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 영성훈련의 대가인 마틴 레어드의 ‘관상기도 3부작’ 중 두 번째 책이다. 첫 번째 책인 <침묵수업>이 관상기도의 길에 처음 들어서는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라면, 이 책 <기도수업>은 보다 성숙하고 깊은 경지의 관상기도에 이르는 길을 안내해준다.
‘침묵, 알아차림 그리고 관상’이라는 부제가 보여주듯, 이 책은 기독교적 기도의 본질적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침묵과 알아차림을 통해 이르게 되는 경지, 즉 하나님과의 근원적 일치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한 알아차림이 확장되고 관상기도가 보다 깊은 수준으로 들어설 때 겪게 되는 시련을 비롯해 영적 여정에서 거치게 되는 모든 단계를 자세하게 안내하고 있으며, 침묵과 알아차림을 통해 오늘날 사람들이 불안, 우울, 강박의 지배로부터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의 가치는 삼매(주의집중)나 알아차림에 관한 지혜를 그리스도교 영성 전통 안에서 이야기한다는 데 있다. 이러한 주제에 관해 불교나 힌두교뿐 아니라 그리스도교에도 훌륭한 전통이 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책은 고대 그리스도교 성인과 현자들로부터 현대의 지성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교 영성의 위대한 전통과 수 세기에 걸친 영적 순례자들의 경험을 통해 관상수련 성장의 길로 우리를 안내해준다.
[출판사 리뷰]
그리스도교 관상수련의 뿌리
이 책은 아우구스티누스, 아빌라의 테레사, 헤지키오스, 에바그리우스 같은 그리스도교 영적 스승들의 지혜를 빌려, 어떻게 하면 알아차림의 깊은 수준에 이를 수 있는지를 밝힌다. 더 나아가 관상수련의 가장 좋은 본보기는 바로 예수님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광야에서 사탄과의 대화, 즉 내면의 소음에 휘말리지 않고 초점을 흐트러트리지 않았던 예수님을 관상수련의 본보기로 보는 것이다. 사막의 교부라고 불리는 영적 스승들은 모두 이러한 방법으로 수련했으며, 아우구스티누스는 이것을 ‘화살기도’라고 불렀다. 초기 그리스도교 사막 교부들은 내적 수다가 부채질하는 분심의 교묘함과 막강한 힘을 분석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들이 사용한 언어는 옛날 것이지만 그 통찰만큼은 놀라울 정도로 지금의 상황에 잘 들어맞는다.
마음의 장난과 끊임없는 내적 수다
영성생활의 본질은 무엇일까? 일찍이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하나님은 내가 나 자신에 가까운 것보다 더 나와 가까이 계신다”고 표현했듯이, 하나님과 인간의 근원적 일치를 깨닫는 것이야말로 영성생활의 가장 본질적인 진실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다고 느끼는 것은 우리 마음속에 쉴 새 없이 일어나는 소음과 ‘내적 수다’ 때문이다. 내적 수다는 잠시도 우리를 가만 놔두지 않는다. 남을 비평하든 자신을 비평하든, 끊임없이 평가하고 판단하고 질책하며 고통과 상처를 만들어낸다.
가려운 곳을 피가 맺히도록 긁어대듯이, 손톱을 피가 날 때까지 물어뜯듯이, 우리는 왜 스스로를 할퀴고 상처 내는 것일까? 우리는 왜 우리를 괴롭히는 내적 수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이 책은 이렇게 말한다. “개가 뼈다귀를 물고 놓지 않는 것처럼 우리가 마음의 수다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홍수처럼 쏟아지는 마음의 수다를 멈추게 할 방법이 없다. 침묵수련을 통해 얻게 되는 것은 마음의 수다를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수다에 휘말리지 않는 것, 휩쓸려 떠내려가지 않는 것이다. 관상수련의 결과 우리가 하지 않을 수 있게 되는 것은 ‘생각’이 아니라 ‘생각에 대한 조건반사적인 반응’이며, ‘우리 머릿속에서 쉬지 않고 떠들어대는 소리를 우리 자신이라고 착각하지 않는 것’이다.
