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내의 투병과 그로 인한 아픔을 ‘13년에 걸친 인생수술’이었다고, 일평생 왜곡된 인격을 바로잡고 굳어진 성품을 새로 형성해가는 재창조의 과정이었다고 고백하는 ‘엄빠’ 김병년 목사의 두 번째 일상 이야기. 이제 어엿한 대학생이 된 윤영, 아빠보다 훌쩍 커버린 윤서, 몇 년 전보다 훨씬 반듯한 서체를 갖게 된 막내 윤지, 그리고 요양원으로 처소를 옮긴 아내 주연, 그렇게 달라진 삶의 장을 배경으로 희망과 절망을 넘나드는 아빠의 일상 분투기를 담았다. “징그럽게 힘들고 지루한 고통과 씨름하는 삶에서 건져 올린” 위로와 격려와 희망의 메시지.
1부 “나는 ‘엄빠’다”에서는 가족들과의 일상을, 2부 “건강해도, 병들어도, 우리는 부부”에서는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3부 “나의 사랑하는 교회”에서는 교회와 신앙 이야기를, 4부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는 세월호 사건을 비롯한 세상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윤영과 윤서, 윤지의 편지와 만화로 아이들의 생각과 가족의 일상 풍경을 담았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청소를 마치고 나면 한 잔 커피를 마시며 나를 축복하는 시간을 갖는다. 얼마 전 선물받은 코체레 커피로 아침을 채운다. 친구 목사님이 내게 선물로 챙겨주신 커피다. 이 아침에 난 우정을 마신다. 검은 물빛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 마음을 위로하고 생각을 깊게 만들어 내 삶의 색깔을 찾아가게 한다. 검은 물빛에서 향기가 난다.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오늘 아침에 마시는 검정물은 부드럽고 달고 신맛도 조금 느껴진다.
원두만 가지고는 향기를 낼 수가 없다. 원두를 수확해서 말리고, 요리조리 굴리며 태워서 검은색으로 바꾼 다음, 적정한 열을 가해 볶아야 기막힌 향이 난다. 초록빛은 향기가 없지만 검은빛은 향기를 낸다. 고통은 커피처럼 삶을 굴리고, 태우고, 볶고, 갈아서 나만의 맛을 내는 창조주의 고단한 작업이다. 이 과정을 품는 것이 인내다. 인내는 삶깊숙이 파고드는 고통을 품는 일이다. 오늘 아침, 인생의 맛을 우려내는 시간을 보낸다. _35-37쪽
삶을 살아가는 법을 배우기도 전에 결혼했고, 셋째 아이를 낳고 바르게 키우는 연습도 하기 전에 아내가 쓰러졌고, 이제는 아내 대신 세 아이를 키우며 나는 지금도 삶을 배우는 중이다. 아내가 쉽게 하던 모든 일을 나는 버겁게 감당해왔다.
아내를 요양원으로 옮긴 뒤, 삶의 우선순위에서 아내가 밀려났다. 그 자리를 아이들이 채웠다. 그러나 아내와 나 사이에는 ‘결혼의 언약’이 있다. 그 튼튼한 끈이 여전히 우리를 연결시키고 묶어준다. 이 결혼의 언약이 중심을 잡게 한다. 마음이 흔들리다가도 이 언약이 나를 하나님 앞에 서게 한다. 아무리 흔들려도 변하지 않는 게 있다. 나는 서주연의 배우자다. _103쪽
돈이 좀 생겼다 싶으면 도와달라 손 내미는 이가 꼭 있다. 사정을 들어보면 진짜 딱하다. 다시 빈털터리가 된다. 그래도 오늘을 살고 내일도 살아간다! 신기하다 못해 하루하루가 기적이다. 자기 사정을 말하고 도와달라는 이들은 그래도 좋은 분들이다. 어떤 이들은 속이기까지 한다. 속이는 줄 번연히 알면서도 속아준다. 한번 속아주면 그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가 반드시 돌아온다. 지금까지 경험이 그렇다. 물론 요구하는 돈의 액수가 내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다.
내게 없는 것을 주지는 못하기에 하나님은 당신에게 구하라고 하신다. 내 필요를 구하면 하나님은 다른 이들의 필요까지 더해서 주신다.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문의 ‘우리의 양식’은 나만의 양식이 아니다. 하나님이 내 필요를 채워주시는 건 이웃의 필요까지 고려하신 것이다.
