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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켈러의 일과 영성 인간의 일과 하나님의 역사 사이의 줄 잇기 (FAITH & WORK : Every Good Endeavor)

$26.00 $18.20

저자/역자 : 팀 켈러/최종훈  |  출판사 : 도서출판 두란노
발행일 : 2013-11-18  |  (150*210)mm 344p  |  978-89-531-1990-1
이 시대 젊은이들의 영적 스승,
팀 켈러 목사의 20년간의 ‘일터 영성’의 집대성

이보다 실제적인 책은 없다!
강준민, 김인중, 김형국, 노진준, 노창수, 문애란, 방선기, 송태근, 이규현, 이태형, 조정민, 진재혁, 화종부 강력 추천!

왜 일해야 하는가?
어째서 이토록 우리네 삶이 고달픈가?
무슨 뾰족한 수는 없는가?
이런 질문에 성경적이고 실제적인 답을 주는 이 책을 잡으라!

<뉴욕타임스>가 꼽은 베스트셀러 작가 티머시 켈러는 어떻게 하나님이 한 사람 한 사람을 부르셔서 일과 직장생활을 통해 존재의 의미와 목적을 드러내게 하시는지 선명하게 보여준다.

나날이 경쟁이 치열해지고 불안정해가는 직업세계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 질문들이 있다.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 어째서 이토록 고달픈가? 무슨 뾰족한 수가 없겠는가?”

뉴욕시 리디머장로교회(Redeemer Presbyterian Church) 담임목사이자 <뉴욕타임스>가 꼽은 베스트셀러 「The Reason for God」의 저자인 티머시 켈러는 20년 넘게 학생들과 직장인, 임원급 리더들에게 일과 소명에 관한 문제들을 가르치고 상담해왔다. 그리고 이제 그간의 통찰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 전 세계 독자들 앞에 내놓는다. 무얼 위해 일하는가, 피 튀기는 경쟁과 실적지상주의가 판치는 일터에서 어떻게 의미를 찾고 고객들을 섬길 것인가, 직업세계에서 저마다 가진 재주를 활용해서 뜻을 지키고 보람을 얻을 방법은 없는가, 일을 하면서 자신의 가치를 살릴 뿐만 아니라 더 키워나갈 수는 없을까, 직장에서 성공가도를 달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처신하는 게 좋을까 따위의 심각한 주제들을 성경적인 관점에서 재조명한다.

심도 있는 인사이트와 불쑥불쑥 던지는 소스라치리만치 놀라운 조언들을 통해 저자는 독자들에게 성경의 지혜야말로 일터에서 일어나는 온갖 문제들에 엄청난 실마리가 된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사실, “자신이 아니라 남을 위해 일한다”는 크리스천의 노동관은 진취적인 직장생활과 균형 잡힌 개인생활의 토대가 된다. 켈러는 직장에서 드러내는 뛰어난 능력과 성실성, 절제된 태도와 창의성, 그리고 열정이 제 한 몸 잘 먹고 잘 사는 차원을 넘어 다른 이들을 돕는 길이자 몸으로 드리는 예배가 되는지 소상하게 설명한다.

