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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을 달이는 아내 – 기일혜 수필집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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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기일혜  |  출판사 : 크리스챤서적
발행일 : 2000-11-21  |  변형판 (130×210) 168p  |  89-478-0128-3
남편은 어떤 의미로 보면 어머니 곁을 떠나온 어린아이와도 같다. 새엄마 같은 아내 곁에서 어머니를 잊고 살아야 하는 아이. 남편은 결혼과 함께 어머니에게서 아내에게로 생명의 터전을 바꾼 사람이다. 아내라는 낯선 토양으로 옮겨온 외롭고 연약하다면 연약한 생명이다.

[본문 64~67쪽 ‘제1부 나의 정직 만들기’ 중에서]

잊을 수 없는 사모님

지바(일본에 있는 지명)에 있는 벧엘교회로 가는 도중에 나 목사님 댁을 들르게 되었다. 예고도 없이 가는 도중에 들었으므로 나 목사님은 계시지 않았다. 우리 일행인 공 목사님 내외분과 아드님이랑 그래도 잠깐 쉬어가자고 교회당 앞에서 내렸다. 그곳도 지바였다. 일본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보려고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있노라니 나 목사님의 차가 우리들 옆에 멈췄다. 우리는 온 김에 교회에 잠시 들러서 기도하고 가자고 해서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나 목사님 사모님은 저녁을 준비할 것이니 20분만 기다리라고 하시면서 2층으로 올라가셨다. 우리 일행은 교회 안에서 기도하고 음료수를 들면서 담소를 하고 있는데 가까운데서 계시는 벧엘교회의 정 목사님 내외분이 오셨다.
얼마 뒤 2층의 나 목사님 댁 식탁에는 그야말로 근사한 뷔페가 마련되었다. 사모님은 언제 시장 가실 시간도 없으셨는데 이렇게도 잘 차리셨을까? 사모님은 집에 있는 재료를 가지고 요리를 다양하고 빨리 맛있게 만드는 천재 같으셨다. 나중에 저녁을 들면서 알았는데 사모님은 가정학과를 전공하셨다고 했다. 신학도 하시고 간호학도 전공하셔서 지금 일본에 있는 어느 병원에 나가서 중환자들을 돌보신다고도, 한 주일에 몇 번 나가서 주로 중환자들의 목욕을 시키신다고 했다.
목욕은 두 간호사님이 양쪽에 마주서서 물을 끼얹으면서 씻기는데 팔이 아플 정도로 너무 힘이 든다고 하셨다. 그런데 이 힘든 일을 사모님은 얼마간 혼자서도 하셨다고 한다. 내가 놀라면서 그 이유를 물었더니, 맞은편에서 씻기는 일본인 간호사가 뭐에 틀렸는지 사모님과는 안 한다고 해서 그랬다고 한다. 둘이 해도 힘드는 그 일을 사모님은 얼마 동안 혼자서 해내셨다니!… 그 병원의 많은 간호사 중에 한국인은 사모님 혼자라서 더욱 본이 되어야 한다고.
그 병원에는 임종 직전의 환자들이 오니까 목욕은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목욕인 셈이다. 그 병원에 있는 많은 간호사 중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어서 사모님은 그 병원에 파송된 선교사나 다름이 없었다. 그래서 누가 사모님에게 이유없이 화를 내도 참고 부당한 대우를 해도 참는다고 하셨다. 나는 그런 일을 도저히 감당 못할 것 같아서 사모님에게 물었다.
“그렇게 힘든 일을 어떻게 감당하세요? 더구나 얼마 동안은 그 일을 혼자서 해내셨다니… 정말 어떻게 그런 어려운 일을 할 수 있으세요?”
“…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날 위해서 돌아가신 사랑을 생각하면서 하지요… 목욕시키면서 물을 퍼 올릴 때, 그때가 너무 힘이 들어요. 환자 한 사람 씻길 때 물을 바가지로 한 열다섯 번 스무 번을 떠서 부어야 하니까… 그렇게 하루 열다섯 환자를 씻겨야 해요. 너무 힘이 드니까, 찬송을 늘 부르면서 하지요. 그러면 힘든 줄을 잘 몰라요… 환자가 죽어서 나갈 때 간호사들이 병원 마당에 주욱 서서 보내요. 이때 믿지 않는 일본인들은 얼굴이 굳어져서 부들부들 떨어요. 나는 안 떨지요…”
“나는 안 떨지요.” 그 말씀이 내 가슴을 울렸다. 그렇다. 사망을 이기신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은 영생이 있으니까. 죽음 앞에서 떨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나는 그 사모님의 손을 만져 보았다. 얼마나 위대한 손인가. 수많은 죽음을 만진 손. 그래서 이 손은 이렇게도 따뜻하고 푸근하고 넉넉하게 살아 있는가. 나는 사모님의 얘기를 들으면서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에게서 풍기는 거룩한 향기를 느꼈다.
그 뒤 한 20일쯤 지나서 나는 나 목사님 내외분과 음악회에 초대를 받아서 갔다. 방학을 맞아 미국에서 온 목사님의 아드님이랑, 음악회가 끝나고 돌아오는데, 그날은 여름인데도 비가 오고 바람이 세차게 불어서 몹시 추웠다. 목사님이 주차장으로 차를 가지러 간 사이에 나는 사모님 옆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입고 있는 여름옷이 얇아서 무엇으로도 그 추움을 막을 길이 없었다. 계속 떨고 있는데.. 그때 갑자기 옆에 서 계시던 사모님이 나를 뒤로해서 안아주셨다. 내 몸은 갑자기 따뜻한 모포에 감싸이듯이 포근해졌다. 아아, 지금의 내 추위를 녹이는 최선의 방법이구나. 죽은 시체 같은 환자를 늘 사랑으로 만지며 씻기는 사람의 손은 다르구나. 꼭 예수님의 손 같구나. 이렇게 내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주시다니… 나를 감싸주시던 사모님의 손. 내 추운 몸을 녹여주시던 사모님의 손을 오래 잊지 못할 것이다. 나는 그 따뜻한 생명의 손을 두고두고 기억하면서 배울 것이다.

