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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와 백합에게 배우라

$28.00 $19.60

발행일 : 2022-08-08  |  (128*188)mm 282p  |  979-11-92348-02-5
● 비교의 늪에 빠진 당신, 저 들의 백합과 공중의 새를 보십시오!
● 사람인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한지 저들에게 배우십시오.
● 어떤 동전도 황제의 형상을 새기지 못할 만큼 작지 않는 것처럼, 어떤 사람도 하나님의 형상을 새기지 못할 만큼 비천하지 않습니다.

[해제]

이 작품은 1847년에 출판된 《다양한 정신의 건덕적 강화》에 실린 3부의 작품 중에 2부에 해당됩니다. 이 작품의 덴마크어 원 제목은 “Hvad vi lære af Lilierne paa Markenog af Himmelens Fugle”으로, 우리 말로 옮기면, “들의 백합과 공중의 새에게서 우리가 배우는 것”입니다. 이 작품은 총 세 개의 강화로, “사람인 것에 만족하기,” “사람인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사람인 것에 얼마나 복된 행복이 약속되어 있는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키르케고르의 강화가 철학이나 신학이라기보다는 문학적 면모가 뛰어나다는 것입니다. 짧지만 굉장히 중요한 기독교 사상을 담고 있습니다. 그의 실존의 3단계 사상도 들어 있을 뿐 아니라, 인간이란 무엇인지 그 본질을 다루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다루고 있는 전반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람인 것에 만족하기
1장의 주제는 “사람인 것에 만족하기”입니다. 우리가 왜 사람인 것에 만족하지 못할까요? 그 이유는 바로 ‘비교’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신과 다른 사람을 끊임없이 비교합니다. 비교 때문에 사람인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무언가 다른 것을 추구한다는 것이지요. 문제는 우리가 이 ‘비교’하는 마음을 제거할 수 없다는 겁니다. 아무리 비교하지 않으려 해도,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비교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따라서 키르케고르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들의 백합과 공중의 새가 있는 곳으로 초대합니다. 이 공간의 특징은 인간의 비교가 닿지 않는다는 겁니다. 바로 여기에서 중요한 것이 ‘투명성’입니다. 인간의 비교가 있는 곳에서는 내가 누구인지 밝히 드러나지 않습니다. 우리 자신에 대해 명확히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들의 백합과 공중의 새가 있는 곳은 인간의 비교가 닿지 않는 곳이므로, 더욱 나 자신이 누구인지 명확히 알 수 있다는 것이죠. 이것은 키르케고르가 그렇게도 강조했던 ‘하나님 앞에서’와도 맥을 같이 합니다. ‘하나님 앞에’ 있을 때만 우리의 전존재가 다 드러나듯이, 바로 들의 백합과 공중의 새가 있는 곳이 그런 역할을 합니다.
먼저, 들의 백합과 공중의 새가 있는 곳으로 초청받은 자가 누구입니까? 비교 때문에 염려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행복할 수 없었고, 심지어 세상에서 버림받은 자처럼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복음은 말합니다. “저 들의 백합을 보라!” 염려하는 자는 복음의 명령대로 백합을 봅니다. 그런데 이 백합은 정원사가 있는 정원의 백합이 아닙니다. 정원사가 있는 곳은 혼란스럽습니다. 왜냐하면 정원사가 있는 곳은 정원사가 가꾸었기 때문에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저 들의 백합을 보십시오. 들의 백합은 아무도, 아무도 가꾸지 않았습니다. 즉, 백합은 버려진 자처럼 있습니다. 마치 염려하는 자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버려진 것처럼 보이는 백합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입이 딱 벌어집니다. 이렇게 염려하는 자는 백합의 아름다움에 빠져 백합을 바라보다가 문득 생각이 스쳐갑니다. 버려진 것처럼 보이는 백합이 이토록 아름다운 것은 틀림없이 누군가 가꾸었다는 사실을, 또한 버려진 것처럼 보이는 염려하는 자 역시 버림받은 것이 아니란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때 그는 사람인 것에 만족할 수 있는 첫 번째 생각을 얻게 되는 것이지요.
1장은 이렇게 우리가 사람인 것에 만족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비교가 닿지 않는 곳으로 가야함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그야말로 초연결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되고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끼리도 연결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일하게 단 하나의 존재만은 예외인 것처럼 보입니다. 바로 ‘하나님’만은 이 연결에서 제외된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인간의 삶은 비극입니다. 키르케고르의 주장대로, ‘하나님 앞에서’만 인간의 전존재가 드러나는 것이 사실이라면, 현대가 구축하고 있는 세계는 모든 걸 다 연결해도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비극’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나 자신이 누구인지, 사람인 것에 만족하기 위해서는 세상의 모든 혼돈으로부터 벗어나 참 하나님을 경험하는 지점, 다시 말해, 세상과의 연결을 단절하고 오직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도록 저 들의 백합과 공중의 새가 있는 곳으로 초청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람인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2장의 핵심 주제는 ‘아름다움’입니다. 이 단어는 원래 덴마크어로는 ‘herligt’라는 단어로 ‘사랑스러운’, ‘영광스러운’, ‘아주 멋진’ 등으로 옮길 수 있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내용상 이 강화가 미학적 담론을 포함하고 있기에 영어로는 ‘glorious’로 옮기고 있으나 이 단어를 주로 ‘아름다운’으로 옮겼습니다. 키르케고르는 이 주제를 다루기 위해 성경본문으로 마태복음 6장 29절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으니라.”

