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측, 과장, 허위로 점철된 요한계시록 해석의 문제점을 폭로하면서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이신 어린양을 따르는 제자가 되라고 도전하다!
요한계시록은 두 도시, 바벨론과 새 예루살렘이 벌이는 전투를 기록하고 있다. 마침내 바벨론은 패배하고 새 예루살렘이 승리할 것이다. 이 놀라운 진실을 믿으려면 상상력이 필요하다. 외딴 섬에 유배된 불온한 1세기 반체제 인사 요한의 입장에서 보면, 강성한 제국 로마가 한낱 식민지인 예루살렘에게 패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당대를 향한 요한계시록의 메시지였으며, 오늘 우리 또한 불의한 세상에서 예수님을 신실하게 따를 수 있는 놀라운 비전을 발견할 것이다.
[출판사 리뷰]
스캇 맥나이트가 되살린 요한계시록의 진정한 메시지,
이 책은 불의한 체제를 거부하는 기독교 제자도 선언이다!
“마침내 요한계시록이라는 책의 혼란스러운 아름다움, 그 신비를 이해하게 되었다. 맥나이트와 매칫은 억측과 과장, 허위로 점철된 해석들을 폭로하고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 곧 어린양의 길에 대한 참된 예언을 풀어 준다. 요한계시록 읽기는 불의한 체제에 맞서는 제자들인 하나님의 백성을 집결시키는 나팔 소리다.”
_마이클 고먼, 미로슬라브 볼프, 린 코힉, 베스 앨리슨 바 추천
1972년 겨울, 고등학교 2학년이던 스캇 맥나이트는 개인적인 회심을 경험했다. 그의 삶은 송두리째 바뀌었으며, 기독교 신앙에 열광하는 열혈 고교생으로 새로 태어났다. 그렇게 성경을, 그리고 요한계시록을 펼치게 된 그는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묵시록, 종말론, 휴거에 관한 책들을 모으고 탐닉했다. 당시에는 70년대의 세계사적, 정치적 사건들이 성경과 어떻게 맞아떨어지는지 억측하는 게 대유행이었다. 세상의 파국이 코앞에 이르렀으니 위를 올려다보지 않으면 결국 버려지고 남겨질 것이며 온 세상이 불타 버릴 것이라는 확신이 넘쳐 났다.
스캇 맥나이트도 이런 어처구니없는 억측을 오랫동안 믿었다. 10대 시절뿐 아니라 심지어 신학을 공부하던 청년 시절과 갓 교수가 되었을 무렵까지 진심으로 믿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교회가 아직 이 땅에 머물러 있다는 엄연한 사실은 그 많던 설교자와 작가들이 남발하던 예언이 다 허풍이었다는 말이었다. 이를 통해 그는 요한계시록을 제멋대로 해석하면서 난도질하는 현실에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다. 억측에 기반한 요한계시록 읽기는 교회를 병들게 하고 현실 도피를 가르칠 뿐이다. 이런 해석에 경도된 교회는 이 경이로운 책에 집약된 저항 정신을 상실할 것이고,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가 되는 일은 수포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적그리스도와 천년왕국을 두고 억측을 남발하는 책이 아니라면 도대체 요한계시록은 어떤 책인가? 21세기 미국 복음주의는 어쩌다가 그 신학적 기반을 상실했는가? 어쩌다가 그들 자신이 싸워야 할 괴물이 되었는가? 두 저자는 교회, 특히 복음주의 진영을 향해 요한계시록의 진면목을 보여 준다. 요한계시록은 불의한 체제에 대항하는 제자도를 요구한다. 오늘날의 바벨론에 거주하면서도 그것에 저항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라고 도전한다.
요한계시록의 예수께서 말씀하신 제자도는 우리 곁에 현존하는 바벨론을 분별하라고, 순응주의자가 아니라 반체제 인사가 되라고 가르친다. 수많은 해석들이 ‘누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가에만 집착하다 보니 우리는 참된 제자도의 메시지를 놓치고 말았다. 이 책의 목표는 바벨론이 시공을 초월해 존재한다는 통찰력을 가지고 요한계시록 읽는 법을 배우고, 바벨론 한가운데서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충성된 증인이 될 수 있는지 알아가는 것이다. 요한이 대언하는 메시지는 강렬한 빛이 되어, 세상 속에서 은밀히 활동하는 바벨론의 실체를 훤히 드러낸다. 그 과정에서 바벨론에 공모한 교회들의 만행도 드러날 것이다.
