니다. 칼날은 말씀이고 집도의(執刀醫)는 성령이십니다. 마음과 성품 갈피갈피 배어 있는 게으름을 찾아서 도려낼 것입니다. 무척 아플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해야만 살 수 있습니다.
“실은 이러하다. 우리가 받은 인생이 짧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인생의 시간이 모자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낭비하는 것이다”(Ita est: non accipimus brevem vitam, sed facimus, nec inopes eius sed prodigi sumus).
세네카(Lucius Annaeus Seneca, BC 4-AD 65), 〈인생의 짧음에 관하여〉(De Brevitate Vitae) 중에서
게으름에 관한 잠언의 교훈을 통해 참된 행복을 누리며 보람 있게 사는 길을 제시한 김남준 목사의 〈게으름〉은 2003년 출간 즉시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200쇄가 넘게 중쇄를 거듭해 온 초특급 베스트셀러이다. 일상에 쫓겨 바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진정으로 의미 있는 부지런함을 정의해 주고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을 가치 있게 살기 위해 삶의 우선순위를 어떻게 재편해야 하는지 알려 주는 이 실천적 잠언 묵상서는 지나가는 세월이 무색하게 한결같은 위력으로 수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리며 애독되어 왔다. 팬데믹 사태와 전쟁, 환경과 기후의 위기 등을 겪으면서 욜로와 소확행의 시대를 지나 갓생을 외치는 시대에 접어든 지금, 부지런함과 게으름에 대한 새로운 성찰이 절실하게 된 이때에, 이 책은 한국 사회와 교회에 여전히 꼭 필요한 조언과 지혜를 제공해 준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에 힘입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고 정죄함이 없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그러나 옛 성품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진 것은 아니기에 끊임없이 그릇된 욕심을 따라 살려는 옛사람을 벗어 버려야 한다. 김남준 목사의 〈게으름〉은 이 그릇된 욕망 중에서도 마음의 부패에 뿌리를 내리고 거룩한 삶을 훼방하는 은밀한 대적 게으름을 다루고 있다.
우리의 삶은 유한하고 그만큼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소중하다. 그 시간은 무작정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의미 있게 살라고 주신 것이다. 정해진 인생을 낭비하는 것은 하나님의 시간을 도적질하고 하나님 앞에 불충하는 죄이다. 그러나 곁눈질할 사이 없이 바쁘게 산다고 진실로 부지런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할 수 없음도 알아야 한다. 방향이 없으면서 부지런한 것은 하나님이 의도하시고 기대하시는 삶이 아니다. 게으름과 부지런함은 단지 삶의 태도가 아니라 삶의 방향과 관계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아무리 분주하게 살아도 거룩한 목표가 없으면 게으른 삶과 다를 바 없다.
김남준 목사의 〈게으름〉은 이와 같이 우리가 육체의 욕망을 성취함에는 부지런하고 선한 의무를 실천함에는 한없이 게으름을 지적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동분서주하며 사는 것은 부지런한 것이 아님을 신랄하게 들추어낸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의 영적 성숙을 막고 삶을 헛되이 소모시키는 게으름의 진면목을 간파하고 그 위험성을 각성하여 그것과 철저하게 싸울 결심을 하도록 인도한다. 그리고 그런 결심의 실행은 영혼의 변화 없이는 이루기 어렵기에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 앞에 은혜를 구할 것을 촉구한다.
경계심 없이 자기 욕망을 따라 사는 현대인들에게 게으름이 얼마나 악독한 영혼의 병원(病原)인가를 경고하고, 치명적인 질환이 있는 환자가 필요한 수술을 감행하듯 마음속에 있는 게으름의 뿌리를 찾아내어 근본부터 잘라 낼 것을 권고한다. 다시 말해, 내면에 감춰져 있는 추악한 게으름의 성향을 들여다보고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 영혼의 병의 근본적인 원인을 도려내고 떼어내는 영적 수술을 감당하도록 격려해 준다. 그럼으로써 종국에는 가난과 궁핍에 떨어지게 하고야 마는 게으름의 파멸적인 결과에 대비하고 강도같이 군대와도 같이 예기치 않게 밀려올 삶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환멸스럽고 쓰라린 그 시간을 감당해 낸 후 맞이하게 될 찬란하고 의미 있는 새로운 삶을 조망할 수 있도록 해준다.