백합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 입은 것이 이 꽃보다 아름답지 않습니다. 키르케고르는 여기에서 백합이 입은 옷은 ‘존재론적인 옷’임을 강조합니다. 다시 말해, 백합의 옷은 백합의 존재와 분리할 수 없습니다. 백합의 옷은 백합 자체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백합은 아무리 아름다울지라도, 하나님을 닮지는 않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닮은 존재로 지음받은 것은 인간뿐입니다. 하나님을 닮지 않은 백합이 이렇게 아름답다면, 하물며 하나님을 닮은 인간은 얼마나 더 아름답습니까! 여기에서 확실한 문제점을 찾습니다. 인간이 이 아름다움을 상실한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 아름다움을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요? 이것은 하나님을 닮은 사람이 되는 겁니다. 다시 말해, 키르케고르는 솔로몬이 입은 그 영광을 버리는 길만이 하나님을 닮을 수 있는 방법으로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분입니다. 따라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닮은 모습은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입니다. 눈에 보이는 백합의 아름다움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솔로몬의 입은 영광을 버리는 길’이란 무엇일까요? 인간은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고 불러 왔습니다. 즉, 스스로 이 세상의 주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은 창세기 1장 28절과 관련이 있습니다. 즉,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을 닮기 위해 이 세상의 ‘지배자’로 군림한 것입니다. 하지만, 키르케고르가 보기에 이 길은 필경 망하는 길입니다.
키르케고르는 창세기 1장 28절보다 더 중요한 구절이 창세기 1장 27절임을 강조하면서 본문에서는 ‘첫 번째 생각’이라고 말합니다. 즉,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고, 하나님을 닮았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기독교가 ‘정복’에만 관심이 많았고, 이 형상을 닮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던 겁니다.
결론적으로, ‘정복’을 통해서는 하나님을 닮을 수 없습니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아무 것도 아닌 자(nothing)’가 되었을 때만이, 하나님을 더욱 닮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바로 이것이 ‘솔로몬의 영광을 버리는 길’이고, 참다운 아름다움을 회복하는 길입니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무’가 되는 이 운동을 ‘예배’라 부릅니다.