미국의 신학적, 목회적, 정치적 흐름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한국 사회와 교회에도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가 긴요하다. 요한계시록은 두 도시, 바벨론과 새 예루살렘이 벌이는 전투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는 용의 수하에서 나와 어린양의 편에 서야 한다. 마침내 바벨론은 패배하고 새 예루살렘이 승리할 것이다. 이 놀라운 진실을 믿으려면 상상력이 필요하다. 외딴 섬에 유배된 불온한 1세기 반체제 인사 요한의 입장에서 보면, 강성한 제국 로마가 한낱 식민지인 예루살렘에게 패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당대를 향한 요한계시록의 메시지였으며, 이를 통해 우리 또한 불의한 세상에서 어린양 예수를 신실하게 따를 수 있는 놀라운 비전을 발견할 것이다.
상상력은 눌린 자, 낙망한 자, 방랑자, 갈망하는 자도 위로한다. 요한계시록에서 범람하는 숱한 상징과 이미지들을 오감으로 체험한다면, 아무리 더딜지라도 용기를 잃지 않고 절망이 가득히 내린 설원 한가운데를 저벅저벅 걸어갈 것이다. 만주의 주,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을 더욱 굳건히 신뢰할 것이다. 어떤 독재자나 폭군이 와서 삶의 자리를 짓밟아도 우리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은 판타지나 픽션의 세계와 꽤 비슷하다 할지라도 판타지나 픽션이라고 못박을 수는 없다. 그러한 상상력에 힘입어 요한은 나아감과 멈춤, 새로운 나아감과 더 많은 멈춤으로 가득 찬 텍스트를 생산했다. 요한은 자신의 묵시록을 통한 여정에서 상상력을 자극하여 우리를 불의한 체제에 저항하는 제자로 형성시킨다.
_“3. 요한계시록과 상상력” 중에서
거듭 강조하지만, 요한계시록을 읽는 수많은 방법 중에서 사자가 어린양임을 모르는 경우는 없지만 어린양이 이 책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무심코 지나치곤 한다. 그런 해석 방식을 따르면 어린양이란 아마겟돈의 요란하고 피비린내 나는 전투에서 칼을 움켜쥔 채 승리한 사자와 다를 바 없다. 이러한 기독론은 이 일이 ‘언제 일어날지, 어디서 일어날지, 누가 적그리스도가 될지’를 두고 억측하기 십상이다. 그렇게 요한계시록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만다. 이 사자는 (우리가 곧 보겠지만) 선혈이 낭자한 전장에서 칼 대신 비폭력의 무기, 하나님의 말씀으로 승리하는 어린양이다.
_“7. 어린양” 중에서
세 번에 달하는 일곱 심판을 이해하려면, 공의를 세우고 하나님의 행위를 요청하며 정의를 확립해 달라는 기도로 이 모든 심판을 품어야 한다. 이 심판은 보복을 도모하지 않으며, ‘샤덴프로이데’(타인의 불행에 기쁨을 느끼는 마음)를 부추기지도 않는다. 승리주의나 식민주의와도 무관하다. 결코 그런 일에 동참할 수 없다. 불의가 제아무리 참람할지라도 하나님은 그 참화를 끝내 바로잡으신다. 세 번의 일곱 심판은 순차적으로 일어날 처절한 보복의 연대기가 아니다. 세 심판은 따로 돌아간다. 하지만 필요할 때마다 한목소리가 되어 이렇게 외친다. 하나님께서 공의를 세우사 바벨론의 악은 소멸되고, 새 예루살렘은 분명한 현실이 될 것이라고.
_“11. 3×7=완성” 중에서
이 모든 것은 오늘날 우리네 삶을 관통하는 핵심 질문으로 이끈다. “우리의 신앙은 국가 및 국가권력과 너무나 긴밀하지 않은가?” 기독교 국가주의는 4세기부터 교회를 감염시켰다. 로마라는 국가와 교회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오랜 세월 골칫거리가 되었다. 이제 교회가 정부나 국가, 군의 관할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상숭배와 다를 게 없는 뒤섞임 속에서 제국의 상징은 국가주의와 종교의 상징으로 변모하고, 종교적 국가주의는 그리스도를 한낱 자기 권력의 수하로 두려 한다. 우상숭배자들은 국가에 힘을 실어 주기 위해 기꺼이 종교를 이용할 것이다. 당신은 어떤가? 교회에 국기가 스스럼없이 나부끼고 있지 않은가? 제자로 훈련받아 어린양을 따르는 사람들은 국가주의의 망령을 분별하고, 기존 질서를 거부하는 제자로서 그 망령에 저항한다. 요한도 옳다 하면서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_“17. 일곱 교회로 파고든 바벨론” 중에서
요한계시록은 이 세상에서 어린양의 편에 설 것을 요구한다. 이 책을 잘 읽으려면 ‘하나님의 정치’ (theo-politics)라는 관점으로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즉,요한계시록은 한결같이 제자도의 공공성을 이야기한다는 말이다. 요한계시록은 자신이 창조한 이 세상을 하나님이 어떻게 바라보시는지 ‘계시’하면서, 용과 야수들과 바벨론을 분별하는 법을 함께 보여 준다. 사회 참여에 나선다면서 하나님을 사적인 삶의 언저리에 남겨 둔다면 요한계시록을 현실에서 구현하지 못한다. 이 책은 하나님의 정치만이 유일한 정치라고 말한다. 엘리자베스 피오렌자가 거듭 일깨워 주듯이, 요한계시록은 “정의를 부르짖는 사회정치적 상황 속에 직접속해 있을 때만 우리에게 적절한 신학적-윤리적 답을 내어 줄 것이다.”
