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버나드
수도원의 개혁자요, 신비주의자요, 신학자였던 버나드는 12세기 기독교의 최고의 인물이었다. 그는 백작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세상의 헛된 영광을 포기하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가난하게 되는 것”이 그의 유일한 관심이었다. 그는 시토 수도회에 가입하여 나중에 그 수도회를 더 엄격하게 개혁하였다. 그가 창립자는 아닐지라도 그가 이 수도회에 들어오기 전에는 거의 존재가 미미했으나, 그가 죽었을 때 수도원의 총수는 350 개나 되었다. 버나드는 당시 기독교와 대조를 나타내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그의 신앙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빈곤과 단순함과 고독 속에서 하나님께 헌신함을 통해서만 얻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1127년부터 원치는 않았지만 기독교계 전체에 걸쳐 세속사에 대해 조언을 구하는 요청을 받았다. 또한 교황청의 분열을 수습했고 그의 믿음의 아들이었던 유진3세가 교황으로 피선되었다. 데이비드 노울즈(David Knowles)는 “그가 폭넓은 독서와 대단한 지성을 가진 사색적인 신학자, 최상급의 문학적 천재이며, 중세 최고의 언어 마술사로서, 그 시대에 홀로 데모스테네스와 키케로, 그리고 버크(Burke)에 비견되는 능력을 가지고 우리를 그의 웅변의 도가니로 끌어들이는 사람임을 발견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버나드의 불후의 명성은 그가 경건 가운데서 열정적으로 하나님과 사랑을 나눈 사람이라는 데 있다. 그는 진정 하나님의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