사람인 것이 얼마나 복된 행복이 약속되었는지
이것은 이 책의 마지막 주제인 3장에 해당됩니다. 특별히 3장에서는 마태복음 6장의 말씀 중에서, 33절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먼저, 키르케고르는 이 작품에서 하나님 나라는 사람에게 약속되어 있는 행복의 이름으로 소개합니다. 복된 행복은 결국 이 강화의 핵심입니다. 이는 또한 영원하면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입니다. 이 영역은 오직 믿음의 눈으로만 보입니다. 반면, 보이는 세상에는 슬픈 운명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 자연의 평화는 언젠가는 창백해지고, 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키르케고르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 모든 것들’, 혹은 다른 복음서에 쓰인 대로라면, 나머지. 오, 하나님의 나라가 얼마나 복된 행복입니까! 당신이 새와 백합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얻는다면, 자연이 갖고 있는 아름다운 모든 것을 얻는다면, 그것은 모두 이 단어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즉, 나머지, 이 모든 것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가 얼마나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이 모든 것들과 비교할 때, 마치 이 모든 것들을 무시하는 것처럼, 경멸하는 것처럼, 그것들에 초연한 것처럼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에 다 소개할 수는 없지만, 키르케고르에게 하나님 나라는 믿는 자의 궁극적 목표요, 하나님의 의(righteousness) 자체입니다. 본문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시작은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것이고 의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이것이 우리가 의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기 위해 어딘가로 출발하는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 이유입니다. 반대로, 당신은 머문 자리에 남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당신에게 할당된 과업입니다. 이 장소에서 이탈하여 어디론가 찾으러가는 것은 이미 불의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일을 시작하기 전에 다른 어딘가에서 먼저 구해야만 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때 당신이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했다는 것은 진실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눈에 보이는 세계가 사라지고 쇠락으로 침몰하는 동안,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머문 자리에 남습니다. 그리고 시작은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것입니다. 지진이 나면 사람들은 더 안전한 장소로 도피합니다. 산불이 나면 나무가 없는 지대로 도피합니다. 홍수가 나면 더 높은 지대로 도피합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세계가 쇠락으로 침몰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때 그는 도피할 수 있는 다른 장소가 없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머문 자리에 남아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먼저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궁극적으로 영원히 지속될 것입니다. 복음은 말합니다.

“없어질 것도 영광 가운데 있다면, 길이 있을 것은 훨씬 더욱 영광가운데 있을 것이다.”(고린도후서 3:11)

빈곤 가운데 사는 것이 힘들다면, 빈곤에 대하여 죽는 것은 얼마나 쉬운 이별입니까!

해제: 다양한 정신의 건덕적 강화 소개 · 17

Chapter 1 사람인 것에 만족하기 · 35
해제: 모순의 변증법 · 95

Chapter 2 사람인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 119
해제: 사람은 언제 아름다운가? · 169

Chapter 3 사람인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 211
해제: 윤리를 초월한 하나님의 나라 · 243

이론과 사상의 시대가 저물었다지만, 우리는 시대를 읽어낼 이론과 사상에 목마르다. 우리 시대를 위한 단 한 명의 기독교 사상가를 꼽으라면 주저하지 않고 이 사람을 호명한다. 쇠얀 키르케고르! 태어남과 동시에 모든 사람이 자동적으로 그리스도인이 되는 시대와 사회에서 거듭나지 않고서는, 부모와 관습을 떠나서 스스로 하나님을 단독자로 만나지 않고서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고 그는 단호하게 외친다. 예수를 믿지만 교회는 다니지 않는 사람들, 교회 안에는 있지만 불신자와 다를 바 없는 이들로 넘쳐나는 우리 시대의 교회를 읽어내고,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한 사람은, 오직 키르케고르 이 한 사람뿐이다. 20세기 초, 19세기를 보내고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며 길을 찾던 칼 바르트, 폴 틸리히 등에게 환한 빛을 비춘 이가 키르케고르였듯이, 21세기의 기독교 역시 그를 통해 새로운 시대를 헤쳐나갈 수 있으리라. 20세기의 한 신학자가 “한 손에는 성서를, 다른 한 손에는 신문을”이라고 말했던가? 21세기의 모토는 이것이다. 한 손에는 성서를, 다른 한 손에는 키르케고르를! 그렇게 하는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 척박한 풍토에서 희망의 불씨를 지피려고 힘껏 수고하는 출판사에 경의를 표한다. 저문 해를 바라보며 눈물 머금던 이들에게 이제 작은 등불이 하나 생겼다. 어떤가, 기름 가득 채운 등불 들고 새날을 함께 열어 봄이.
– 김기현 목사_로고스교회 담임목사 · 《욥, 까닭을 묻다》의 저자

