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교회 다니는데, 믿음만으로 될 일은 아니야!”
“이게 현실이라고!”
틀린 말이 아니다.
사울의 말은 합리적이다. (중략)
하지만 다윗은 달랐다.
다윗은 자신의 경험치나 환경,
골리앗의 조건이나 경력 등을 보지 않았다.
이 모든 사실 너머에 있는 진실, 즉 하나님을 보았다.
어떻게 이 상황에서 이런 시선을 가질 수 있었을까?
하나님을 많이 사랑했기 때문에?
아니면 세상 물정을 몰라서?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세상 물정 빠삭한 사울의 현실감보다는
하나님 앞에 순전한 다윗의 순수함이
더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 (23,24쪽)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는데 결과가 기대와 다를 때가 있다.
오히려 손해볼 때도 있고 상황이 더 악화될 때도 있다. (중략)
그날 이후, 한 선배를 만나 내 마음을 하소연했다.
하나님 뜻에 순종하여 복음을 전했는데 서로 민망해지기만 했다고….
하소연을 들은 선배는 이런 조언을 해주었다.
순종이란 순종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그러니 그분의 뜻을 따랐으면 그걸로 된 거라고….
이상하게 그 말이 위로가 되었다.
그 후로는 결과를 의식하지 않고 순종하게 되었다.
나쁜 말로는 ‘기대하지 않고’ 순종하게 된 것이고
좋은 말로는 ‘마음을 비우고’ 순종하게 된 것이다.
무엇이든 좋은 것이라 생각한다. (107,108쪽)
좋은 상황을 조금 더 좋은 상황으로 바꾸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도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극적인 반전, 완전한 역전, 어두움에서 빛으로.
상황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뒤집을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시다.
그러기에 오히려 현실은 약속과는 정반대여야만 하리.
그래야 뒤집힌 그날이 왔을 때 여지없이 인정하게 될 테니.
‘하나님이 하셨구나…!’라고. (143쪽)
하나님은 어떤 ‘사회적 지위’를 꿈으로 주시지 않는다.
사람을 꿈으로 주신다.
그리고 그 사람을 가장 효율적으로 돌보게 하기 위해
‘사회적 지위’나 ‘직분’을 주신다.
다윗의 본질적 부르심도 왕이라는 ‘지위’가 아닌
이스라엘인이라는 ‘국민’이었다.
왕이라는 지위는 그 국민을 돌보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자리였다.
그래서 그를 왕으로 부르신 것이다.
단지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는 이 역할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인류 역사의 몇 안 되는 왕 중 한 명이었다.
그래서 세상의 왕들이 왕좌를 놓고 혈투를 벌이고 있을 때,
그들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것이다. (150,15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