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단 두 가지 상태로 존재한다. 즉 하나는 본성적인 삶이며, 다른 하나는 그 안에 하나님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삶이다. 또한 인간은 본성과 하나님 중 하나가 살아 역사하도록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 말하자면 마음속에 두 가지가 모두 존재하기 때문에 그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이 세상에 가만히 정지해 있는 것은 없다. 인생은 계속되며 어떤 식으로든 늘 현실로 나타난다. 선은 일종의 울림이다. 또한 마음속에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이 사랑의 영으로 호흡하기까지 강렬한 본성과 맞서 투쟁하는 힘에 불과하다. 사랑은 오직 축복과 선이며 하나님의 본성이다. 따라서 하나님인 사랑의 영이 마음속에 살아 역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은 진정한 신앙을 가질 수 없으며 실제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없다.”
– 32쪽 사랑의 영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중에서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인의 거룩함은 이따금 나타났다가 없어지는 그런 것이 아니다. 또한 단지 특정한 시간이나 장소, 행동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거룩함은 우리의 생각, 뜻, 소망, 거룩한 성향 가운데 늘 살아서 꿈틀거린다. 따라서 이러한 삶을 살지 않으면 거룩하고 선할 수 없다. 거룩함으로 인해 선한 자로 부름을 받기 위해서는 마음속에 지속적인 성령의 역사하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성령과 선한 영은 서로 다르지 않다. 즉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다면 선한 영이 인간의 마음을 인도하고 다스릴 수 없다. 따라서 둘 중 하나가 없으면 다른 하나를 가졌다고 볼 수 없다.”
– 45쪽 지속적인 인도하심이 필요하다 중에서
“굽은 길은 구불구불한 모양을 없애고 바로 만들지 않는 이상 곧은길이 될 수 없다. 그리고 사실 둥근 모양을 버리는 것이 곧은길이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이 필요한 것도 이와 마찬가지다.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고자 인간이 되셨다. 즉 타락한 인간의 본성을 스스로 감당하사 비뚤어지고 악한 우리를 창조 당시의 선한 모습으로 돌려놓고자 하셨다. 굽은 길을 곧은길로 만들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이 되신 것은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리스도는 타락한 본성으로 육신의 삶을 살면서 그 모든 것을 이겨내셔야 했다. 그래서 온갖 고난과 죽음의 죄악 된 모습을 벗어버리고 거기서 벗어나셔야 했다. 마치 곧은길이 되기 위해 굽은 모양과 휜 정도를 제거하고 없애는 과정이 필요하듯이 말이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은 주님이 타락한 인간의 모든 죄악을 이겨내고 선을 행하실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 75쪽 십자가만을 자랑하고 고백하라 중에서
“인내와 온유로 자신을 내려놓는 것은 눈에 보이는 삶의 모든 일과 관련된다. 그런데도 이것은 주로 인간의 내면 상태를 다루고 있다. 즉 타락한 마음의 걱정, 혼란, 연약함과 무질서를 다룬다. 스스로 조급해지고 화가 나며 교만하고 완고해질 때 우리는 인내와 온유와 겸손으로 하나님께 자신을 맡겨야 한다. 이는 다른 사람이 교만하며 화내고 복합적인 감정으로 공격할 때 온유한 마음으로 인내하는 것보다 더 고귀하고 유익하다. …오직 자신을 온전히 내려놓을 때 자비로우신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실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리이며 현실이다. 이처럼 우리는 항상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는 간단하고 확실한 방법을 통해 넉넉히 유익을 얻을 수 있다. 고난이 가져오는 혼란이 크면 클수록 점점 최고의 위안에 다가서는 법이다. 단, 인내하며 하나님이 그 모든 것을 주시리라 기대한다면 말이다. 극도의 고난만큼 마음속에 거룩한 위안을 가까이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은 없다.”
– 121쪽 자신을 온전히 죽이고 내려놓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