들어가기 전에_
리디머교회에서 답을 찾았다

1989년, 함께 일하던 동료가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 한 번 와 보라고 졸랐다. 맨해튼에서 시작한 공동체인데 이름이 리디머교회라고 했다. 개인적으로 어렸을 때 다녔던 교회를 보면 늘 본질이야 어찌 됐든 형식이 먼저였다. 아울러 거기서 무슨 가르침을 얻든,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다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리디머교회는 몇 가지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목회자부터 평범하지 않았다. 뛰어난 지성을 가졌으면서도 평범한 아저씨 같은 말투로 메시지를 전했다. 성경 말씀을 진지하
게 받아들일 뿐 아니라 일과 직장처럼 내게는 대단히 중요해 보이는 영역에 적용하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르자 이제는 신앙적인 결단을 내리고 성경의 진리와 약속에 ‘삶을 드려야’ 할 때가 됐다고 판단했다. 솔직히 걱정스러웠다. 남자 형제 둘이 예수를 믿고 나서 해외 선교사로 부름 받았던 터라, 헌신과 함께 직업적인 포부와 물질적인 여유를 한꺼번에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둘 중 하나는 수돗물도, 전기도 없는 아프리카 오지에서 살고 있었다. 정말 하나님을 으뜸으로 삼는다면 마음을 열고 섬기라고 부르시는 곳이면 어디든 갈 각오를 해야 했다. 그건 곧 현실이 됐다. 뜻을 정하고 몇 주가 지났을 무렵, CEO 자리에 있던 상사가 갑자기 병으로 쓰러졌다.
기겁할 일이었다. 상사는 경영자가 되어 회사를 이끌어 달라고 부탁했다. 난데없는 상황이었지만, 하나님이 제3세계가 아니라 재계에서 제 몫을 다하라고 말씀하시는 듯했다.
그 뒤로 10년 동안, 뉴욕시와 유럽, 실리콘밸리 등지의 기술개발회사 몇 군데에서 일했다. 날마다 언제 무슨 일을 하든 기업의 리더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게 무얼 의미하는지 씨름하고 고민했다. 그때마다 리디머교회와 팀 켈러 담임 목사는 든든한 발판이 되어 주었다. 덕분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변화될 뿐만 아니라, 그로 말미암아 다른 이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쓰임을 받아야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세상과 다른 방식으로 회사를 운영해야 한다는 점을 일찌감치 깨달을 수 있었다. 더할 나위 없이 근사한 생각이다. 하지만 실제로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본보기로 삼을 만한 모델은 거의 없었다. 있다손 치더라도 대다수 미국인들이 교회에 다니던 시절의 이야기들이었다. 어느 CEO는 책상 위에 늘 성경책을 올려놓았더니 더러 그 까닭을 묻는 이들이 나타나더라고 했다. 열심히 기도했더니 회사가 잘 돌아가더라고 간증하는 이들도 있었다. 돈을 많이 벌어서 자선사업을 하고 여러 기관을 돕는 데서 기업 경영의 의미를 찾는 이들이 열에 아홉은 됐다. 목회자들과 직장인들에게 신앙을 일터에 어떻게 적용하는 게 좋을지 물어보면, 흔히(혼자 일하는 전문직 종사자가 아닌 한)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전도는 자신의 은사가 아닌 것 같다는 말을 재빨리 덧붙이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이러한 접근 방식들로는 신앙으로 일터를 변화시키는 문제에 해답을 찾을 길이 없었다.
오히려 나날이 성장하는 하이테크 세계에서는 아이러니하게 그런 시도의 본보기들을 어렵잖게 만날 수 있었다. 1990년대에는 특히 그랬다. 기업가와 엔지니어들을 이 시대의 신처럼 떠받들고 첨단 기술을 세상의 온갖 어려움을 해결하는 열쇠로 여겼다. 몸담았던 회사의 직원들만 하더라도 비전과 기술을 전파하려는 그들 나름의 ‘선교 열정’이 그 어느 교회보다도 뜨거웠다. 신규 상장을 기대하는 소망이 얼마나 구체적이며 삶의 동기가 되는지, 크리스천들이 피상적으로 하늘나라를 그리는 심정과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오래도록 함께 일한 파트너들 또한 저절로 머리가 숙여질 만큼 성숙한 인격을 가진 훌륭한 이들이었다. 교회에 다니지 않고 성경이 가르치는 예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도 세상에 이바지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열심히 뛰었다. 신앙이 없거나 다른 종교를 가진 동료들을 통해 일터에서 느끼는 기쁨, 인내와 희망, 팀워크와 진실만을 말하려는 의지 따위와 관련해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 주말에 명상을 하러 다녀온 직원은 주일마다 복음적인 교회에 모여 예배를 드리는 신자들보다 훨씬 생기발랄했다. 그렇다면 일이란 역동적이고 효과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도구라기보다 그분이 날 단련하는 곳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창조주께서 우주의 모든 것들을 지으시고, 거룩한 형상을 좇아 인간을 만드셨으며, 죄로 망가진 만물을 대속하시려 독생자를 보내셨다는 복음의 진리를 나는 믿었다. 하나님이 일을 시키시고 한 기업의 리더로 만드신 데는 특별한 목적, 곧 다른 이들과 힘을 모아 세상을 바람직하게 바꾸어 가게 하시려는 뜻이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경쟁 사회 최전방에서 조직을 관리하고 이끄는 입장에서는 하나님의 계획을 어떻게 몸으로 살아 내야 할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리디머교회 말고는 거기에 필요한 지침을 주는 교회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세상에 나가 뭇 백성들을 섬기도록 식구들을 훈련하고 무장시키기보다는 교회 내부에서 봉사하도록 준비시키는 데 집중하는 목회자들이 허다했다. 실리콘밸리의 성과가 정점을 향해 치닫던 1990년대에는 세상과 인간이 얼마나 망가졌는지 의식하는 크리스천이 많지 않아 보였다.
가난한 이들에게 깊은 연민을 품고 있으면서도 현대 산업사회의 시스템과 구조, 사고방식이 오늘날 나타나는 갖가지 균열과 붕괴에 사실상 결정적인 요인을 제공하고 있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지 않는 이들이 수두룩했다. 일터에서 신앙의 원리를 삶으로 구현해 내는 과제는 소소한 상징적 제스처를 취하고, 특정한 행동들을 절제해서 자기 의를 드러내며, 이 시대를 풍미하는 문화적이고 법률적인 이슈들에 대해 정치적으로 통일된 입장을 보이는 수준으로 격하된 듯했다. …..
이 책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 그리고 성령님에 관한 기초적인 개념들을 담고 있다. 삼위일체에 비추어 자신을 돌아보고 그것이 창조주가 한 사람 한 사람을 지으시며 맡기신 일을 해 나가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핀다. 문화, 역사적인 시기, 소명, 조직 따위의 맥락에서 어떻게 일할 것인가 하는 이슈는 우리 사회 전체가 반드시 함께 고민해야 할 주제다. 하지만 그 해답은 하나님의 속성, 인간과의 관계, 세상을 향한 계획, 그리스도의 복음이 삶과 일하는 방식을 백팔십도 바꿔 놓는 원리같은 핵심적인 신학 지식을 바탕에 깔고 있어야 한다.