더 많이 쉬는 것이 인생의 복락임을 강조하고, 열심히 사는 것이 전근대적 가르침이고 게으르게 사는 것이 현대적 가르침인 것처럼 여기는 이 시대에, 김남준 목사의 〈게으름〉은 세속적인 안락함에 대한 추구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삶이 참으로 모든 속박을 끊고 자유인의 길을 걷는 삶임을 가르쳐 줌으로써 풍요로운 가운데 결핍을 겪는 이들에게 20년 전에 출간되었을 때와 다를 바 없이 강력한 도전과 혜안을 준다.
세상에서의 삶의 짧음을 환기시키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 싶어도 시간이 없으면 삶으로 펼칠 수 없다는 단순한 진리를 뼈에 사무치도록 일깨워 주는 이 걸작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깨뜨리며 우리의 존귀한 속성을 무너뜨리는 게으름의 병증을 진단하고 부디 그 영혼의 대적과 헤어질 결심을 할 것을 간절히 소원하는 바이다.
이 〈게으름〉 뉴 에디션은 20년 만에 리뉴얼하면서 한층 더 세련되고 산뜻한 모습으로 단장했으나, 기존판의 주제와 신념은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다만 지금의 독자들이 더 잘 이해하고 체화할 수 있도록 그 주옥같은 가르침들을 더욱 담백하고 깔끔한 문체로 정리하여 메시지의 전달성과 시의성을 높였다. 세월이 흐를수록 깊어져 가는 작가의 심원한 통찰의 세계를 산문시의 시구와도 같은 향기롭고 여운 짙은 문장을 통해 더욱 인상적으로 읽고 깨달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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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자의 삶에는 진보가 없습니다. 도전이 없는 삶을 되풀이합니다. 성경은 게으른 자의 모습을 희화하여 묘사합니다. “문짝이 돌쩌귀를 따라서 도는 것같이 게으른 자는 침상에서 도느니라”(잠 26:14).
돌쩌귀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돌쩌귀란 문짝을 문설주에 달아서 여닫히게 한 장치로, 힌지(hinge)라고도 합니다. 문을 지탱하면서 동시에 열렸다 닫혔다 움직일 수 있도록 문 아래와 위의 문틀에 박는 장치인데, 각각 암수 두 개의 쇠붙이로 되어 있습니다. 일단 이 돌쩌귀를 달고 나면 문짝은 열리든 닫히든 계속 이를 따라 돌게 됩니다.
게으른 사람은 침대를 중심으로 움직입니다. 침대가 생활의 돌쩌귀가 되어서 거기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것 따라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게으른 사람이 못 하는 일이 있습니다. 선한 일을 위해 마음을 쏟아붓는 것입니다. 게으른 사람에게도 꿈은 있습니다. 그런데 그 꿈은 언제나 ‘……였으면’으로 시작해서 ‘……할 텐데’로 끝납니다. 그것은 희망 사항이지 꿈은 아닙니다. 진정한 꿈은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대가를 치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게으른 사람은 꿈이 없기에 목표도 분명치 않습니다. [중략]
무언가를 희망하는 데는 비용이 들지 않습니다. 다만 욕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희생이 뒤따라야 합니다. [중략]
그리스도인의 삶은 선하게 질서 지워진 삶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충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단지 한 가지 일만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모든 삶의 궁극적인 목표와 관련된 것입니다. 충성스러운 사람의 라이프 스타일은 단순합니다. 한 가지 뚜렷한 목표를 정하고 거기에 맞추어 자신의 삶 전체를 질서 짓는 것입니다.
청교도 존 오웬(John Owen, 1616-1683)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그리스도인의 특징을 ‘목적의 하나 됨’으로 제시했습니다. 즉, 인생의 목표는 하나님이 그 사람을 구원하신 목표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그것은 단지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삶의 모든 부분이 그 목표에 맞도록 재편된 생활입니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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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한 사람의 마음은 반짝이는 거울과 같습니다. 자신의 삶을 정확하게 성찰합니다. 순간순간 반성합니다.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 나는 잘 살고 있는가?’ 이런 사람은 자기 생활을 고칠 수 있습니다. 그때 바람직한 변화가 나타납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자기의 약함을 깨닫고, 겸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왜 마음이 침상을 뒹굽니까? 선한 의무에 대해 싫증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선한 의무에 대한 열심이 사라지면, 마음은 부패한 정욕에 물들게 됩니다.
