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13-16쪽 “성장의 연료 공급원을 찾자” 중에서 ]
‘영혼의 질’에 비견할 만픔 능력 있으며 또 잠재적
아름다움을 지닌 것은 아무것도 없다.
대략 25년 전 어느 토요일 아침이었다. 나는 그 주간에 집도 없이 떠돌다 숨을 거둔 두 사람의 장례식을 집전했었다. 그 사 람들의 삶이 의미 없고 쓸모 없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때문에 내 마음은 슬픔과 허전함으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나는 그 동안 잠도 잘 자지 못하고 영혼을 맑게 해 줄 휴식도 제대로 취하지 못했으며 쉴 틈 없는 목회 활동이 겹겹이 쌓인 상태였다. 그 때 그들의 죽음을 마주하고 나니 정말 감정이 폭 발할 지경이 된 것이다.
그 날 아침, 식사를 하려고 앉았을 때만 해도 나는 내가 무너 지기 직전이라는 것을 상상도 못했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나는 누구에게나 한계점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맞이할 준비가 전혀 안되어 있었던 것이다. 악의 없이 내뱉은 아내의 한 마디가 나 의 그 ‘한계점(breaking point)’을 불쑥 끄집어내 버렸다.
“여보, 요즘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뜸해 졌군요” 게일 은 이렇게 말했다.
옳은 말이었다. 아내는 고맙게도, 내가 그녀와도 그리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는 사실은 감추어 주었다. 나는 하나님 아 버지와도 그렇고 그런 관계가 되어 있었다. 그것에 더해 해야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으며 다음 날 주일 설교도 준비 못했고 두서너 곳의 병원에 전화할 일까지 있었다.
나는 마치 굴러 오는 공을 막 놓치고 어쩔 줄 모르며 선 야구 선수 같은 느낌이 들었다. 뒤에서 점수판이 ‘에러(error)! 에러 (error)!’라고 깜박이기 시작했다.
별안간 나는 공허함이 온 몸을 휘감는 것을 느꼈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곤 자제심을 잃은 채 무려 네 시간을 줄곧 울었 다.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그것은 내 일생에서 몇 안 되는 ‘깨어지는 경험(breaking experiences)’들 중 하나였는데 그것은 내가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영혼의 질을 향한 성장에 지대한 책임을 맡아 왔던 그런 경험들이었으며, 소위 말하는 ‘성공’보 다 더욱 소중한 것이다.
그날의 사건으로 인해서 나는 그 동안 무시해 왔거나 혹은 둔해서 알아채지 못했던 것을 하나 직시하게 되었다. 나는 그 동안 목회직에 몸담아 왔다-예수님의 이름으로-주로 선천적 으로 주신 은사-말 잘하는 능력과 사교성, 오래 주님 일을 하 고자 하는 소망과 에너지에 바탕해서 일해 왔다.
그 토요일 아침에 나는 ‘질’ 이 결여된 영혼이 가져다주는 첫 번째 불가피한 결과를 보았던 것이다. 우선 순위는 엉망이 되어 있었고 가장 중요한 인간관계를 무시하고 있었으며 영적인 생 활이란 것이 하나의 농담에 지나지 않는 데다가 일은 통제 불가 능 상태였다. 그리고-진정으로 하는 말이지만-더 이상 사역 이 즐겁지 않았다.
울음을 그친 후 이게 웬일인가 생각해 볼 여유가 생겼을 때, 나는 앞으로 계속 사역을 해 나갈 생각이라면 즉시 더 깊은 동 기와 힘의 근원을 끄집어내야 함을 알게 되었다.
‘영혼의 질’에 대한 문제가 가장 중요하게 다가왔다. 그것이 아마 내가 나중에 ‘내면 세계의 질서(ordering of my private worl d)’라고 부르게 된 것에 대해 흥미를 갖게 된 시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이후로도 분기점이 되는 다른 경험들-마주 대하기 더 욱 어려웠던 것들도 많았다-을 겪어 보았지만, 이것은 내게 동기(무엇이 나를 조종하고 있었는가?)와 유지(나는 무엇으로 버티어 왔는가?)의 문제를 끊임없이 자문해 보게 만드는 경험 이었다.
그날 아침의 사건으로 해서 나는 너무도 오랫동안 방치해 두 었던 ‘영혼’의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 보게 되었고, 그 후 몇 주 동안 나의 영혼의 내면 세계를 면밀히 조사해 보았다 그것은 재건의 노력, 곧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나 의 기반을 다시 쌓는 작업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막상 재건을 시작하게 되면 잡동사니를 먼저 깨끗이 치워야 한다. 습관, 동기, 환상, 야망, 또 여러 형태의 자만심의 정체를 밝히고 또 단념해야 한다. 이런 행동을 회개(repentanre) 라고 한다. 나는 이 회개라는 행위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내면 영혼의 가장 강력한 활동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것은 마귀의 무기 창고 안에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인 속임수(deceit) 에 대적할 수 있는 하나님의 무기인 것이다.
나는 그 토요일 아침의 카타르시스(catharsis)로부터 나온 개인 적인 감정의 정화가 매우 짧은 것이었고 다시는 되풀이되 지 말아야 할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솔직하게 인정한 다. 내게 일어났던 일들은 내가 늘 경계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문제, 즉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대부분의 남 녀가 가진 가장 핵심적인 문제일는지도 모른다는 것을.
내가 현재까지고 계속해 오고 있는 훈련의 하나인 일기 쓰기 를 시작하게 만든 것도 바로 그 경험이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내 영혼에 주시는 많은 생각들과 통찰력을 기록하는 데서 오는 큰 유익을 찾아내기 시작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