chapter 6 일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다

그저 성공의 쳇바퀴를 따라
무작정 달리기만 한다

이러므로 내가 사는 것을 미워하였노니 이는 해 아래에서 하는 일이 내게 괴로움이요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기 때문이로다(전 2:17).

타락한 세상에서 하는 일은 열매를 거두지 못하기 일쑤일 뿐 아니라 의미를 찾지 못하는 경우도 흔하다. 그 또한 인간이 노동에서 실감하는 소외의 다른 측면이다. 숙성되지 않은 기술과 이룰 수 없는 염원 탓에 일터에서 좌절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포부를 품고 달려들어 성공을 거두고나서도 만족감과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는 부류도 있다. 노동의 참뜻을 깊이 헤아릴 줄 모르는 인간의 모습을 더할 나위 없이 통렬하게 그려 낸 글은 구약성경 가운데 전도서라는 옛 문서에서 찾을 수 있다.
전도서의 화자를 히브리어로 ‘코헬레트’(Qoheleth)라고 부르는데, ‘스승’이나 ‘철학자’ 정도로 풀이할 수 있다. 전도서가 말하는 일의 속성을 이해하자면, 우선 이 책의 문학적 장르와 논리를 전개하는 화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도서를 읽는 독자라면 대부분 성경의 나머지 부분과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는 내용에 적잖이 충격을 받는다. 다른 말씀들은 전반적으로 지혜롭고 의롭게 살라고 도전하지만, 전도서는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도 말라고 경고하면서 중도를 걸으라고 권면한다. 지나치게 윤리적이지도 비도덕적이지도 말며, 과도하게 지혜롭지도 어리석지도 말라는 것이다(전 7:15-17). 이런 이야기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구약학자 트렘퍼 롱맨(Tremper Longman)은 전도서가 쓰일 당시에 이른바 ‘허구적 자전’(fictional autobiography)1이라는 문학 형식이 있었음을 지적한다. 작가가 또 다른 가상 인물을 내세우고 삶의 여정을 설명하면서 그 사례에서 끄집어낸 보편적인 깨달음과 가르침으로 마무리하는 구조다. 실제로 전도서에서는 두 화자의 목소리를 분별해 낼 수 있다. 프롤로그에 등장하는 첫 번째 작가는 가상의 코헬레트를 소개하고, 마이크를 넘겨받은 두 번째 주인공은 해 아래서 만족과 의미를 찾으려 안간힘을 썼던 과정을 낱낱이 처음 인물에게 들려준다.
‘해 아래에서’라는 표현은 철학자의 시각을 파악할 수 있는 결정적 단서다. 보통 더 위대하고 영원한 실존을 제쳐 두고 이 세상 자체만을 고려한 삶을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이다. 철학자는 성공, 쾌락, 지식처럼 오로지 물질세계의 울타리 안에서 찾아낼 수 있는 요소들만을 토대로 의미있는 삶을 살아보려고 발버둥 친다.
에필로그에서 최초의 작가는 결국 자기 목소리를 되찾고 최종 평가를 내린다. 한없이 지혜롭고 부유하며 누구보다 은사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삶에서 만족을 얻지 못했던 인물을 내세워 염두에 두었던 주제를 극적으로 풀어내는 것이다. 신약성경의 야고보서나 구약성경의 잠언 같은 책들은 이러저러하게
살라는 목회자의 조언을 듣는 느낌을 준다. 반면에 전도서를 읽노라면, 교수가 소크라테스 식의 까다로운 질문과 생소하고 기괴한 사례들을 동원해 가며 대화를 유도해서 스스로 진리를 발견하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철학 강의실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든다. 전도서의 철학자는 독자들을 밀어붙여서 인생의 토대를 살피게 하며 웬만하면 피하고 싶어 하는 기본적인 질문들을 쏟아 낸다. “삶의 의미를 찾았는가? 목숨을 걸 만큼 가치있는 일이 있는가? 세상은 왜 이처럼 엉망으로 돌아가는가? 어떻게 그난국을 이겨 낼 것인가?” 전도서의 작가는 철학자를 앞세워 읽는 이들을 몰아세워 가며 하나님의 초월적인 독특성과 필요성을 납득시키려 노력한다. 이곳 세상에 속한 그 무엇도 의미 있는 삶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일과 성공, 사랑과 쾌락, 또는 지혜와 지식으로 삶의 이유를 삼는다면 존재가 불안정해지고 조그
만 충격에도 쉬 부서질 것이다. 환경은 삶의 토대를 늘 위협하며 죽음은 필연적으로 저마다 소중히 여기는 자산들을 깡그리 휩쓸어 가기 때문이다. 전도서는 은혜로우신 하나님을 추상적으로 믿는 데 그치지 않고 실존적으로 의지하는 자세야말로 흔들림 없고 목적이 분명한 인생의 전제조건이라고 소리 높여 외친다.
자기 분야에서 성공 가도를 달리다가 우리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한 이들이 다 그렇지만, 캐서린 알스도프 역시 세 가지를 정신없이 쫓아다녔었다. 대학에서 배우는 지식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 했고, 나중에는 즐거움과 모험을 추구했으며, 삼십 대에 들어선 뒤로는 절박하다 싶을 만큼 가진 걸 다 쏟아부으며 일과 직장을 통해 만족스럽고 성취하는 삶을 구현하려 했다. 노력한 보람이 있어서 차츰 열매를 거두기 시작했고 살림살이도 넉넉해졌지만 날이 갈수록 스트레스가 늘고 쓰라린 감정에 시달리기까지 했다. 특별히 애쓴 것도 없이 결실을 얻고 멋진 삶을 누리는 이들을 보면 억울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아무리 실적을 쌓아도 양이 차지 않았다. 돈을 벌고 또 벌어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스스로 이야기하듯, “하나같이 쓸데없는 짓이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책상에 머리를 박고 일에만 매달렸다.” 마침내 알스도프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떠올렸다. 세상의 뭇 철학들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인생의 공허함을 절감한 끝에 하나님의 초월적인 독특성에 눈을 돌린 것이다.

