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은 설교의 비상사태다.”
월터 브루그만이 쓴 이 표현은 한 서구 신학자의 단순한 과장이거나 억측이 아니다. 이는 “본문이 설교하지 않는 설교, 본문과는 상관없는 설교가 범람하는” 한국 교회의 설교 강단에 적실한 경고라 아니할 수 없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설교의 표절과 베끼기가 여전한 현실을 보자면 “설교의 위기”를 넘어 “비상사태”라는 말이 우리 상황에도 맞아떨어지는 진단이라 할 것이다.
세계적 구약학자이면서 탁월한 설교자로 평가받는 저자의 설교론 가운데 최고의 내용들만 모은 이 책은, 좋은 설교란 어떤 설교를 말하는지, 이 시대엔 어떤 설교가 필요한지, 설교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권위가 무엇인지를 열정적으로 제시한다. 그러므로 진정 잃어버린 설교의 권위와 가치를 되찾고자 하는 이들이라면, 설교자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설교의 자원이 가득 담긴 성경 텍스트가 설교되기를 원하는 이들이라면 단호히 이 책을 집어 들어야 한다.
칼 바르트는 일찍이 설교자들이 처한 난감한 상황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목사로서 우리는 하나님에 관해 말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이기에 하나님에 관해 말할 수 없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의무와 우리의 무능력을 모두 인정하지 않을 수 없고, 이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드려야 마땅하다.”
자신의 의무와 무능력을 모두 인정하는 설교자라면, 어찌 더욱더 겸손히 성경 본문으로 돌아가 거기에 자신을 쳐서 굴복시키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기에 설교가 그 무엇보다 “성경 텍스트와 함께하는 모험”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결국에는 성경 본문이 그 어느 것보다도 더 적실하고 흥미로우며 설득력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설교에 관한 브루그만의 핵심적이고도 대담한 가르침을 모아놓은 본서의 출간은 설교의 비상사태를 해소하는 작은 신호탄이 될 것이다.
다음에 나오는 열여섯 가지 논제는, 복음적인 설교가 오늘날 전혀 새로운 문화적 인식론적 상황에 놓여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 지금은 절대적이었던 교회의 예전 방식들이 더 이상 신뢰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설교 역시 변화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
2. 예전 표현 방식의 실패와 더불어, 전통적으로 행해져 왔던 성경 텍스트에 대한 역사 비평적 이해가 지금은 부적합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
3. 설교와 관련하여 크게 변한 현실은 지역 교회의 ‘해석 공동체’에 존재하는 다원주의입니다. (……)
4. 한편에는 텍스트를 듣고 해석하는 공동체의 관점과 방향성이 다양해지는 다원주의 현상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성경 본문의 다양한 의미를 인식하는 현상이 출현하고 있습니다. (……)
5. 현실은 텍스트로 말미암아 기록되고 형성되며 공인됩니다. (……)
6. 현재 우리 문화를 지배하는 ‘현실을 묘사하는 대본’은, 데카르트와 로크, 홉스와 루소 등 자율적인 개인주의의 개념을 창출한 인물들을 연상시키는 계몽주의 프로젝트에 뿌리를 박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필립 리프Philip Rieff는 그런 개인주의가 ‘치료법의 승리’를 낳았다고 주장합니다. (……)
7. 이런 계몽주의 대본의 전통은 오늘날 우리 가운데서 엄청난 패권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
8. 우리는 이제 인간성의 변혁, 다시 말해 사람이 변화되는 방식이 교훈을 주는 사상이나 과도한 확실성이 아니라 현실을 묘사하는 또다른 대본, 즉 예전의 텍스트와 그 해석을 뒤집고 대안적인 텍스트와 다른 현실 묘사를 도모하는 대안적인 현실관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혹은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9. 성경 텍스트는 그 모든 괴리성에도 불구하고 대안적인 대본을 제공하고 있으며, 이 텍스트를 설교하는 일은 이 대안적인 대본대로 상상을 하면 세상이 어떤 모습이 될지 탐구하는 작업입니다. (……)
