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티 시리즈>
A. W. 토저 ‘마이티 시리즈’ (A.W. TOZER Mighty Series)
토저는 교인수의 성장을 위해서라면 대중의 인기에 야합하고, 거대 기업의 경영방식을 무차별 차용하고, 할리우드 엔터테인먼트 방식을 예배에 도입하는 것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가하였다. 그는 현대의 교회가 물량적 성장을 위해서라면 교회의 순결성을 포기하는 듯한 자세를 보일 때는 그것을 좌시하지 않고 언제나 선지자의 음성을 발하였다. 듣든지 안 듣든지 이스라엘 교회의 세속화를 준열히 책망했던 예레미야처럼, 토저도 시대에 아부하지 않고 하나님교회의 순정성(純正性)을 파수하기 위해 ‘강력한’(Mighty) 말씀을 선포했다. 그래서 토저는 ‘이 시대의 선지자’라는 평판을 들었다. 토저가 교회의 개혁을 위해 외쳤던 뜨겁고 강력한 메시지를 이 시대의 우리도 들어야 한다. 이제 우리도 말씀과 성령에 의한 개혁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기 때문에 규장에서 토저의 강력한 메시지들을 ‘A. W. 토저 마이티(Mighty) 시리즈’ 로 출간한다.
1부 세상의 비웃음과 따돌림을 두려워하지 말라
교회는 세상의 적대적 태도를 두려워하지만, 성령님은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신다.
십자가의 기독교는 세상의 비위를 맞추려고 아첨하지 않는다.
1장 세상과 타협하며 미지근하게 살지 않는다·17
2장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한다·44
3장 깨끗한 인격으로 성령과 동행한다·64
2부 성령의 힘으로 세상을 제압하라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아닌 외부에서 찾아오는 도움을 받아야 한다.
성령의 권능으로 개인적 부흥을 가로막는 것들을 인정사정 보지 말고 단호히 분쇄해야 한다.
4장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성령의 권능을 받는다·85
5장 주님의 길을 예비하여 영적 부흥을 체험한다·99
6장 성령의 불을 끄지 않고 계속 타오르게 한다·126
3부 세상과 구별된 참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라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행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기적 즐거움’에서 구하고, 우리에게 ‘무욕의 즐거움’을 주시기 원하신다.
7장 내 안에 도사리는 반역을 뿌리뽑는다·145
8장 하나님이 주신 상처로 세상을 이긴다·167
9장 신실한 서원으로 인생 위기를 극복한다·186
4부 세상 기쁨을 버리고 영원한 영적 평안을 얻으라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 살지 않는 것처럼’ 이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
세상 안에서 살되 세상에 속하지 않는 자세로 살아갈 때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할 수 있다.
10장 구원의 기회를 결코 미루지 않는다·211
11장 고독하더라도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한다·236
역사가(歷史家)로서 언제나 나는 도서관의 기록 보관소를 뒤지고, 사람들이 별로 찾지 않는 곳에 틀어박혀 있는 문서들을 찾아낸다. 또한 내가 집필하려는 사건과 시대와 사람들에 대해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난다.
이런 내가 최근에 관심을 갖게 된 인물은 에이든 W. 토저이다. C. S. 루이스와 오스왈드 챔버스(1874~1917, 영국의 성경교사이며 저술가 – 역자 주)를 제외한다면 최근 100년 동안 개신교 저술가로서 토저만큼 폭넓은 독자층을 가진 저술가도 없을 것이다. 토저는 평생 강력한 호소력을 지니는 많은 책들을 저술했다.
1963년 그가 소천(召天)한 이래, ‘주간 얼라이언스’(The Alliance Weekly)에 기고한 그의 사설(社說)뿐만 아니라 많은 설교들이 발굴되고 책으로 출간되었다(한국에서는 토저의 미출간된 모든 책들이 규장에서 「A. W. 토저 마이티 시리즈」로 출판될 예정이다 – 편집자 주). 그의 책들은 널리 읽혀지고 있으며, 설교단과 교단에서 자주 인용되고 있다. 또한 무수한 책, 신문과 잡지의 기사, 선교 서한들에서 예증을 위해 자주 등장한다.