150여년 전 덴마크에서 발간되어 나왔던 ‘기독교 강화집’이 귀한 뜻을 가진 분들의 수고를 통해, 오늘 여기에서 우리말로 생생하게 읽을 수 있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많은 현대 사상가들에게 영향을 준 키르케고르가, 유대 광야에 널리 울려 퍼졌던 예수 그리스도의 산상설교를,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 전해주는 내용을 대하면서 작은 전율이 일어남을 느낍니다. 키르케고르의 후기 저작인 본서는 특별히 인간성 상실의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은혜를 통해 최고의 걸작품(포이에마)이 된 인간의 아름다움을 노래합니다. 인생의 수많은 문제에 둘러싸여 살아가면서 염려하고 비교하고 자만함에 취하는 인간 군상들에게, 솔로몬의 영광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백합화와 공중 나는 새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면서, 그것들과 함께 당신이 하나님 앞에 서 있음을 느낄 때 너는 가장 아름다운 존재가 된다고 한 외침이 깊이 와 닿습니다. ‘인간의 영광과 위엄과 고귀함을 회복하는 것’이 복음이라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이 나를 최고의 걸작품으로 빚어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만족하고, 기뻐하고, 베풀고, 창조세계를 세우며 살라는 권면과 지혜를 만납니다. 들의 백합화의 외침을 이렇게 생생하게 듣기는 처음입니다. “나도 이렇게 아름다운데,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당신은, 얼마나 더 아름답습니까!” 일독을 권합니다.
– 김운용 교수_장로회신학대 총장 · 예배/설교학 교수

우리에게 신학자보다는 실존주의 철학자로 더욱 알려지고 소개된 키르케고르의 사상이, 그 어떤 신학자보다도 신앙적임을 알기 원하는 분들에게 이 책을 읽을 것을 추천한다. 물질과 번영에 대한 갈망과 비교의식,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는 현대인들에게 들의 백합과 공중의 새를 보고 배우라는 저자의 권면이 언뜻 추상적으로 다가올 수 있겠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어느덧 이 말씀 속에 감추어진 예수님의 마음이 우리를 사로잡고 있음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참 제자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알기 원하고, 더 나아가 제자도를 실천하며 주님의 참 제자가 되고자 하는 독자들은 바로 이 책 들의 백합과 공중의 새를 보고 배워야 할 것이다.
– 김태식 교수_한국침례신학대 교회사 교수

평상시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에서도 벗어나 있는 들의 백합과 공중의 새가 키르케고르를 통해, 우리의 일상 속 믿음의 자리로 쑥 들어옵니다. 그것도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회복의 중심에 새와 백합이 있는 공간이 클로즈업된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습니다. 목회자는 그 공간에서 바른 신앙의 삶을 살고자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세울 수 있는 길을 찾습니다. 뿐만 아니라 저자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구하며 그 하나님나라를 인간의 행복과 동일시하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들려주는 복된 메시지입니다. 일상 가운데 조용히,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회복하고, 믿음의 복된 삶을 살기 원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적극 추천합니다.
– 김화수 목사_주님의교회 담임목사

이창우 목사님을 중심으로 키르케고르 시리즈가 계속해서 번역 출간되고 있는 것은 국내 키르케고르 독서 생태계를 조성해 가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특별히 역자해제는 여느 키르케고르 전공자도 하지 못했던 탁월한 해석으로, 가히 세계적으로도 뛰어난 해제라 하겠다. 키르케고르의 왼손격인 철학서적은 한국에 많이 보급되었는데, 지금까지 소개되지 않았던 오른손격인 기독교 강화집이 소개되어 우리 손에 들어온 것은 큰 행운이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간에게 요구되어 진 것은 성과와 업적주의였고, 수량주의와 명령하달의 수직적인 인간 관계 속에서 우리는 지쳐있다. 주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의 영혼과 정신이,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의 발달을 오히려 따라가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 가운데, 황폐하고 소외된 현대인에게 백합과 새가 있는 들판으로의 초대는 가슴설레는 일이다. 사람인 것에 만족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아름답고 행복하며 복된 일인지. 우리는 들판에서 인간사의 비교에서 벗어나, 침묵 가운데 새와 백합에게 배우며 묵상하고 사유하는 기쁨을 누린다. 바로, 인간은 선택해야 한다는 것, 이 선택이 얼마나 귀하고 복된 것인지, 이 책을 읽으며 독자의 삶에서 감사를 되찾으실 수 있기를 축복한다.
– 마은희 목사_둥지상담소 소장