10. 이 대안적인 대본의 제안은 크고 포괄적이며 보편적인 주장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고, 대안적인 상상력을 제공하는 구체적이고 세부적이며 국부적인 텍스트를 통해 조금씩 이루어집니다. (……)
11. 설교는 상상의 행위, 곧 어떤 이미지를 제공하여 인식과 경험, 신앙이 다른 방식으로 재조직될 수 있도록 하는 행위입니다. (……)
12. 확실성을 논하는 옛 방식은 더 이상 신뢰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이 텍스트를 설교하는 일은 형이상학을 제공하는 게 아니라 회중이 청중으로 등장하는 하나의 드라마를 연출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때 회중은 어느 때든지 참여자가 될 수 있습니다.) (……)
13. 이처럼 상상 속의 드라마로 이해하는 접근은 내러티브를 그 전형적인 양식으로 삼습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과 그이야기를 살아내는 것이 그 특징입니다. (……)
14. 설교는 (치료가 그러하듯이) 본인이 그동안 확신했던 대본을 버리고, 상상의 차원에서 자신의 인생을 다르게 얘기해 주는 다른 대본에 들어가도록 청중을 초대합니다. (……)
15. 우리가 참되다고 증언하는 대안적인 대본을 제공하는 일은 청중이 현재의 맥락에서 빠져나와서, 다양한 대본들이 어느 정도 진정성과 신빙성을 가질 만한 다수의 대안적인 맥락으로 들어오도록 초대하는 일입니다. (……)
16. 끝으로,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를 막론하고 우리 모두에게 걸려 있는 현실은 백인과 남성, 서양인과 제국주의자에게 있었던 예전의 특권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
– “1.설교는 현실의 이미지를 바꾸는 행위”에서, 55-77쪽
성경의 세계는 증거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지는 장(場)입니다. 신앙 공동체는 ‘피고인석’에 앉아서 거짓 증언을 하지 말고 진실을 말하라는 요구를 받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설교자는 정기적으로 눈에 보이는 자리에 서서 교회의 진리를 세상에, 그리고 하나님의 진리를 교회에 말해야 합니다. 세상은 듣기를 거부할 때가 아주 많고, 물론 교회도 증언을 받지 않으려고 저항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리고 설교자조차 이따금 꼭 말해야 할 내용에서 물러설 때가 있고, 우리 역시 ‘거짓’을 말하는 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사실을 시인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설교는 계속되고, 사람들은 모여서 두려움과 희망을 품고서 온전한 진리를 말해 줄 또 한 번의 증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좋은 설교자는 자신이 받는 압력과 때로 뒤로 물러설 때가 있음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가능성도 활짝 열려 있습니다. 참된 진리에 대해 증언하고, 또 우리의 가냘픈 말이 우리 이웃인 하나님을 올바로 증거하며 그분이 알려지도록 할 수 있는 것입니다.
– “11. 진실을 말하는 설교”에서, 344쪽
1_ 설교는 현실의 이미지를 바꾸는 행위 53
2_ 설교자, 텍스트, 그리고 사람들 79
3_ 고대의 말씀과 현대의 청취 101
4_ 양자택일을 촉구하는 설교 119
5_ 세계를 다시 묘사하는 설교 153
6_ 성경 텍스트의 사회적 성격과 설교 173
7_ 상처받은 자의 부르짖는 소리 207
8_ 삶이냐 죽음이냐 : 특권적 지위를 잃은 설교 243
9_ 포로들에게 행하는 설교 261
10_ 현실을 달리 해석하는 설교 289
11_ 진실을 말하는 설교 327
출처 347
주(註) 348
“텍스트가 설교하게 하라”는 책 제목부터가 감동이다. ‘본문이 설교하지 않는’ 많은 설교를 들으면서 불편해했던 후유증이 한 번에 치료되는 듯한 시원함이 있다. 이 책은 본문과는 상관이 없는 설교가 범람하는 우리의 현실 속에서 시원한 샘물이 될 것이다.
– 정근두 울산교회 담임목사, 『설교와 설교자』 역자
구약학자 브루그만의 이 책은 베르디의 <레퀴엠>과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을 동시에 듣는 것 같은 감동으로 다가온다. 성서 텍스트를 통한 예언자적 상상력에 설교의 중심을 두라는 그의 외침은 주의 재림 때나 들을 수 있는 천사들의 나팔소리처럼 독자들의 영혼을 압도할 것이다. 그는 설교자들에게 강권한다. 성서 텍스트를 직면하라, 그 심층으로 들어가라, 텍스트를 해석하라, 텍스트를 전복적으로 읽어라, 그러면 ‘대담한 행위’인 설교는 살아날 것이다.
– 정용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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