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선배 이야기처럼
가정이나 자녀 양육, 자녀 교육 등의 주제로 글을 쓰는 것이 맞는지 묵상하던 중에 지금 이 글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도시화와 핵가족화가 진행된 사회에서 살면서 이미 많은 단절과 장벽에 둘러싸여 있다. 그래서 가정 문제로 고민이 있어도 쉽게 찾아가 의논하고 상담할 수 있는 선배나 멘토가 가까이에 없는 경우가 많다.
또 세상 속에서 경쟁의 틀에 갇혀 살다보니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살아온 삶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 그래서 나는 독자들이 이 책을 읽는 동안에 이웃집 아저씨나 동네 형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듯 편안히 들으면서 자신의 고민을 객관화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_ 들어가는 글 중에서
어느 날엔가는 기도하면서 “새해가 된 것이 전혀 기쁘지 않습니다”라는 넋두리를 하기도 했다. 그때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한 도전을 주셨다.
‘네가 가진 부담을 즐기면서 가볼 수 있겠니?’
기왕 섬김의 자리에 있는데 어려운 마음보다는 기쁨으로 그 길을 가보지 않겠느냐는 내적 도전이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신뢰가 있어야 했다. 내 앞길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든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이라면 기쁘게 받아들이기 원한다는 고백이 필요했다. p.41
“엄마는 좋은 대학에 못 갔으니까 너라도 그것을 이뤄야 한다. 내게는 상황이 허락되지 않았지만, 너에게는 내가 집을 팔아서라도 지원해줄게. 나는 기회를 놓쳐서 이렇게 살지만, 너만큼은 그 아픔을 반복해서는 안 돼.”
이런 이야기를 크리스천 가정에서도 쉽게 들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나라의 충만으로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자녀에게 전가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자녀가 그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설령 자녀가 부모의 목표를 이루었다고 해도 그 성취로 인한 부모의 행복이 지속되지는 못한다. p.108
“얘들아, 아빠가 정말 너희들한테 바라는 게 뭔지 아니?”
“뭔데요?”
“너희들이 하나님을 알기 때문에 때로는 희생하지 않아도 되지만 희생을 택할 줄 알고, 양보할 줄도 알고, 주님을 위해 좁은 길을 마다하지 않고 갈 줄 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이건 내 허세가 아니고 진심이었다. p.165
때로는 ‘자녀를 위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구나’ 싶은 순간들과 맞닥뜨리게 된다. 그것은 부모가 무엇을 잘못해서 생기는 것이라기보다는 아이와 부모의 유익을 위해서 허락된 시간이다. 이런 과정을 경험하면서 내 안에 내가 죽고 예수 그리스도가 사시는 것을 몸과 마음이 함께 경험한다. p.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