토저가 훌륭한 저술가이며 그의 책이 폭넓은 독자층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꽤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의 책이 특히 젊은이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지 않다. 19세기 말에 큰 사역을 감당했던 무디처럼 토저도 젊은이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지상명령을 감당하도록 도와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탔다.
그가 이런 사명감에 불타게 된 이유를 우리는 순례자로서의 그의 인생 역정(歷程)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하나님의 일에 전적으로 헌신하라는 부름을 십대(十代)에 받았다. 시골 학교에서 교육받은 이 농장 출신의 소년은 17세에 회심(回心)하였다. 회심 직후 그는 성경과 경건서적을 체계적으로 읽는 일에 몰두하였다. 그가 전담 목회자가 되기까지 그를 도와준 두세 사람이 있었는데, 그들은 젊은 토저를 격려하고 좋은 책들을 소개해주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그가 예수님과의 인격적 관계를 계속 추구하도록 가르쳤다.
그들의 이런 노력이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토저는 투표권을 가질 수 있는 나이에 웨스트버지니아 주(州)에서 첫 목회 사역을 시작했다. ‘기독교 선교 연합 교회’ 소속의 작은 교회에서 13년 동안 목회 경험을 쌓은 후 그는 1928년 시카고의 ‘사우스사이드 얼라이언스 교회’로부터 청빙을 받아 부임했다.
부임과 동시에 이곳에서 이 젊은 목회자는, 청년들을 격려하는 일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1959년 캐나다의 토론토로 옮길 때까지 그는 무디성경학교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사역했다. 그는 무디성경학교에서 종종 설교했으며, 그의 교회는 그곳의 학생들을 언제나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여러 해 동안 학생들이 꾸준히 그의 교회를 찾았으며, 그는 그들을 환영하고 그들에게 감동을 불어넣고 성경을 가르쳐주고 그들이 사명감에 불타게 했다.
영혼을 감동시키는 토저의 설교
1940년대에 토저는 독실한 신자이며 역사학자인 레이먼드 에드먼(V. Raymond Edman)과 친한 친구 사이가 되었다. 에드먼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救世主), 거룩하게 하는 분, 치유자 및 다시 오실 왕으로 믿는 기독교의 핵심 교리들을 전폭적으로 믿었다. 당시 휘튼대학 학장이었던 에드먼은 이 핵심 교리들을 단지 말로만 믿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깊은 영적 생활을 위해 철저히 헌신한 사람이었다. 회심 후에 그는 하나님의 은혜가 자기를 변화시키는 것을 분명히 체험했다. 또한 교회사 연구와 개인적 체험을 통해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靈)이 헌신적인 그리스도인들조차 이해하기 힘든 심오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통해 일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토저와 에드먼 사이에 친구로서 여러 교류가 있었지만, 그중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에드먼이 토저에게 휘튼대학 학생들과 접촉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었다. 에드먼은 토저에게 대학의 예배 때 설교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는 거의 매년 토저가 휘튼대학의 ‘피어스 채플’에서 설교했다.
토저가 휘튼대학 학생들에게 끼친 영향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그의 영향이 엄청났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토저와 관계된 몇 가지 자료를 확인해본 결과, 나는 1940년대와 1950년대에 휘튼대학에서 에드먼 박사 다음으로 가장 인기 있는 설교자는 단연 토저였다고 결론 내렸다. 휘튼대학을 다녔던 어떤 사람은 “우리는 토저의 설교를 매우 좋아했습니다”라고 회상했으며, 또 다른 사람은 “우리는 토저의 독특한 설교에 완전히 매료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인격과 표현력을 겸비한 토저
토저가 설교를 통해 그토록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었던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토저는 스테인드 글래스로 장식된 엄숙한 예배당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소위 ‘거룩한 음성’으로 말하는 것을 싫어했다. 그는 일부러 경건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가식적(假飾的)으로 음색을 바꾸어 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또한 그는 근본주의자들이 판에 박은 듯이 상투적으로 사용하는 전문 용어들을 사용하지 않았다.