늘 돈에 끌려다니지 않고 사는 법을 배우려 애쓴다. 하나님이 돈을 한 번에 왕창 주시지 않는 이유를 나름 파악하고 있다. 한 번에 다 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지금까지 먹은 것만 해도 감사하다는 고백을 저절로 한다. 요즘 들어서 도와달라는 이들이 많다. 지난주에 두 번, 이번 주에도 벌써 두 번. 그만큼 모두들 살기 어렵다는 얘기겠지. 다들 어려운 시절, 조금만 서로 돌아보며 살아가면 좋겠다.
오늘도 돈은 내게서 머물 처소를 찾지 못한다! _186-187쪽
1부 | 나는 ‘엄빠’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나는 지금도 삶을 배운다
천만다행 | 아빠의 꿈 | 관대한 아버지 | 아이들의 기도 | 백세인생 | 어머니와 나들이 | 화해 | 아이들의 인사 언어 | 코체레 한 잔 | 방학은 전투다 | 카페 마놀린 | 아빠를 반기는 춘녀 | 딸은 자란다 | 아이들은 스스로 성장한다 | 자기다운 삶 | 막내의 소원 | 윤영이의 눈물 | 요즘 아이들이 사는 법 | 웃음꽃 | 만약에 | 아빠를 잘 아는 딸 1 | 아빠를 잘 아는 딸 2 | 춘녀 파이팅! | “아파트 사줄게” | 부모의 십자가 | 공구통 든 여자 | 말로 해! | 존재를 사랑해 | 아들의 말 한마디 | 목욕 | 시.가.렛 | 더운 여름 ‘악’과의 씨름 | 춘돌이의 방학 | 부르심을 따라 살기 | 아빠의 밥상 친구 | 윤서의 노래 | ‘본래 받는 버릇’ | 참고 또 참고 | 예쁘다는 말은 없잖아! | 뭐 해주고 싶은 거 없어? | 5월 18일 | 시간을 잘 다스리는 사람 | 아들과 하는 매일 묵상 | 때에 맞는 묵상 | 아들의 묵상노트 | 호박죽 인생 | 혼자 있다는 것 | 윤지의 묵상 나눔 | 새 학기, 옛 물건 | “좀 불편하게 살아” | 바둑과 인생 | 윤지의 편지 | 복면가왕 | 설거지의 영성 | 바람 같은 돈 | 삶의 무게 | 잠들지 않는 죄성 | 나눔의 법칙
2부 | 건강해도, 병들어도, 우리는 부부
나는 서주연의 배우자다!
결혼기념일 | 결혼의 언약 1 | 결혼의 언약 2 | 소통 없는 삶 | 손이 닮았다 | 안녕, 스타렉스 | 아내의 생일 | 변한 것 vs 변하지 않은 것 | 사랑과 원수 | 아내 돌보기 | 아픔은 아픔, 기쁨은 기쁨 | 바람이 분다 | 일보다 사람이 먼저 | 웃음 이후… | 위기 속에 찾은 은혜 | 익숙해져야 할 것 | 예기치 못한 응답 | 좋은 소식 | 천국의 달리기 | 소중한 것들 | 오늘 울면 내일 웃고 | 은혜로 살아왔으면서! | 아픔의 잔상 | 투표할 권리 | 아내의 소중한 한 표 | 10만 원짜리 투표 | 상호긴장의 실체 | 언제나 그 자리에 | 고향 생각, 엄마 생각 | 바쁜 하루 | 살아갈수록 | 말과 속사람 | 예수의 이름 | 낫지 않아도 믿음 | ‘언약’을 믿기에 | 개구멍은 없다 | 걷기와 인생 | 넘어지는 이유 | 메마른 광야를 지날 때
3부 | 나의 사랑하는 교회
교회가 사랑해야 할 십자가로
그리스도께 매달린 교회 | 소명 | 몸 따로, 마음 따로 | 교회와 은사 | 망가져도 좋다 | 재활용 교회 | 기초가 최우선이다 | 나는 마르다 | 사람 세우기 | 교회 개척 | 품어야 한 몸 | 교회의 존재이유 | 두 마음 | 권사님의 천국여행 | 두 가지 숙제 | 시험일까, 유혹일까 | 위기에 맞서는 법 | 늦거나 혹은 빠르거나 | 믿음, 그리고 자유 | 죄의 짐 vs 삶의 질 | 필요 vs 공급 | 디딤돌 vs 걸림돌 | 진정한 경건 | 순종의 삶 | 믿음 | 원한 맺힌(?) 기도 | 아굴의 기도 | 파이프와 저수지 | ‘하나님의 뜻’이라는 핑계 | 비판 말라? 하라! | 신앙의 눈으로 본, 토끼와 거북 이야기 | 벧엘의 타락 | 돈보다 지혜 | 돈은 머물지 않는다 | 십일조의 의미 | 축사와 축사 이후 | 암소의 선교 | 요즘 나의 청년 사역 |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의 양면성 | 부르심이 절박함을 이긴다 | 모두가 ‘우리’ 교회 | 하나님만 드러내는 ‘연합’ | ‘키다리 아저씨’ 프로젝트 | 참 좋은 우리 동네 목사님 | 내게 주어진 숙제
