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의 수요일에서 부활절까지 47일간, 우리 안에 있는 거짓 전능감을 인정하고 이를 회개하며 하나님과 화해하도록 안내하는 매일 묵상집이다.
전 세계적인 감염병 위기를 통과하면서 목회상담학자인 저자는 사람들이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모습을 보며 고대 근동에서 사람들이 얼굴을 가림으로써 자신의 애통함을 표현했던 일을 떠올린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것은 비말 전파로부터 서로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만, 영적인 의미에서 보면 얼굴을 가려야 하는 것이 우리가 지금껏 달려온 길을 돌아보고 자신의 죄에 대한 슬픔을 표현하라는 하나님의 뜻이 아닐까라고 저자는 질문한다. 하루에 한 편씩 읽도록 구성된 이 책을 읽어 나갈 때, 그동안 애써 회피하고 있던 자신의 죄와 자기중심성, 우월감 또는 열등감을 깨닫게 되는 아픔도 있겠지만, 결국에는 이를 다 고백한 후에 순전한 마음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찬양하는 기쁨을 누릴 것이다.
● 출판사 서평
“나는 구원받기 위해 회개했고, 이제는 구원받았으므로 회개한다.”
회개는 영적 성장의 출발점이다. 회개를 통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의 자리매김이 이루어지고, 삼위 하나님과의 교제가 시작되고, 하나님의 자비와 위로를 얻는 영적 여정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성령님은 우리의 마음을 움직여 우리 자신의 죄를 보게 하시고, 회개할 마음을 주시고, 죄를 슬퍼하는 눈물을 주신다. 전 세계적인 감염병의 위기를 통과하면서 목회상담학자인 저자는 회개라는 무거운 주제를 화두로 삼는다. 인간에게 필요한 궁극적인 위로는 하나님과의 화해에서 오는 것인데, 하나님과 화해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죄를 철저히 인정하고 예수님의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남자들이 수염을 자부심으로 생각하던 고대 근동에서 천으로 입술을 가리는 행동은 애통함을 표현하는 행위였다. 에스겔의 아내가 죽었을 때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슬픔의 눈물을 흘리지 말고 “입술을 가리지 말”라고 명령하셨는데(겔 24:16-17, 22), 이처럼 천으로 입술을 가리는 것은 슬픔의 표시였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일상적으로 마스크를 쓰면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각성하고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애통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숙고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거짓 전능감 · 자기중심성 · 자기 비하를 버리고, 주권자 하나님께 나아가는 기쁨
목회상담학 교수인 저자는 인간의 죄 문제를 다루기 위해 다양한 심리학 개념을 가져온다. 우리 안에 자리 잡고 있는 거짓 전능감, 자기애, 착한 아이 콤플렉스, 자기 몰입감, 인정 중독, 합리화, 자기 비하 등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죄가 되는지를, 그리고 인간의 자기 충족성과 자기 의존성과 자신감이 우리의 회개를 어떤 방식으로 막는지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안에 있는 분노의 악순환과 집단적 죄를 직시하고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이에 대한 책임 의식을 가지고 통회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고도 도전한다.
인류의 모든 죄를 담당하신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묵상하게 될 사순절이야말로 우리가 회개의 은혜와 기쁨을 누리기에 가장 좋은 때이다. 이 회개의 기쁨을 누리고자 하는 모든 성도에게 이 책은 신실하고 유익한 안내서이다.
● 이 책의 특징
– 재의 수요일에서 부활절까지, 날마다 자신의 죄를 깨닫고 성결한 삶으로 나아가도록 안내하는 사순절 묵상집이다.
– 성경과 상담학 이론에 근거해서 우리 사회와 개인 안에 있는 죄의 실체를 드러낸다.
–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로 인해 기쁨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실제적인 예를 들어 설명한다.
– 개인적으로 날마다 한 편씩 읽으며 묵상해도 좋고, 사역자라면 사순절 동안 매일 설교 자료로 이용할 수 있다.
