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하게도 많은 현대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세계, 영적 세계의 실존에 대해 무지하다. 그 결과 기독교는 영적 능력과 생명에서 멀어져 윤리와 종교행위가 되어버렸다. 성경은 보이는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은 보이지 않는 세계, 영적인 세계에 속해 있다.
– p.20,21
인간은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이 두 세계에 모두 속한 존재다. 하나님을 제외하고는 두 세계에 모두 속한 ‘유일한 존재’가 인간이다.
– p.31
영이 강한 사람, ‘영에 속한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영에 의해 움직인다. 혼과 육이 뭐라고 해도, 영에 의해 움직인다. 영이 강하다는 것은 인간 스스로의 영의 기능이 강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영이 강하다는 것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 그분의 영과 하나가 된 우리 영 – 내주하시는 성령님이 강하신 것을 의미한다.
– p.60,61
육은 하나 되지 못한다. 교회가 깨어질 때 보면, 많은 경우 영적인 주제를 가지고 싸운다.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하나님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 그런데 그 열정 때문에 갈라진다.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이것이 육의 속성이다.
– p.76
육이 약하다는 것은 몸이 허약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혼’ 즉 자아가 약한 것을 말한다. 자아가 강한 사람은 ‘육’으로 살게 되고, 자아가 약한 사람(자아가 죽은 사람)은 ‘영’으로 살게 된다. 영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혼과 육’, 즉 ‘자아’가 성령 안에서 부인되고 약해져야 한다.
– p.91
카이로스의 시공간은 ‘하나님의 능력이 펼쳐지는 장(場)’이다. 물론 크로노스 시공간 역시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그분의 능력으로 지어졌다. 그러나 크로노스의 시공간은 하나님의 모든 능력이 제한 없이 펼쳐지는 시공간은 아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능력을 물리적 법칙 속에 제한하셨다.
– p.146
하늘의 문은 어떻게 작동할까? 카이로스의 시공간은 언제 어떻게 크로노스의 시공간으로 들어올까? 이 문은 비인격적인 특정 장소나 구조물이 아닌 ‘사람’이기에 인격적인 특징을 가진다. 다시 말하면 카이로스의 시공간이 크로노스의 시공간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인격적인 반응’에 달렸다.
– p.160
하늘이 열릴 때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듣게 된다. 나를 향한 창조주 하나님의 계획이 그곳에 있다. 강력한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가면, 그곳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
– p.173
당신은 이 땅의 시간을 살아가는 자가 아니다. 시간을 그저 흘러가게 두지 말라. 카이로스의 시공간이 내 위에 임하도록, 시간을 믿음으로 취하라. 매일 매 순간이 크로노스의 시간이 아니라 카이로스의 시간이 되도록 하라.
– p194
이 카이로스의 시공간이 먼저 그 ‘문’인 당신에게 임할 때, 당신의 마음과 생각 속에서 이루어질 때, 그 때 비로소 당신의 영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그 영이 하늘의 문을 연다. 그리고 당신의 영을 통해 열린 하늘의 문이 당신 주변으로 확장되기 시작한다.
– p.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