신학대학원 시절부터 책을 놓지 않는 신실한 학구파인 역자를 알고 지냈다. 그에 연구 노력에 걸맞게 어려운 책을 쉽게 내놓은 것은, 웬만한 인내가 아니었음을 짐작케 한다. 키르케고르의 책이 세상에 소개되는 것은, 이런 인고의 시간을 견딘 분들의 노고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한다. 1장, 사람인 것에 만족하기에서는, 새와 백합의 삶을 본받고 흠모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다움에 대한 복음의 관점을 설명하는 듯 싶다. 즉 새와 백합을 통해, 자기 자신이 되는 법을 배우자고 말한다. 한마디로, “정말로 새처럼 살면서도 새가 아니고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곧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1장의 결론이다. 2장, 사람인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에서는, 사람이 하나님을 닮는 것이 예배라고 정의를 내렸다. 얼마나 멋진 표현인가? 사람은, 일하는 존재로서 일하는 하나님을 닮아가기에 아름다운 것이다. 하나님을 예배하며, 하나님과 동역하라! 3장, 사람인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에서는, 결국 인간의 행복은 선택에 달렸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 나라를 구하는 “의”를 선택할 때 인간은 행복한 존재가 된다. 어떤 필연에 의해서 평범한 목회의 길을 포기하고, 평생 글쓰기에 매진했던 저자의 이야기들을 쉽게 이해하기는 어려웠으나, 분명 인내심을 가지고 읽으면 좋은 보약 한첩 먹은 영적 포만감을 느낄 만한 책이다.
– 박한수 목사_제자광성교회

키르케고르의 이 책은 다소 가볍게 느껴지는 제목과는 달리, 영적통찰은 무척이나 깊고 넓습니다. 키르케고르의 인간 본질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예수님 말씀의 깊은 해연(海淵)이 무엇인지를 독자들에게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만족, 아름다움, 행복 등은 현대인들의 가장 큰 관심사입니다. 이에 대한 성경적인 해답을 원하는 성도들과 이를 돕기 위해 효과적인 가이드가 필요한 목회자들에게 선물과 같은 좋은 책입니다. 번역자들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리며 일독을 추천합니다.
– 안광복 목사_상당교회 담임, 장신대 겸임교수

흔히 실존주의 철학의 대부로 불리는 키르케고르는 철학사를 넘어 신학사에서도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는 인물이다. 그럼에도 그가 오롯이 철학자로만 알려진 이유에는 그의 여러 신앙적 저술이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탓이 크다. 카리스 아카데미는 이런 현실을 안타깝게 여기고 손수 여러 저서들을 번역하고 소개해 왔다. 이 책은 비교적 짧은 강화임에도 매우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새와 백합이, 참된 피조물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침묵으로 말해준다. 키르케고르에 따르면, 그들의 보잘 것 없음은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이 무엇인지를 드러내는 표지이다.
우리는 주님께 영광을 올린다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자신의 영광을 바랄 때가 많다. 자신도 모르게 비교와 질투를 일삼으며 나의 번영을 위한 신앙을 영위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은 변질된 복음에서 벗어나 새, 백합, 피조세계,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지으신 주님으로부터 진정한 인간됨을 배우도록 다독인다. 사실 키르케고르의 글은 마냥 쉽게 읽히지만은 않는다. 하지만 지난 출간물들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역자의 방대하고 꼼꼼한 해제가 큰 도움을 준다. 앞으로도 카리스 아카데미의 노력을 통해, 키르케고르의 저술을 포함한 여러 숨겨진 보물들이 출간될 것을 기대해 본다.
– 오성민 선교사_유튜브 Damascus TV 대표