은혜를 받았다고 삶의 현장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직장에 다니고, 가정을 돌보며, 학교를 다닙니다. 은혜를 받아도, 시험에 들어도 일상생활의 틀은 바뀌지 않습니다. 일상만 보면 참된 신자인지, 게으른 사람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참된 신자와 게으른 사람은 서로 다른 삶을 삽니다. 한 사람은 열렬한 영혼으로, 또 다른 사람은 싫증난 영혼으로 살아갑니다. 저 사람은 죽은 자로 살고, 이 사람은 산 자로 살아갑니다. 저 사람을 통해서는 모욕을 받으시고, 이 사람을 통해서는 영광을 받으십니다.
환경이 좋아지면 열심히 살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환경은 우리 편이 아닙니다. 극복하고 이겨야 할 대상입니다. 인생을 엉망으로 만드는 것은 환경이 아니라, 게으름입니다.
마음의 게으름은 영혼까지 망가뜨립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도 깨뜨립니다. 다른 사람에게 그릇된 영향을 줍니다. 존귀하게 태어난 사람이 이웃에 누를 끼치며 살게 합니다.
매일 바쁘게 지내지만, 하나님 없이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뜻 없이 되풀이되는 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일은 하는데, 정작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는 사라지지 않았습니까? 바쁘게 살아도 그것은 게으른 삶입니다.
껍질뿐인 신앙의 속을 들여다보십시오. 하나님 사랑으로 채워지지 않는 자신의 마음을 보십시오. 게으른 삶을 살고 있는 영혼의 상태를 진단해 보십시오.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을 살면서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십시오. 인생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게으름과 헤어질 결심을 해야 할 때입니다.
〈제2장. 게으름의 뿌리, 자기 사랑〉 p. 48-65 중에서
게으르기로 소문난 농부가 있었습니다. 그날도 다른 식구들은 모두 밭으로 일하러 가고, 혼자 집에 남아 하루 종일 빈둥거리고 있었습니다. 나른한 오후, 대청마루에 누워 낮잠을 자고 있는데 이상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무슨 소린가 싶어 농부는 게슴츠레 눈을 떴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환한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간 큰 도둑이 담을 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도둑이 낡은 담장을 타 넘으면서 건드린 벽돌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였습니다. 그러나 농부는 다시 스르르 잠으로 빠져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중얼거렸습니다. “어어, 도둑이네……. 저놈, 마당에 내려오기만 해 봐라.”
이내 “쿵”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도둑이 담에서 뛰어내려 마당을 살금살금 걸어오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농부는 내려오는 눈꺼풀을 이기지 못하며 중얼거렸습니다. “이놈, 집 안에 들어오기만 해 봐라.”
농부가 깊이 잠든 줄로 안 도둑은 살금살금 집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누워 있는 농부의 옆을 지나 안방으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농부는 잠에 취한 채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저놈이 안방으로 들어가네. 뭘 가지고 나오기만 해 봐라.”
얼마 후 도둑은 안방에서 나왔습니다. 값이 나갈 만한 물건들을 한 보따리 짊어진 채 말입니다. 그리고 대문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집주인은 대문을 열고 나가는 도둑의 흐릿한 뒷모습을 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중얼거렸습니다. “이놈, 다시 오기만 해봐라.” [중략]
게으름은 빗나간 자기 사랑입니다. 게으른 사람들은 좀처럼 자기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핑계와 구실을 찾습니다.
사람이 항상 바쁘게 살 수만은 없습니다. 때로는 휴식이 필요합니다. 특히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쳤을 때는 잠시 쉬는 것도 하나님의 일입니다. 일할 때 몰두하고, 쉴 때는 긴장을 풀어 줘야 합니다. 마치 연주가 끝난 현악기의 줄을 풀어서 보관하듯이 말입니다.