삶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내적 고요’의 힘
이 책은 침묵수련을 통해 얻은 지혜와 통찰로 삶의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를 여러 사례들을 통해 소개하고 있다. 우리 정신의 표층적 지각 능력 너머에 있는 깊은 ‘내적 고요’에 이르는 것이 우울과 공황, 분노, 강박을 극복하는 데 어떤 도움을 주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관상수련의 더욱 깊은 경지에 들어서게 되면서 겪게 되는 ‘지성의 혹독한 시련’과 이 고비를 지나서 다다르게 될 ‘찬란한 광활함’에 대해 설명한다.
오늘날 문화와 ‘영성 유행’
요즘은 ‘영성’이 유행이다. 동네 사거리에만 나가도 명상, 심신수련, 요가, 컬러테라피, 아로마테라피 같은 간판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영성 관련 주제는 이제 처방전 없이도 살 수 있는 건강보조제처럼 아주 흔한 것이 되었다. 어쩌면 종교와 신앙이 담당해왔던 역할을 현대사회에서는 이러한 서비스들이 대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막연하게나마 사람들은 ‘뭔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이런 서비스들을 찾는다. 사람들은 무엇을 찾아 헤매는 것일까? 오늘날의 문화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표면의 소리에 반응하고 집중하도록 우리를 훈련시킨다. 그 결과 우리는 다른 사람은 물론, 자기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듣지 못하게 되었다. 우리가 하나님과 분리되었다고 느끼고 평생 동안 하나님을 찾아 헤매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이 책은 우리가 정말로 찾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려준다. 우리가 찾던 하나님이 ‘이미 영원 전부터 존재 안에서 우리를 지탱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관상기도가 선사하는 멋진 신비이기도 하다.
내가 ‘마음의 장난’이나 ‘마음의 비디오’라는 표현을 쓸 때 학생들은 그 의미를 잘 알고 있다. 이런 표현들은 수많은 생각이 주의를 빼앗고, 내적 수다와 비평이 시작되는 상황을 묘사한다. 내적 수다는 되감기와 재생을 수없이 반복하는 비디오처럼 끝없이 되풀이된다. 우리는 은연중에 우리 마음의 비디오와 우리 자신을 동일시한다. 마음의 비디오가 계속 재생되면서 동일시는 습관이 되고, 우리 내면에서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마음의 비디오들뿐이다. 비디오는 재생될 때마다 점점 미묘하면서도 강력한 힘을 얻는다. 우리는 비디오를 우리 자신이라 여기며 비디오의 지배를 받고, 비디오가 시키는 대로 살아간다. 이것이 바로 마음의 장난이다. 마음의 비디오가 돌아가고 마음의 장난이 시작되면 우리는 그것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 2장 마음의 비디오 컬렉션
경건생활이나 일상생활,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삶에서 얻는 은혜가 많아도 관상적 삶을 시작하면 한동안은 수많은 생각에 시달리게 된다. 수많은 생각에 시달리는 것이야말로 관상수련의 특징이다. 우리는 이런 생각과 감정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착각하며 생각과 알아차림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한다. 우리가 이런 차이를 구별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에 위대한 영적 스승들은 알아차림을 발달시키는 실제적인 방법을 가르쳐준다.