제1부 나의 정직 만들기
1. 아주머니넨 별일 없겠지요
2. 나의 정직 만들기
3. 지리산을 올라가면서 받은 사랑
4. 시시한 호박나물에 속상한다
5. 악을 선으로 이기기
6. 천지가 독인데 아무거나 먹어
7. 어느 박사의 눈물
8. 친절이 거부 당했을 때
9. 가장 잘 웃는 교회
10. 애린 양의 미소
11. 동금교회에서 만난 자매님
12. 나의 겸손 만들기
13. 강 목사님 댁의 이상한 채마밭
14. 엄 집사님 댁의 노오란 토마토
15. 아픔을 보듬으면 사람이 보인다
16. 병문안 가서
17. 잊을 수 없는 사모님

제2부 약을 달이는 아내
1. 약을 달이는 아내
2. 신경질을 내지 않는 아내
3. 말대답을 안 하는 아내
4. 어머니 같은 아내
5. 딸 같은 아내
6. 친구 같은 아내
7. 스승 같은 아내
8. 연인 같은 아내
9. 기도하는 아내
10. 저는 아내가 아니었습니다(일본에서 온 편지)
11. 새집 아가씨의 결근
12. 온유하신 전도사님
13. 수박 얼굴만 보면 맛을 안다
14. 우리 집 분꽃 보러 오세요
15. 불신자들도 보는 성경이 있다.

제3부 어머니의 순종을 보고 배우는 자녀들
1. 어머니의 순종을 보고 배우는 자녀들
2. 골백 번 말하고 골백 번 보여줘야 믿는 자녀들
3. 뜨거운 눈물로 가르쳐야 하는 자녀들
4. 비교당하는 걸 싫어하는 자녀들
5. 선물이요 손님인 자녀들
6. 눈물과 기도를 먹고 자라는 자녀들
7. 진지 잡수세요
8. 소설에나 나올 사람
9. 호박죽을 좋아하는 언니
10. 내가 반찬 얻으러 가는 집
11. 나는 위로받고 싶다
12. 교꼬 사모님
13. 지난 여름에 남은 것
14. 많이 가난하면서 많이 울면서
15. 고생을 사러 다니는 사람

기일혜

1941년 전남 장성에서 출생 1959년 광주사범학교 졸업 1977년 「현대문학」에 단편소설 「어떤 통곡」, 「소리」가 추천 완료되어 등단 1986년 창작집 「약 닳이는 여인」펴냄 1994 – 2000년 수필집 출간 「내가 졸고 있을 때」「가난을 만들고 있을 때」 「나는 왜 사는가」「냉이야 살아나라」 「내가 그리워하는 사람」「며느리는 200년 손님」 「발레리나 잘 있어요?」「쓸쓸한 날에 받은 선물」 「들꽃을 보러 다니는 사람」「내 마음이 가는 사람」 「수박색치마의 어머니」「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 「약을 달이는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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