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수메르에서 남미 대륙까지,
시베리아에서 아프리카까지
지구의 모든 땅끝을 찾아 종횡무진 비행하던
작가의 모험은 이제 동물의 세계로까지 날아들었다창조주를 떠나 타락의 길을 걷고 있는 인간이 날이 갈수록 더 무질서하고 불길한 상황으로빠져들고 있는 모습을 동물의 객관적 시각으로 관찰하고 염려하는 우화적 소설.
성경에 등장하지 않는 동물인 까치와 고양이를 내레이터로 등장시켜 지금도 현실 속에서 발생하고 있는 동물 학대와 생명 경시, 그리고 탐욕과 포악의 사례들 속에서 인간의 본성은 과연 어떤 것이며, 인간의 미래는 어떻게 되어갈 것인가를 조망.
서로를 ‘짐승만도 못한 놈’이라고 비난하며 다투고 싸우는 우리는 과연 짐승보다 얼마나 나은 존재인가에 대한 의문을 향해 던진 작가의 진지한 질문.
● 이 땅에 사는 동물들은 왜 창조되었던 것일까?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곳 그 이름이 되었더라(창 2:19)
성경에 보면 모든 생물은 인간에게 유익과 위안을 주고, 인간과 소통하며 교감하는 반려적 존재로 창조되었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을 떠난 후 모든 동물과의 관계는 점점 살벌해지기 시작했다. 짐승의 가죽은 사람의 옷을 만드는 재료로 사용되고 가축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로 희생되기도 했다. 특히 홍수가 끝난 후에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육식을 허락하셨기 때문에 모든 동물은 약육강식의 시대로 들어서게 되었다.
● 채소와 열매를 먹도록 창조된 인간이 어떻게 동물의 고기를 먹게 된 것일까?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생태계는 과연 정당한 것인가?
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창 9:3)
사람에게 채소와 열매를 먹게 하셨던 하나님이 왜 홍수가 끝난 후에는 모든 동물을 잡아먹도록 허락하셨던 것일까? 또 그런 허락을 받았다고 해서 사람이 가축을 치는 과정에 그 생명을 함부로 다루고 마구 학대해도 되는 것일까? 그리고 동물을 식량으로 쓰는 외에 재미로 죽여도 되는 것일까? 동물을 학대하는 습성이 결국 인간 학대로 전이되는 것은 아닐까?
● ‘짐승만도 못한 놈’이라고 비난하며 다투고 싸우는 우리는 과연 짐승보다 얼마나 나은 존재인가에 대한 의문을 향해 던진 작가의 진지한 질문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잠 6:6)
예로부터 사람들은 악한 사람을 ‘짐승보다 못한 인간’이라고 비난해 왔는데, 혹시 우리 모두가 짐승보다 못한 존재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짐승의 시선으로 본 인간은 어떤 존재일까?
하나님은 모든 동물을 인간의 고독을 나누고 일을 돕는 존재로 주신 것 외에 그들을 지혜의 반면교사로 주신 것은 아닐까?
작가는 ‘아직 창조주의 천진함을 지니고 사는 새들과 짐승들의 맑은 눈망울에서 인간의 장래를 염려해 주고 계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궁금증으로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