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사순절이 되면 우리는 예수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 고난과 시련을 묵상한다. 그러나 정작 그 길이 무엇을 위해 걸으신 길인지 진실로 깨닫고 있을까? 십자가의 길은 예수께서 나의 구체적인 일상과 시간 속에 침투하여, 기적 같은 새생명을 주기 위한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몰래 찾아와 질문한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신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요 3:5~7).” 여전히 ‘육의 생명’으로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에게, 삶의 구멍을 종교적 관습으로 메우느라 치친 이들에게 예수님은 단호히 말씀하신다. 육으로 난 것으로는 결코 영원한 생명에 이를 수 없으며, 오직 예수 생명으로만 ‘본 어게인’ 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렇다. 우리는 고난을 견디고 인내하기 위해 사순절을 지나는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 진실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신의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사순절을 맞이한다. 거듭남은 스스로 노력하여 각성하는 것이 아니다. 옛 사람을 뜯어 고쳐 수선하는 탈바꿈도 아니다. 새롭게 거듭나는 생명의 세계는 오직 영과 진리로 새롭게 된 자, 곧 예수 생명이 그 안에 있는 사람들만이 이루어 낼 수 있는 나라이다!
기독교 신앙의 편견을 가르고 예수 생명으로 살도록!
예수 생명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서는 그 생명이 무엇인지 절대로 알 수 없다. 『본 어게인 : 신의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다』는 예수 생명 안으로 곧장 진입하여 생명의 놀라운 능력을 우리에게 펼쳐 보인다. 새사람의 권세가 보여주는 비전과 자원, 언어와 기도생활, 그리고 재정에 이르기까지, 그 기적 같은 생명이 어떻게 구체적인 일상에서 어둠의 권세를 멸하고 세상을 이기는 능력을 줄 수 있는지를 밝힌다. 생명의 진수가 펼쳐질 때 우리는 그간 얽매였던 생명의 모조품을 알게 된다. 육의 생명은 우리를 살게 하는 것 같으나 실은 세상의 노예가 되게 만들고, 허상을 쫓다가 결국 제 발로 무덤으로 걸어 들어가게 한다. 기독교 신앙에 대한 편견과 오해는 바로 육의 방식으로 영원한 생명을 환원시키는 교묘한 어둠의 전략으로 인해 일어난다. 본서는 이 전략을 간파하고 깨뜨리기 위해 생명에 대한 착각과 오해의 포인트들을 함께 짚어냈다.
특별히 각 장의 마지막에 배치된 ‘깨어남 포인트(Awakening Point)’는 핵심을 다시 한 번 정리하고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이 포인트들이 예수 생명의 핵심을 일목요연하게 이해하고 가르치고자 하는 나눔과 멘토링의 현장에도 유용하게 쓰이기를 기대한다.
생명이 일하게 하라! 우리의 많은 지식과 선함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저 생명이 깨어나서 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예수께서 가신 길은 전적으로 하늘의 생명이 이끄신 길이었다. 그 길을 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먼저 참 생명에 눈이 뜨이고 사랑에 빠지는 ‘사건’이 있기를 기대한다.
이 책에서는 오래된 이야기, 너무나 익숙해져서 빛을 잃은 복음 이야기, 전혀 새로운 것이 없어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복음 이야기를 원래의 생명이야기로 바꾸고자 합니다. 책의 각 장 뒤에는 ‘어웨이크닝 포인트(Awakening Point)’를 적어두었습니다. 자기 안의 발현이 아니라 전혀 다른 낯선 경이로움이 내 안에서 깨어나고, 우리에게 주신 생명의 선물이 기지개를 켜며, 모든 종교적 편견을 가르고 예수 생명의 큰 힘이 깨어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 책이 우리의 삶을 복음이 가진 이야기로 더욱더 생생하게 깨어나게 하고, 사는 것 같이 사는 힘을 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 프롤로그 중에서
복음은 전혀 다른 세계의 도래입니다! 내 안에서 스스로 각성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신 승리나 교양, 경건한 종교생활도 아닙니다. 초월적이나 내재적이고, 충만하나 겸허하며, 낯설면서도 가장 친밀한 삶, 현실의 시간을 넘어선 너무나 경이로운 세계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일상적이고 관습적인 종교 생활은 깨어나야 합니다.