성경이 말하는 인간은 프로이트의 모델과는 다르다. 성경은 모든 인간의 마음에 강한 자기중심성과 죄의 본성이 있다고 말한다. 인간의 죄성은 광범위하고 파괴적이어서 자기 힘으로 극복할 가능성은 없다. 죄에 경도된 인간의 마음은 불안이나 신경증을 만들어 내는 정도가 아니라 인격과 삶과 관계를 오염시키고 영원한 형벌로 끌고 갈 만큼 파괴적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의식적인 죄와 무의식적인 죄, 곧 알고 지은 죄와 모르고 지은 죄를 구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죄를 회개해야 한다. 예수님은 인간의 모든 죄를 위해 스스로 희생하신 제물인 동시에 인간을 위해 용서를 비는 중보자이다(사 53:12). 슬픈 마음으로 회개한 사람은 용서를 받지만 회개하지 않은 사람은 심판하실 주님을 대면할 것이다.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계 1:7). _ “(사순절 10일) 후회의 처소”
벌거벗은 임금님이 자신이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것을 정직하게 직면하는 데는 어린아이의 단 한마디면 충분했다: “임금님이 벌거벗었다!” 천진난만한 아이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생각해 보았을 때, 임금님은 자신이 ‘착한 사람에게만 보이는 값비싼 옷’을 입은 것이 아니라 실제로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벌거숭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자신이 벌거숭이임을 아는 것, 자신이 가난하고 가련한 존재임을 아는 것은 “네가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었다”는 예수님의 한마디면 충분하지 않겠는가? 그 의미를 아는 것에서 회개는 시작된다. 벌거숭이는 수치심에 옷을 찾으려 할 것이고, 가난한 사람은 배고픔에 먹을 것을 달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벌거벗고 있으면서도 비싼 옷을 걸친 양, 배가 고픈데도 배부른 양 허세를 부리고 있다면, 은총이 찾아올 리 만무하다.
회개는 착각에서 깨어나 자신의 빈곤함을 처절하게 깨닫는 데서 시작한다. 영적으로 자신을 아는 기준은 주님의 진단이다. 주님의 말씀이 기준이고, 주님이 주시는 비판적인 자기 성찰이 기준이다. 내 권리, 내 인생, 내 경험을 기준으로 삼는 변종 우상은 여전히 우리의 눈을 멀게 할 뿐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비종교적인 것 같아도, 우리 마음은 사실 이 시대의 화려한 각종 우상이 지배하고 있다. … 우리는 유한성을 받아들여 하나님께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내 인생은 내 권한임을 악착같이 확인하려 든다.”(팀 켈러, 『내가 만든 신』). 영적인 벌거숭이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주시는 주님의 처방전은 회개였다. _ “(사순절 17일) 자신이 부자인 줄 아는 벌거숭이”
다른 것이 아니라 마음이 가난하지 않은 것이 죄다. 가난함이 죄가 아니라, 가난함을 인정하면서 절박하게 엎드리지 않는 것이 죄다. 웬만한 죄악에는 흔들리지도 않고 회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이 죄다. 그것은 교만이며 게으름이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낮아짐과 의존성의 모든 특질을 가진 겸손이다.
심령이 가난할 때 우리는 우리의 남은 생애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운 처분 때문에 가능한 것임을 고백할 수 있다. 우리의 지식이나 재능 때문이 아니라 오직 선하고 의로우신 하나님 덕분에 살아간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지금도 나는 나의 인생이 매 순간 파산 상태임을 뼈저리게 느낀다. 이것은 단순한 앎의 문제를 넘어 몸소 체득한 문제임을 새삼 깨닫는다. 나는 구원받기 위해 회개했고, 이제는 구원받았으므로 회개한다. _ “(사순절 19일) ‘저는 파산하였습니다’”
참된 회개는 죄의 고백에서 시작해서 변화된 행위로 이어진다. 참으로 회개하는 사람은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슬퍼한다. 아울러 자신의 행위가 초래한 피해자의 아픔을 공감한다. 영적으로는 하나님께 입힌 거절과 거역의 상처를 가슴 아파한다. 과거 자기의 선한 행위가 지금의 악행보다 훨씬 크므로, 회개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변명하지도 않는다. 내가 사과했으니 상대는 마땅히 용서해야 한다고 요구하거나 압력을 가하지도 않는다. 그까짓 것을 왜 잊지 않고 또 생각나게 하느냐고 뻔뻔하게 따지지도 않는다. 자기를 위한 방어 장치를 해제하고 그저 재를 덮어쓴 참회자처럼 입을 다무는 것, 그것이 회개이다. 선지자 이사야처럼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다고 고백할 뿐이다(사 64:6).