《죽음에 이르는 병》으로 유명한 쇠얀 키르케고르는 기독교인 철학자로 매우 유명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의 신학과 사상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이유에서 키르케고르의 글이 번역되어 한국교회에 소개되는 것만으로도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키르케고르는 유신론적 실존주의를 이끈 선구자입니다. ‘신 앞에 선 단독자’로서의 인간의 주체성을 강조하였고, 헤겔의 관념론을 비판하며 실존적 인간을 지향하였습니다. 특히 인간의 불안과 절망에 대해 깊이 탐구하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이를 극복하는 것을 실존주의 철학의 관점에서 설명하였습니다. 그의 유명한 저서 《죽음에 이르는 병》의 부제가 “건덕과 일깨움을 위한 기독교 심리학적 해설”일 정도입니다.
키르케고르의 건덕적 강화 시리즈가 계속해서 번역되고 소개되는 것은 키르케고르의 중심사상을 알려주는 매우 중요한 작업입니다. 또한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지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극복하기 어려운 죽음, 절망과 불안의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극복할 것인가를 깨닫게 해 주는 작품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본래성을 회복하고, 진정 살아있고 또한 충만하게 살아가는 것’에 이 책 시리즈가 많은 도움을 줄 것으로 생각합니다.
또한, 절대적 진리의 존재를 부정하며 끊임없는 해체와 부정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는 현대사회의 이념적 파시즘에 대항하여, 오직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힘과 격려를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특별히, 알 수 없는 걱정과 불안에 사로잡혀 끝없는 절망의 나락에 빠져 허우적대는 현대인들에게 한줄기 빛과 같은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로 전해질 것을 확신하며 이 책을 추천하는 바입니다.
– 이순창 목사_연신교회 담임목사 · 통합측 부총회장

들의 백합과 공중의 새의 이야기를 우리는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키르케고르는 이 이야기를 심사숙고하며 설명한다. 새는 새로서 존재하고 백합은 백합으로서 존재한다. 그래서 새나 백합에게는 염려가 없다. 그러나 사람은 사람으로 존재하는 것에 대한 만족이 없다. 그래서 염려가 생기는 것이다. 《새와 백합에게 배우라》를 통해 사람인 것에 만족하고, 사람인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또 얼마나 행복한지 깨닫기를 바란다. 세밀한 번역뿐만이 아니라 자세한 해제까지 첨부해 주신 이창우 목사님의 노고에 감사하며 숙독을 권한다.
– 조은식 교수_키르케고르 학회 회장 · 숭실대 교수

중세 프랑스 시인이자 신학자인 블루아의 피터(Peter of Blois)의 말을 빌자면, 역자는 키르케고르라는 거인의 어깨 위로 난쟁이인 우리가 오를 수 있도록 돕는 안내자다. 키르케고르는 근현대 보수신학의 아버지다. 키르케고르는 개인이 전체에 흡수되어 사라지는 헤겔 철학에 대항하여 유신론적 실존주의를 시작했다. 키르케고르 이후로 개인은 하나님 앞에서 단독자로 자신을 명확하게 인식했다. 그는 또한 기독교 세계의 표본이었던 19세기 덴마크 루터교에 대항하여 명목상 그리스도인이 참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돕는 것에 그의 생애를 바쳤다. 역자가 가독성 높은 번역과 해제와 각주로 우리 앞에 베푼 키르케고르의 이번 강화는, 마태복음 6:26~34에 실린 우리 주님의 산상수훈을 다룬 세 편의 연속설교다. 역자는 이 세 편의 설교를 키르케고르의 심미적, 윤리적, 종교적 인생 여정 3단계에 적용, 해석하여 우리에게 제시한다. 역자의 탁월한 통찰력에 의하면, 우리는 이 세 단계를 항상 함께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사람됨이다. 백합화와 새로부터 시작하여 하나님의 성품을 배우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도달하는 제자도로 친절하게 안내해 주는 책이다. 역자의 도움을 받아 키르케고르의 어깨에 오르는 우리 난쟁이들은, 우리 주님께서 가져오신 하나님 왕국의 실체를 좀 더 분명하게 체험하게 된다.
– 최정인 목사_배톤루지한인중앙교회 목사 · 미드웨스턴대 교수