추천의 글
들어가기 전에 리디머교회에서 답을 찾았다
프롤로그 일은 단순히 ‘밥벌이’가 아니라 소명이다

part 1 일, 하나님의 황홀한 설계

일과 쉼의 균형이 필요하다
1 행복하고 싶다면, 주님처럼 일하고 주님처럼 쉬라

일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2 세상에 하찮은 일은 없다

일은 하나님을 닮아 가는 수단이다
3 일터에서 주님의 매뉴얼을 따라 야심차게 일하라

일은 목적이 있는 소명이다
4 자신만을 위하지 말고 하나님과 세상을 위해 땀방울을 흘리라

part 2 일, 끝없이 추락하다

아무리 일해도 열매가 없다
5 밤낮없이 매달려도 입에 풀칠하기조차 버겁다

일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다
6 그저 성공의 쳇바퀴를 따라 무작정 달리기만 한다

탐욕의 수단으로 변질되다
7 고생해서 이만큼 일구었는데 이걸 포기할 수는 없어!

일이 인생의 전부가 되다
8 인생이 통째로 일에 빨려 들어가 망가지다

part 3 일과 영성, 복음의 날개를 달다

복음의 관점으로 일을 이해하다
9 회사 신우회에 참석하는 선에서 만족하지 말라

일에 대한 이원론을 배격하다
10 이건 세상 일이고 저건 하나님 일이라는 이분법을 배격하라

일을 하는 동기가 바뀌다
11 높은 보수나 칭찬을 위해 일하지 말라

새로운 능력으로 일하다
12 구원의 확신을 가슴에 새기고 열정을 품고 일하라

에필로그 리디머교회가 하고 있는 ‘일과 신앙을 하나 되게 만드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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