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시인은 다시 낙심을 거두고 은혜의 마음을 회복합니다. 그 영적 터닝 포인트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시인이 낙심 중에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 하나님을 만났을 때 비로소 그들의 종말을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지금 당장에는 그 악인들이 형통할 수 있으나 결국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며 심판 가운데 거할 것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p.16
시인은 악인의 형통을 보며 언제까지 저렇게 형통하게 두실 것인지를 물었습니다. 또한, 악인의 조롱을 들으며 언제까지 저렇게 조롱하게 두실 것인지를 물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시편 75편에서 그 답을 찾았습니다.
– p.30
여기서 “불안하여 근심하니”라는 표현은 불안해서 불평한다는 의미입니다. 어느 정도로 불평을 했냐 하면 “내 마음이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라고 말했듯이 위로조차 받기 싫을 정도로 응답 없는 것에 힘들어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응답 없는 시간이 더 길어졌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불안에서 “괴로움”(4절)으로 변했고, 더 길 어지니까 이제는 하나님이 자신을 버렸을까 두려워했습니다.
-p.45
시인은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이스라엘에 주신 사명을 언급합니다. 그 사명은 바로 주의 이름을 높여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의 사명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이후에도 이 땅을 거룩하고 신실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혹자는 구원을 받았으니 이제 빨리 하나님 나라로 가고 싶다고 말하며 자살을 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에게 주신 거룩한 사명을 모르는 무지한 말입니다.
-p.66
그렇다면 우리 교회의 정의는 무엇일까요?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대로 판단하고 실천하는 것이 교회의 정의입니다. 말씀이 아닌 정치적 판단과 문화적 판단, 유행과 추세를 따라 판단하는 것은 교회의 정의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묵상해야 합니다. 그 중심에는 예수님이 교회의 주인이심을 고백하는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p.93
끝없는 고난은 없습니다. 영원한 고난도 없습니다. 고난은 영원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은 고난을 만날 수 있지만 고난만 겪으며 살 수는 없습니다. 지금 코로나 확산으로 길고 긴 고난의 터널을 지내고 있지만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때가 올 것입니다. 설령 바이러스 문제가 의학적으로 계속된다 하더라도 우리는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지구와 인류는 하나님이 주인 되십니다. 주인 되신 하나님께서 그렇게 인도하실 것입니다.
-p.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