– 4장 찬란한 부재: 알아차림의 빛
이제는 생각들이 우리 시선을 잡아끌어도 별로 시달리지 않는다. 또 우리는 자기 비난을 멈추기 시작한다. 머릿속에서 비평을 계속해서 만들어내면서, 다른 한편에서 그런 모습을 끊임없이 비평하는 자신을 더 이상 비난하지 않는다. 우리는 날씨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듯 마음도 있는 그대로 내버려둔다. 이전에 우리는 끊임없이 변하는 날씨(흐렸다가 갰다가 폭우를 쏟았다가 가물었다 하는)를 우리 자신이라 믿어왔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날씨처럼 쉬지 않고 변하는 마음의 비평이 우리의 참된 정체성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 4장 찬란한 부재: 알아차림의 빛
우리 안에는 고요하게 항상 존재하는 내적 평온과 광활함이 있다. 이것들이 삶의 현실을 좀 더 넉넉하고 너그러이 바라보게 한다. 관상수련 초기에는 공중전화박스 안에서 벌을 만난 듯 내적 씨름을 해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벌을 다르게 경험한다. 우리가 좁고 꽉 막힌 존재가 아니라 드넓게 펼쳐진 초원처럼 활짝 열린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에바그리우스는 ‘기도의 다른 이름은 들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현재라는 순간은 어느 때든 우리를 있는 그대로 존재하게 하는 자기만의 확실한 방식을 갖고 있다. 집중된 확장이라는 내적 역설은 현재 순간을 활짝 열어젖힌다. 현재 순간의 ‘찬란한 부재’ 속에서 삶은 부서뜨릴 수 없을 정도로 견고하면서도 붙잡을 수 없을 정도로 유동적인 것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 4장 찬란한 부재: 알아차림의 빛
십자가의 성 요한은 기도생활이 관상기도처럼 단순해질 때 나타나는 세 가지 표지가 있다고 말한다. 첫 번째 표지는 추론적 묵상이 이전처럼 이뤄지지 않으며 만족을 주지도 못한다는 사실이다. 추론적 묵상이란 사고활동, 성찰, 예배, 성경 묵상, 구송기도같이 ‘생각하는 마음’으로 하는 모든 기도 방법을 의미한다. 이전에는 이런 형태의 기도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게 하고 규칙적인 기도 습관을 형성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으나 이제는 영성을 고양하기는커녕 오히려 침체시키는 것 같다. 이전처럼 기도할 수 없다면 그것은 십자가의 성 요한의 말대로 기도가 성장한다는 표지다. 우리가 영의 양식을 먹고 영성생활에 나름 익숙해졌으며 영적 여정에 필요한 용기와 끈기를 얻고 나면 하나님은 우리 영혼이 젖을 떼게 하셔서 우리가 더 굳건한 관상의 길을 걷게 하신다.
– 5장 기도가 지루해지는 까닭
우울증이라는 바큇살로부터 단순한 알아차림이라는 바퀴중심으로 옮겨갈 때는 우울증이 여전히 존재한다 해도 마음에는 광활한 고요가 깃든다. 물론 이를 말하기는 쉽지만 실천하기는 어렵다. 사고하는 마음의 힘은 강력하기에 바탕의식에서 끊임없이 생각의 대상을 만들어내며 알아차림을 대상적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단순한 알아차림의 고요함, 그것을 주시하는 일에 대해 말하고 있다. 주시하는 것은 아주 단순하고 광활한 알아차림 그 자체다. 의식 안에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모든 대상들은 이 바탕의식에서 나오며, 다시 그리로 돌아간다. 이 바탕의식에 응답하는 최선의 방법은 침묵 속에서 단순하게 관상수련하는 것이다. 몇 주가 지나자 우울증과 앨리슨의 관계는 변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우울증이 그녀를 희생제물로 삼았다면 이제는 우울증이 우울증 너머에 있는 침묵을 가리키는 수단으로 변했다.
– 6장 새 창조를 위한 진통
1장 마음의 문 앞에 서다: 관상수련이란 무엇인가?
2장 마음의 비디오 컬렉션
3장 활짝 열린 마음의 문: 침묵과 소음에 관하여
4장 찬란한 부재: 알아차림의 빛
5장 기도가 지루해지는 까닭
6장 새 창조를 위한 진통
7장 지성의 혹독한 시련
8장 관상기도는 나랑 안 맞아?: 관상기도 실천에 따른 여러 문제들
옮긴이의 말
주석 및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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