둘째, 토저는 의사소통의 명수(名手)였다. 그는 생생한 예화들을 풍부하게 곁들여가면서 명쾌하게 성경의 진리를 전하는 데 탁월한 재주가 있었다.
셋째, 토저의 솔직함이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그는 자신의 부족한 점들을 겸손하게 인정했다. 성경의 진리를 단지 머리로만 배우지 않고 실제 영적으로 체험했던 그는 자신과 그리스도와의 깊은 관계 속에서 체험한 것을 설교했다. 그리하여 그의 설교를 들었던 학생들은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과 ‘성경에 의하여 마음이 변화된 사람’을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넷째, 토저의 설교가 휘튼대학의 채플에서 청중의 마음속으로 물 흐르듯 흘러들어갈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그의 탁월한 지식 때문이었다. 지적(知的) 훈련이 잘된 그의 머릿속에는 지식이 가득했다. 그는 지칠 줄 모르는 독서가였다. 그는 역사, 신학, 시(詩), 그리고 철학에 심취했다. 그는 초대 교부(敎父)들의 글에서 진한 영적 음료를 마셨다. 고대 교회사와 중세 교회사를 전공한 탁월한 학자들이 그의 설교를 들었다면, 여러 세기에 걸친 교회의 역사 속에 나타난 영성(靈性)의 대가(大家)들에 대한 그의 해박한 지식에 감탄했을 것이다.
토저는 휘튼대학의 학생들에게 그들이 들어보지 못한 저자들을 소개했다. 그가 들려준 신비적 체험에 대한 이야기들은 그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요컨대, 그가 휘튼대학에 발을 들여놓을 때마다 학생들은 감동적인 설교를 들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마음이 설레었다. 그리고 그는 영적인 감동과 지적(知的)인 자극을 얻기를 원하는 그들의 기대를 결코 저버리지 않았다.
삶을 변화시키는 토저의 메시지
토저는 전후(戰後) 미국 교회들의 상태를 정확히 진단했다. 사람들은 영적 양식에 굶주려 있었지만, 누구도 그들을 먹이지 못한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었다. 사람들의 머리는 교리와 성경의 진리로 가득했지만, 그들의 마음은 차가웠고 그들의 영(靈)은 혼수상태에 있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이 뜨겁게 타오르는 것이다”라고 그는 외쳤다. 휘튼대학의 학장도 그의 말에 동의했고, 그곳의 학생들도 동의했다.
물론 토저에게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가 휘튼대학에서 설교를 끝냈을 때 교수 한 명이 그에게 “당신은 신비적 기질이 좀 있군요”라고 비판적으로 말했다. 그는 “네, 저는 다소 신비적 신앙인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그렇게 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와 인격적 관계를 맺을 방법이 있습니까?”라고 대답했으며, 학생들은 그의 대답에 지극히 만족했다.
여러 가지 면에서 토저의 메시지는 시의적절(時宜適切)했으며, 한 세대가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이 책에 실린 11편의 메시지는 그가 1950년대 초반에 휘튼대학의 학생들에게 전한 것으로, 이번에 처음 출간되는 것이다.
그의 설교들을 찾아내어 읽었을 때, 토저의 메시지가 반세기 전의 사람들에게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딱 들어맞는다는 확신이 나를 사로잡았다. 만일 그가 오늘날 살아 있어 강단에서 설교한다면 과거와 마찬가지로 ‘시대를 초월하는 진리’를 전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의 메시지가 당시 세대의 사람들의 삶을 바꾸어놓았듯이 오늘날도 우리 모두의 삶을 변화시키게 해달라고 나는 기도한다.