_“22. 불의한 체제를 거부하는 제자 선언” 중에서
1부 처음 만나는 요한계시록
1. 너무 많은 잡설들
2. 누구를 위해 기록되었는가?
3. 요한계시록과 상상력
2부 연극 요한계시록
4. 바벨론의 정체
5. 바벨론의 특징들
6. 용과 그를 따르는 짐승들
7. 어린양
8. 충성된 증인
3부 극적 내러티브의 특징
9. 드라마 요한계시록
10. 막간 단상
11. 3×7=완성
12. 종횡무진하는 예언자들
13. 하나님의 심판인가 징계인가?
14. 환상, 정의로운 세상을 약속하다
15. 새 예루살렘을 상상하며
16. 새 예루살렘, 이기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약속
4부 바벨론에서 살아간다는 것
17. 일곱 교회로 파고든 바벨론
18. 바벨론에서 예배하라
19. 예배는 증언이다
5부 지금 필요한 불온한 제자도
20. 오늘의 바벨론을 분별하는 네 가지 표
21. 바벨론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22. 불의한 체제를 거부하는 제자 선언
부록
부록① 세대주의를 구성하는 일곱 세대
부록② 묵시란 무엇인가?
부록③ 적그리스도
부록④ 아마겟돈
부록⑤ 고대 신화들
부록⑥ 휴거의 짧은 역사
부록⑦ 휴거인가 부활인가?
부록⑧ 요한계시록은 판타지인가?
부록⑨ 천년왕국
부록⑩ 유토피아, 유크로니아, 진보주의
부록⑪ 요한계시록의 노래들
부록⑫ 진보주의의 진보
추천 주석서
추천 연구서
후기
주
성경에서 가장 당혹스러우면서도 희망이 서려 있는 본문을 다룬 너무나 흥미롭고 흡인력 높은 책이다. 어떻게 하면 바벨론에 거주하면서도 바벨론에 저항하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집이요 창조의 목적인 새 예루살렘을 소망하면서도 세상에서 의롭게 행동할 수 있을까? 요한계시록은 그 길을 가르쳐 준다.
_미로슬라브 볼프, 예일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교수, 예일 신앙과문화연구소 소장, 『배제와 포용』(IVP) 저자
마침내 요한계시록이라는 책의 혼란스러운 아름다움, 그 신비를 이해하게 되었다. 맥나이트와 매칫은 억측과 과장, 허위로 점철된 해석들을 폭로하고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 곧 어린양의 길에 대한 참된 예언을 풀어 준다. 요한계시록 읽기는 불의한 체제에 맞서는 제자들인 하나님의 백성을 집결시키는 나팔 소리다. 우리는 오만과 탐욕, 착취와 군사력으로 구축된 오늘의 바벨론에서 공적인 제자도를 지켜야 한다. 그리하여 이 책은 궁극적으로 요한계시록의 진정한 중심, 즉 보좌에 계신 하나님과 어린양께 드리는 경배에 초점을 맞춘다.
_린 코힉, 휴스턴 신학교 신약학 석좌교수, 『NICNT 에베소서』(부흥과개혁사) 저자
탁월하고도 거침없는 속도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이해하기 어려운 책 요한계시록을 이해하게 만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 복음주의자들은 어쩌다가 자신의 신학적 기반을 상실했는가? 어쩌다가 그들 자신이 싸워야 할 괴물이 되었는가? 그 진실을 이 책은 명확하게 보여 준다. 그리고 불의한 체제를 거부하는 제자가 되라고 용기를 불어넣는다. 우리는 이제 용의 수하에서 나와 어린양의 편에 서야 한다. 저자들은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이 미몽에 그치지 않으리라는 희망을 선사한다. 이 책은 내가 읽은 요한계시록에 관한 책 중에서 가장 강렬한 해석을 제공한다. 덕분에 우리는 기괴한 예언과 통속 소설에서 벗어나 복음의 진리로 되돌아갈 수 있다. 필독을 권한다.
_베스 앨리슨 바, 베일러 대학교 역사학 교수, 『처치 걸: ‘성경적 여성’을 형성한 역사 속 결정적 장면들』(IVP)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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