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때문에 공포에 질린다거나 무서워한다는 뜻이 아니다(물론 그런 경우도 가끔 있지만). 성경적 의미의 ‘두려움’은 훨씬 폭넓은 의미를 갖는다. 누군가를 무서워 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또한 누군가를 우러러 보는 것도 포함되며 또는 사람들에게 조종되어 지배당하는 것, 사람을 숭배하는 것, 사람에게 궁극적인 믿음을 두는 것, 혹은 사람을 필요로 하는 것 등도 해당한다.
-p. 18
키에르케고르는 옳았다. 매일 매일이 할로윈과 같다. 가면을 쓰는 것은 우리가 아침마다 이를 닦고 식사하는 것처럼 일상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 가면파티는 전혀 즐거운 것이 아니다. 가면 뒤에 숨은 사람들은 모두 그 가면이 벗겨지는 때가 올까 봐 겁에 질려 있다. 그리고 아닌 게 아니라 가면과 그 외의 가리개들은 모두 언젠가는 없어지게 될 것이다. 영구히 벗겨지는 때가 올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남들의 시선 정도가 아니다. 결국 다른 사람들도 우리와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p. 44
우상이라고 하면 우리는 보통 바알이나 그 외 인간이 만든 물질적인 창조물 그리고 아마도 돈을 생각할 것이다. 우리의 배우자나 자녀들이나 학교 친구 등을 우상으로 생각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선택한 우상은 사람들이다. 바알이나 돈이나 권세보다 사람들이 더 먼저 존재했다. 다른 우상들처럼 사람 역시 피조물이지 창조주가 아니기 때문에(롬 1:25), 사람들은 당연히 우리의 숭배를 받을 자격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남들이 무엇인가를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을 숭배한다. 그들이 우리를 축복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pp. 64-65
성경적인 체계는 수치심에 젖은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방법을 명확히 보여주는 데서 출발한다. 수치심은 우리가 자초하는 것이기도 하고 남들에 의해 생기는 것이기도 하다. 지금 자넷은 이 두 종류의 수치심을 분간해야 한다. 아마도 성경이 조명하는 피해자의 수치심의 실례들을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디나에게 벌어진 일(창 34:5)과 레위기에 기록된 율법에 관련된 예(레 11:24), 성전이 부정한 자들이 들어옴으로 인해 불결해지는 것 같은 예가 있다(시 79편).
-p. 97
종류에 관계없이 모든 인간에 대한 두려움이 가진 공통점은 바로 사람을 위대한 존재로 인식한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우리 삶에서 우상화되고 어마어마하게 위대해지며 우리를 조종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과 사람들을 동시에 경배할 수 없기 때문에 언제든지 사람들이 우리 눈에 위대해지면 하나님은 별것 아닌 존재가 된다. 따라서 인간에 대한 두려움의 올가미를 탈출하기 위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시고 영광스러우신 분인지를 인식함과 동시에 사람들은 그렇지 못함을 이해하는 것이다.
-p. 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