휘튼대학 교수 – 라일 도르셋(Lyle W. Dorsett) –
국민일보 기사 2005.2.5- 정수익 기자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지 말라”
여러분은 어떤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인도 어차피 세상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법,적당히 세상과 타협하고 야합하면서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세상이 던져주는 싸구려 기쁨을 거부하고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만 살고 있습니까?
미국의 유명한 목회자이자 설교가이면서 저술가였던 에이든 W 토저가 여기에 대한 답을 나름대로 제시했다. 1963년 소천한 토저의 글과 설교들 중에서 이와 관련된 내용들을 묶어 ‘세상과 충돌하라’(규장·02-578-0003)라는 책으로 출간된 것.
‘세상과 동행할 것인가,성령님과 동행할 것인가’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에서 토저는 “하나님은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는 편한 길을 철저히 반대하신다. 세상과 불화하라. 겁먹지 말고 당당히 맞서라”라는 요지를 일관되게 주장한다.
세계 2차대전 이후 미국 교회들의 상태를 정확하게 진단한 그의 말은 현재 우리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고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한 마디 한 마디는 결코 우리의 상황과 결코 동떨어져 있지 않다. 사람들은 영적 양식에 굶주려 있지만 누구도 세상과 멀리 하지 못한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사람들의 머리는 교리와 성경의 진리로 가득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차갑고 그들의 영(靈)은 혼수상태에 있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그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이 뜨겁게 타오르는 것”이라고 외쳤다.
물론 그에게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는 그런 사람들에게 “내가 다소 신비적 신앙인으로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그렇게 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와 인격적 관계를 맺을 방법이 있습니까?”라고 반문했다.
‘세상의 비웃음과 따돌림을 두려워하지 말라’ ‘성령의 힘으로 세상을 제압하라’ ‘세상과 구별된 참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라’ ‘세상 기쁨을 버리고 영원한 영적 평안을 얻으라’ 등 4개의 테마로 구성된 내용은 옹골찬 그의 사상과 주장이 선명하게 박혀 있다. ‘토저 전문 번역가’라는 닉네임이 붙은 이용복 박사의 깔끔한 문체가 쉬우면서 재미있다.
어쨌든 토저의 이야기를 읽으면 우리는 스스로의 신앙생활을 반성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된다. 이는 목회자든 평신도든 마찬가지이다. 그의 이야기를 잠깐만 들어보자.
“그리스도인들이여,무릎 꿇고 세상을 흉내내지 마라! 과거에 세상이 교회를 따랐던 적이 있었다. 교회가 주도권을 쥐고 앞장서 나갔으며 세상은 교회를 뒤따랐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반대이다. 지금은 교회가 무릎을 꿇고 세상을 흉내내고 있다. 과거의 교회는 어린양의 아름답고 혈색 좋은 신부였으나 지금의 교회는 쪼글쪼글한 늙은 걸인 같다. 지금의 교회는 세상의 거리로 나가 세상 사람들에게 동전 한닢을 구걸하기 위해 손을 내밀고 있다.”
그의 이야기는 갈수록 거침이 없다. 지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일침을 넘어서 커다란 해머로 사정없이 후려치는 듯하다.
“오늘날 기독교가 그 많은 시간과 돈과 노력을 쏟아부으면서 세상에 전하는 것은 무엇인가? 성경적 기독교와 세상을 섞어놓은 기독교 즉,‘혼혈 기독교’를 전하지 않는가? 명심하라. 십자가의 기독교는 세상의 비위를 맞추려고 아첨하지 않는다. 교회는 자신의 성경적 원리 위에 우뚝 서서 세상에 성령님의 음성을 들려주어야 한다. 그러면 세상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올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세상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런데 현재의 기독교는 세상의 편한 방법들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세상과 마찰 없이 지내고 있다고 보았다. 그는 이런 기독교와 교회에 성령님이 ‘이제 깨어나라’고 말씀하신다는 것을 알리고자 했다. 그는 “하나님,우리가 여기 있나이다. 우리가 의지할 분은 하나님뿐이오니 우리를 도우소서”라고 기도하기를 촉구했다.
정수익기자 sag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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