우리에게는 적절한 휴식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부패한 성품을 잘 이해하며 휴식을 취해야 합니다. 들어주어야 할 당연한 휴식의 요구와 거부해야 할 게으름의 정욕을 구분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내 몸과 마음이 어느 지점까지 일할 수 있고 긴장을 견딜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휴식을 원하는 마음의 요구가 합당한지, 부당한지를 판단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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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사랑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보다 자기 자신을 더 위하는 마음입니다. 게으름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보람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지금 당장 좀 더 편해지고자 할 따름입니다. [중략]
자기 사랑은 본능적 욕구입니다. 그것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원래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이익에 민감합니다. 자기를 학대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도 알고 보면 뒤틀린 방식으로 자기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자신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자기를 참되게 사랑하는 것은 자기 힘으로 되지 않습니다. 은혜가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참된 자기 사랑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써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릇된 자기를 사랑하면 하나님을 대항해야 하며, 참된 자기를 사랑하려면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을 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위대한 교부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 354-430)는 『요한복음 강론』(In Joannis Evangelium Tractatus)에서 말했습니다. “자기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사실상 자기를 전혀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에 비해 참으로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자기를 사랑하면 결국 불행하게 되기 때문에 진짜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하지 않으면 결국 하나님 때문에 행복하게 될 것이기에 진짜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중략]
노동은 인간에게 자신의 가치를 깨닫게 해줍니다. 보람 있는 노동을 할 때 건강한 정신이 함양됩니다. 하나님을 알고 세상을 이해하고 자신의 존재 목적을 깨닫고 일하면서 살아갈 때 거기서 인생의 보람을 얻습니다. 자기가 왜 태어났는지도 모르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어찌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노동이 하나님의 축복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시 128:2).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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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라는 운동장에서 하늘나라를 향한 경주를 시작합니다. 제 길로 들어서 가볍게 뛰어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달려가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보같이 엉뚱한 방향으로 내달리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꾸준히 걷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조금 가다가 주저앉아 버린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심지어 길가에 주저앉아 놀고먹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길 원합니까?
우리가 게으름을 버리지 않는 한, 인생이라는 운동장을 달리는 모습은 하나님 보시기에 한심할 것입니다. 트랙을 달리고 있는 선수에게 휴식은 없습니다. 경기 종료 신호가 울리기까지 그는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살아 있다는 것은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살아간다는 것은 목표가 있음을 의미합니다. 선한 목표가 있다면 최선을 다해 달려가야 합니다. 거기서 울고 웃고 기뻐하고 슬퍼하며, 보람과 의미를 찾아 가는 것이 인생의 행복입니다.
인생이라는 경기의 종료 휘슬이 울릴 때, 승리의 환희를 느끼고 싶지 않습니까? 경기에서 이긴 선수처럼, 인생의 감독이신 하나님께로 달려가서 감격적인 포옹을 하고 싶지 않습니까?
제1부 게으름에 익숙한 그대에게
제1장 게으름의 정체, 싫증
제2장 게으름의 뿌리, 자기 사랑
제3장 게으름의 발전, 정욕
제4장 게으름의 선택, 부주의
제5장 게으름의 결과, 고통
제2부 익숙한 게으름과의 작별
제6장 게으름과 잠 1
제7장 게으름과 잠 2
제8장 게으름과 열정
제9장 게으름과 교만
제10장 게으른 자와 하나님의 마음
제11장 게으른 자의 교훈
참고 문헌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잠언이 이토록 게으름과 자기 사랑에 대해 심각하게 경고하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게으름』은 편안하고 풍요로운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매우 필요한 도전을 줄 것입니다.
마이클 호턴(Michael Horton), 캘리포니아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조직 신학 및 변증학 교수
잠언에 대한 저자의 실천적인 묵상은 게으른 자의 추악함을 드러내 보여줍니다. 또한 바쁜 사람들이 가장 중요한 일에 얼마나 게을러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게으름』은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한 책입니다.
조엘 R. 비키(Joel R. Beeke), 퓨리턴 리폼드 신학교 총장
김남준 목사는 게으름이 기독교 신앙을 감염시키는 바이러스라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들추어냅니다. 모든 독자가 이 훌륭한 책을 다 읽기도 전에 게으름이라는 바이러스와 싸우지 않을 수 없도록 그 정체에 대해 묘사합니다.
헤르만 셀더르하위스(Herman Selderhuis), 아펠도른 신학교 총장, 세계 레포500 회장
『게으름』은 김남준 목사의 최고의 저작들 중 하나입니다. 저자 특유의 경건한 방식으로 잠언을 묵상할 것을 권합니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게으름을 피하고 기쁨으로 우리의 삶을 하나님을 위해 살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더글러스 A. 스위니(Douglas A. Sweeney),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 교회사 교수
이 시대의 많은 서양 작가들이 더 많이 쉬라고 말할 때, 김남준 목사는 세속적인 게으름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열정적으로 일하게 하는 하나님의 지혜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리처드 코킨(Richard Coekin), 런던 던도널드 교회 담임 목사, 교회 개척 네트워크 코미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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