4부 | 더불어 사는 세상
_‘죄인들의 친구’였던 예수님처럼
4월 16일을 기억한다! | 얼음이 녹으면… | ‘중보자’가 필요한 시대 | ‘그래도 신앙은 좋다’는 말 | 다니엘이 부끄러워할 ‘세 이레 기도’ | ‘다른 집만큼’만 올린다? | ‘갑질’의 실체 | 뇌물과 생존경쟁의 상관관계 | 이상하고도 궁금한 일 | 악의 실체 | 십자가 지는 삶 | 심장이 뛴다고 살아 있는 게 아니다 | 세상이 말하는 거짓 | ‘거짓’의 위험 | 잊어버리지도, 가만히 있지도 않겠다 | 그날 어디 계셨어요? | 우는 아이는 산다 | 선한 사마리아인 | 김동수 씨 이야기 | 무능함 vs 무정함 | 마침내 드러날 진실 | 걸음처럼 천천히 | 교조적 광신주의 | 폭력의 정당화 | 불평하라 | 국가의 품격
윤영이의 편지 | 나는 행복합니다
윤서의 편지 | 친구 같은 아빠에게
윤지의 편지 | 우리집의 일상
닫는 글 | 그분과 함께여서 길 아닌 길이 없다
나는 김병년의 글보다 김병년을 추천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는 편이다. C. S. 루이스가 말한 바 ‘갈망하나 이룰 수 없는, 갈망을 멈출 수 없으나 성취에 다가갈 수 없는 고통스런 기쁨, 서러운 즐거움, 희열 가득한 어떤 고통, 그립기도 하고 서럽기도 한 슬픔으로서의 기쁨’이 책보다 김병년 안에 더 고스란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단지 따뜻하기만 하지 않고, 삶과 뒤섞이고 삶에 마주서고 삶에서 떨어져보려 몸부림하고, 삶을 부여안고, 안에 담긴 세밀한 결을 정밀하고 다정하게 드러내는 그의 글이 좋다. 그의 글에서 춘녀와 춘돌이와 막둥이가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몸짓들이 좋다. 그들의 ‘무례한’ 자유를 속상해하면서도 사랑스러워 죽겠는 마음이 가득한 김병년의 영혼이 좋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고통의 손을 잡고, 그 손을 온 세상 가득한 서러움까지 뻗치는 성실함이 좋다. 그의 글을 통과하면서 안식을 누린다. _정갑신, 예수향남교회 담임목사
오해와 수치를 감수하면서도 자기를 묵묵히 내어주는 것이 십자가의 사랑임을 이 분을 통해 배웠습니다. 그래서 ‘아빠는 왜 그렇게 살아’ 하며 아이들이 천진난만하게 던질 것 같은 질문에 한 공동체를 이루는 성도로서 이렇게 고백하고 싶습니다.
“목사님, 그렇게 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_ 강승회, 다드림교회 성도
“얘들아, 아빠가 왜 그렇게 사느냐고? 아빠는 절대로, 맹세코 지금과 같은 삶을 원하지 않았어. 상상도 안 해봤어. 그런데 엄마가 쓰러졌을 때 많은 것들이 달라졌지. 매일이 너무 고단했고, 평생 절망스럽고 슬플 줄 알았어. 그런데 말이야, 너희를 키우면서, 일상적인 삶과 씨름하면서 아빠의 가슴 깊은 곳 굳게 닫힌 샘이 열리면서 아빠의 시야도 달라진 거야. 그때까지는 늘 크고 거대한 그림만 바라보던 아빠의 시야가 사방팔방으로 열리면서 가까이에 숨겨져 있던 보물을 발견하고 감동하고 감사하게 되었지. 풍성한 선물이 날마다 아빠에게 주어졌단다. 고마워, 얘들아! 곁에 있어줘서 정말 고마워!”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한 목사님의 생생한 목소리가 책 속에서 흘러나오는 것만 같습니다. 아울러 무엇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고통의 삶에서 신비로운 비밀을 길어 올리는 비결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_강효숙, 다일교회 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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