이 책 《새와 백합에게 배우라》는 키르케고르가 인생 후반부인 1847년에 쓴, 아니 써야만 했던 ‘기독교 강화’프로젝트의 두 번째 부분이다. 이 강화는 단순한 설교가 아니다. 실존철학을 통한 성경에 대한 깊고도 풍요로운 해석이다. 이 책에서 그는 마태복음 6:25~34의 산상수훈을 주제로 ‘인간에 대한 기독교적 통찰’을 담아내고 있다. ‘사람인 것에 만족하기’, ‘사람인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사람인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의 세 장으로 구성된 그의 통찰은 실존의 변증법에 의해 정교하게 매개된다. 삶의 염려에 휩싸인 우리 인간들은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보잘 것 없는 자신에게 만족하기를 말이다 그러나 더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 앞에 ‘무’(nothing)임을 발견하고 처절하게 절망해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반전이 시작된다. 선택의 여지가 없을 만큼 낮아져야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선택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염려하는 자가 하나님을 선택할 수 있도록 더욱 낮아지셨”기 때문이다. 이 강화를 더욱 충실하게 이해하는 싶은 독자에게 각 장마다 첨부된 번역자의 해제를 주의 깊게 읽어보기를 권한다. 키르케고르의 강화를 그의 사상 전체 속에서 조명하는 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 최태연 교수_백석대 기독교철학 교수

신학이라는 학문을 공부한 때부터,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가장 잘 특정한 단어가 ‘단독자’였습니다. ‘코람데오’, 이 단어로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영향을 끼친 신학자이자 철학자가 키르케고르였고, 많은 설교자들의 인용구를 통해 종종 그의 생각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해 소일 삼아 일구고 있던 텃밭에서 이창우 목사님을 만나 손에 닿을 듯한 꽃들과 풀들을 바라보며 키르케고르의 생각과 글, 그의 여러 작품들에 대해 긴 이야기를 듣고서 그의 삶에 깊이 매료되었습니다. 그의 많은 작품 가운데 이번에 접한 《새와 백합에게 배우라》를 통해, 기독교인의 순수한 경건의 삶에 대해 깊은 이해와 은혜를 누리게 된 것은을 큰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경건의 삶이라는 것이, 나와 동역하시는 하나님, 나의 기쁨이 되어 주신 하나님, 그 전능자가 허락하신 자유 안에 살아가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 공감되고, 이해되었을 때가 가장 기뻤던 순간이었습니다. 각고의 노력으로 멋진 책을 번역해 주시고, 또 대면하여 키르케고르의 삶과 생각을 전해 주신 이창우 목사님께 깊은 존경을 표합니다.
– 한규남 목사_늘사랑기독교학교 목사

쇠얀 키르케고르

19세기 기독교 사상사의 가장 뛰어난 신학자. 실존주의의 선구자. 헤겔과 함께 종교 철학자로도 높이 평가되고 있다.
1813년, 덴마크 코펜하겐의 기독교 가정에서 7형제 중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강권으로 신학을 하는데 반감이 컸던 그는 방황하다가 1840년 <아이러니의 개념에 대하여>로 코펜하겐대학에서 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841년, 철학 박사학위 논문 <소크라테스와의 지속적 관계를 통해 본 아이러니의 개념>을 발표하고, 연인 레기네 올젠과 파혼한다. 그 영향으로 1843년『이것이냐 저것이냐』를 썼으며, 그후『반복』,『 두려움과 떨림』 등을 출간한다.
1844년에 발표한 심리학을 다룬『불안의 개념』, 소크라테스와 역설적 그리스도에 관한『 철학적 단편』이 있다. 이 과정에 ‘하나님의 스파이’라고 고백한 그는 기독교 정신에 귀기울이면서 실존하는 주체로서 하나님과의 관계에 몰두하였으며,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단독자’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1846년, 가명의 저서『철학의 부스러기』 또『철학적 부스러기에 대한 결론의 비학문적 후서』가 있으며, 그밖에 기독교의 본질을 각인시키는『사랑의 역사(役事)』,『그리스도교 훈련』,『 죽음에 이르는 병』, 『 자기 시험을 위하여』와 함께 읽어야 할 유고집『스스로 판단하라』 등이 있다. 그는 1855년 42살의 나이로 프레데릭 병원에서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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