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일상이 힘 있는 예배가 되다!
시리즈로 만나는 ‘헨리 나우웬 영성’의 진수!
세계적인 영적 스승 헨리 나우웬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우리 일상에 가까이 계시는 하나님’을 소개한다. 현대인을 위한 ‘영성 훈련’의 핵심을 압축해 담은 시리즈, 《헨리 나우웬의 일상의 예배》. 통찰력과 깊이를 겸비한 내용을 저자 특유의 간결하고 쉬운 문장으로 표현해냈다. ‘영성’이나 ‘헨리 나우웬’에 막연히 거리감을 느꼈던 이들이라면, 이 책을 통해 영성 도서 분야에 입문해도 좋을 것이다. 각 권은 휴대하기 편한 작은 사이즈에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분량이다. 또한 곳곳에 일러스트를 배치해 헨리 나우웬의 글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소장용 도서,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선물용 도서로 환영받을 만하다.
이 시리즈는 저자의 삶이 살아 숨 쉬는 ‘일상의 증언’이다. 저자 자신이 평생 실천하며 체득한 제자도이기에 그 내용에 더욱 힘이 있으며, 이 시대를 사는 이들에게 ‘상처 입은 치유자’로서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한 줄 한 줄 밑줄 그으면서 읽게 되는 책!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란 ‘진짜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이다.
“와서 보라!”(요 1:39) ‘풍성함으로의 초대’에 응하는 훈련
「삶의 영성」에 이은 시리즈의 두 번째 편, 「귀향의 영성」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집으로 돌아가는 ‘귀향’에 비유한 탁월한 책이다. 예수님은 오늘도 “와서 보라”시며 우리를 자신의 거처로 초대하신다. 그곳은 풍요의 집이며, 용서의 집이고, 회복의 집인 동시에 기쁨의 집이다.
헨리 나우웬은 우리와 ‘한 집’에 살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간절한 마음을 전하면서 우리의 일상에서 날마다 그 초대에 응하는 훈련을 소개한다. 함께 주님의 집으로 돌아가는 이 여정에서, 저자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듣지 못하게 막는, 혹은 들었으나 부르심에 응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우리 속의 두려움과 상처를 수면 위로 올린다. 그리고 나아가 그 두려움과 상처들을 처리하는 영적 지혜를 제시한다.
이 책이 그려내는 ‘귀향’의 영성을 가진 사람은 자신을 향한 부르심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 그리하여 어디에 살든 그곳을 집으로 삼을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현실의 고통에 마음을 열어 그곳에 숨어 있는 참 기쁨을 발견한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단지 예수님을 외적으로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성육신이 되어 가장 나다운 삶을 사는 것이다. 이제 당신의 ‘참된 집’으로 돌아갈 때다! 예수님을 내 집으로 삼는 인생의 풍요로움을 경험하라!
_35쪽 중에서
그분의 제자가 되고 싶다면 기꺼이 이렇게 말해야 한다. “주님, 이 30분을 주님과 함께 보내고 싶습니다. 제가 몹시 바쁘고 할 일이 많지만, 주님이 저를 사랑하시며 저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원하신다는 걸 믿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으라. 조용히 그분의 음성을 들으라. 그분이 당신을 집으로 초대하신다. 점차 우리는 그 30분만이 아니라 온종일 자신이 그분의 집에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하든 자신이 주님의 집에 있음을 깨닫는다. 주님과 함께 기도 안에 머무를 때 우리는 이 적대적이고 폭력적이고 경쟁적인 세상에서도 내 집에 거한 것처럼 살아갈 수 있다.
_47쪽 중에서
주님을 따른다고 해서 즉시 극적인 조치가 필요한 건 아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작은 답밖에 모르면서 큰 질문을 던질 때가 얼마나 많은가? “내 전 재산을 처분하고 해외 선교를 떠나야 합니까?”
아니, 작은 걸음이면 된다. 평소 당신을 짜증나게 하는 사람들을 좀더 친절하게 대하라. 여기에 영적인 삶의 비결이 있다. 평소에 주님과 교제하며 사는 사람은 자신에게 필요한 작은 걸음들이 무엇인지 안다. 그것은 작지만 신실한 걸음들이다. 우리가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그 걸음들을 내딛으면, 시간이 흐르면서 그 작은 걸음들이 우리를 긴 여정으로 데려간다.
_54쪽 중에서
예수님을 따른다는 말은 그분을 따라하고 그분의 행동방식을 모방한다는 뜻이 아니다. 누군가를 그저 따라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가꾸는 게 아니다. 그보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말은 나만의 독특한 모습, 나만의 독특한 성육신을 하나님의 사랑에 내어드린다는 의미다. 또한 예수님을 따른다는 말은 그분이 그분답게 사셨듯이 나도 가장 나답게 산다는 뜻이다. 내 자존심을 버리고 사랑의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다. 그 방법을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다.
_81쪽 중에서
그랜드캐니언은 내게 이 땅의 한 상처처럼 보였다. 그 상처가 오히려 우리를 치유해준다. 그 이미지는 오래도록 나를 떠나지 않았다. 하나님도 그랜드캐니언과 같은 분이란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나님도 상처를 입으셨다. 그것은 모든 인류의 상처였다. 내가 하나님의 사랑의 심연 속으로 들어가면 내 상처는 가벼운 짐이 된다. 또 하나 깨달은 게 있다. 나는 내 상처를 인정하되 그것 때문에 무력해지지 않을 수 있고, 상처를 품고 살아가되 거기에 함몰되지 않을 수 있다. 하나님의 상처 앞에서 나는 나 자신이 그분께 사랑받는 존재임을 안다. 그 거대한 사랑이 나를 집으로, 즉 하나님의 삶으로 인도한다.
_99쪽 중에서
기도 중에 잡념이 든다면 이는 대개 우리가 현재를 떠나 과거나 미래로 넘어갔다는 뜻이다. 우리는 어제 있었던 일을 생각하거나 내일 있을지도 모르는 일을 걱정한다. 잡념은 우리가 아직 온전히 현존하지 않는다는 증거다. 물론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냥 웃어넘길 수 있다. 하지만 더욱 온전히 현재 속에 있으려는 자세가 중요하다. 알다시피 하나님은 지금 여기에 계시기 때문이다. 기도란 하나님과 함께 현재 속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한 집’에 살자고 당신을 부르신다
1 풍요의 집으로
중심을 ‘나에서 예수로’ 옮기는 영성
2 용서의 집으로
힘을 ‘미움에서 사랑으로’ 옮기는 영성
3 회복의 집으로
상처를 ‘회피에서 십자가로’ 옮기는 영성
4 기쁨의 집으로
일상을 ‘눌림에서 누림으로’ 옮기는 영성
어디든지 ‘예수님이 계신 곳’이 ‘나의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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