참된 회개자는 구차하게 변명하거나 피해자를 비난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용서가 어떤 것이든 그것을 하나님의 기적이라 여기며 감사할 뿐이다. 변명과 회피의 유혹에 단호하게 저항하며,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다고 자랑하기 전에 먼저 자기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의 용서를 구한다. 여기에 믿음과 용기가 필요하다. 회개하여 용서받았다고 하면서도 피해자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가 없다면 그것은 책임 회피일 뿐 회개가 아니다. _ “(사순절 21일) 불의한 권력의 변화를 요구하는 회개”
누군가의 말처럼 인간이 태어났다고 하는 것은 곧 죽을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는 뜻이다. 회개한 사람은 그 죽음을 통해 가장 영광스러운 것을 상속받을 권리를 얻는다. 그것은 세상 모든 사람이 갈망하는 영생이다. 그 권리는 죽음을 통과해야만 얻을 수 있는 권리이다. 모든 인간은 반드시 한 번 죽는다. 회개한 사람은 예수님을 비롯한 성경의 인물들을 만날 것이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은 사람은 끔찍한 갈증과 소음의 왕국에서 평소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낯선 것들을 보며 눈을 뜨게 될 것이다.
천국은 상속받을 재산과 같다. 상속은 실력이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관계’로 이루어진다. 천국의 상속은 하나님과의 가족 관계로만 이루어진다. 회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롬 8:15), 하나님의 “맏아들”(롬 8:29)인 예수님과 형제가 되게 하는 유일한 조건이다. 천국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상속한다. 회개를 거절하는 것은 하나님과 한 가족이 되어 천국에서 영원히 함께 살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_ “(사순절 28일) 영원한 보상, 천국”
참된 회개는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매일의 주제 선율이다. 우리의 매일은 죄를 회개하는 새날이다. 회개하기 위해 죄를 더 지으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껏 죄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사실은 얼마나 자기중심적이고 더러운 죄였는지를 더 깊이 깨닫고 진지하게 고백할 뿐만 아니라, 거룩함과 용서함을 받은 새로운 삶을 시작하라는 것이다. _ “(고난주간 토요일) 하나님이 귀중히 여기시는 것들”
거짓 전능감(사순절 1주차)
(사순절 5일) 전능감을 깨트리는 물맷돌
(사순절 6일) 착한 사람 증후군: 착한 사람은 착하지 않다
(사순절 7일) 자기 과시와 타인의 관심에 목마른 삶
(사순절 8일) 자기 자랑으로 가득한 기도
(사순절 9일) 나는 잘못하지 않았어
(사순절 10일) 후회의 처소
(사순절 11일) 회개가 필요 없는 사람들
시대의 착각(사순절 2주차)
(사순절 12일) 스스로 신이 된 사람들
(사순절 13일)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선(線)
(사순절 14일) 합리화와 착각
(사순절 15일) 자아-동질성의 위험
(사순절 16일) 진리는 필요 없다는 포스트모더니즘
(사순절 17일) 자신이 부자인 줄 아는 벌거숭이
(사순절 18일) 당신의 왕은 누구인가?
회개가 주는 은혜(사순절 3주차)
(사순절 19일) “저는 파산하였습니다”
(사순절 20일) 우상을 쉼 없이 만들어 내는 마음 공장
(사순절 21일) 불의한 권력의 변화를 요구하는 회개
(사순절 22일) 먼저 죽은 사람의 소원
(사순절 23일) 자유를 주시기 위한 희생
(사순절 24일) 우리 영혼을 하나님께 연결하기
(사순절 25일) 회개로 인도하는 수치심
회개가 주는 기쁨(사순절 4주차)
(사순절 26일) 상한 마음과 얼굴을 가림
(사순절 27일) 성(性)과 죄
(사순절 28일) 영원한 보상, 천국
(사순절 29일) 우리의 마음을 찔러 회개시키다
(사순절 30일) 당신의 회개는 거절되지 않습니다
(사순절 31일) 신속한 용서
(사순절 32일) 빈틈없는 구원자 하나님
오늘날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사순절 5주차)
(사순절 33일) 가난한 사람에 대한 무감각
(사순절 34일) 듣고 싶은 말을 들을 때까지
(사순절 35일) 서운하고 섭섭한 마음
(사순절 36일) 분별력과 의지로 여과해야 할 감정
(사순절 37일) 매끄러운 죄의 길에 자신을 놓아 버리는 죄
(사순절 38일) ‘나는 기도하는 사람’이라는 자부심
(사순절 39일) 급한 마음으로 많은 말을 쏟아낼 때
그리스도를 닮은 회개(종려주일, 고난주간)
(종려주일) 이웃과 세상의 죄를 회개하는 그리스도인
(고난주간 1일) 이 시대의 폭력성과 가혹함
(고난주간 2일) 우울감보다 우월감이 더 낫다?
(고난주간 3일) 삶의 구체적인 이야기를 공유하는 사랑
(고난주간 4일) 자녀를 낙심하게 하는 부모의 죄
(수난 금요일) 부주의한 권력 사용
(토요일) 하나님이 귀중히 여기시는 것들
사죄의 기쁨(부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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