– Chapter 1, 01 제발 잘 살아다오 중에서
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존재가 바로 새사람입니다. 그런데 새사람의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계속 변화하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변화하게 되어 있고 변화하는 것만이 성장합니다. 하나님의 온전하심 또한 이 초점에 맞추어서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칫하면 율법적인 완전함을 하나님의 온전으로 착각하고, 그것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릴 수 있습니다. 또 자기 생각의 틀에 갇혀 생명의 욕구를 제거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온전함은 ‘생명의 성장’입니다. 매일매일 생명의 영으로 새롭게 변화되어가는 것이 새사람의 완전입니다.
– Chapter 1, 02 뜻이 이루어지이다 중에서
성경은 생명으로 살아가려면 좁은 길을 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문제는 좁은 길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는 것에 있습니다. 대부분 많은 사람들이 좁은 길을 고생길이나 금욕의 길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영원한 생명으로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신 존재 이유를 실현하며 단순하지만 풍요롭게 사는 것과, ‘이것도 하지 마라. 저것도 하지 마라.’ 하고 금하면서 삶을 좁고 편협하게 만드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 이 조에의 좁은 길은, 실상은 매우 충만한 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넓은 길과 달라 좁은 길이지만, 생명으로 충만한 길입니다. 태풍이 올 때 태풍을 보는 사람들이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살이 찢겨 나가고 건물이 무너지고 사건 사고가 벌어지지요. 그런데 태풍의 한가운데는 아주 좁은 공간이지만 생명은 안전한 곳입니다.
– Chapter 2, 03 Zoe, 좁은 길의 보물 찾기 중에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는 시늉만 하시고 다시 살아나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실제로 모든 살아있는 것에 대해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 죽음을 경험합니다. 우리가 주님과 ‘연합하여 온전히 죽었다’는 것을 믿고 기도하십시오. 이미 죽은 자아가 다시 살아나려고 할 때 십자가를 선포하며 기도하십시오. 이미 죽은 자아와 함께 어울려서 행동하면 점점 기도하기 힘들어집니다. 저 멀리서 죽음의 기운이 살아있는 척하고 다가올 때 ‘죽은 시체가 다시 돌아다니려고 하는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그것이 이미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 박혔음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 Chapter 2, 04 노예해방의 원조, 예수 죽음 중에서
우리에게는 두 가지 죽음이 있습니다. 육신이 다 벗어지고 난 후에 남는 것이 없는 죽음이 있고, 육신을 다 벗어버리고 난 후에 덧입은 것이 계속 쌓여서 남은 것이 많은 죽음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는 전혀 다릅니다. 하나는 벌거벗고 죽는 죽음이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의 새로운 옷을 입어 생명으로 가득 찬 죽음입니다.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해서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을 입었고 그 생명으로 가득한 사람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생명이 죽음을 삼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 Chapter 2, 05 조에가 사망을 삼켜버리기에 중에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는 먼저 뿌리부터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저런 죄를 짓지 말라고 하기 이전에 죄의 근본을 알아야 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죄들의 가장 근본 된 원인은 창세기 3장에 나타났던 것처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싫어하고 하나님을 피해 다니는 삶 자체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이 허상의 세계는 실제로 있는 세계가 아닙니다. 실제로 있는 모든 생명의 피조계 전체는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나옵니다. 반대로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모든 것은 허상의 세계입니다. 그리고 그 허상의 세계는 생명이 아닌 죄와 사망의 법으로 되어 있으며 그 법 아래 사는 이들을 두려움으로 다스리는 세계입니다.
– Chapter 3, 06 죄가 속한 허상의 세계 중에서
믿음 생활 가운데 방탕하고 정욕적인 둘째 아들 모습이 나타나는지 혹은 표면적이고 종교적인 큰아들 모습이 나타나는지 잘 돌아보십시오. 믿음 생활을 하면서 그분이 주시는 능력과 성품이 나타나지 않고, 우리에게 주신 아름다운 계획들을 풍요하게 누리지 못하고 있다면 무언가 잘못된 것입니다. 둘째 아들처럼 세상의 부요에 속고 있는지, 첫째 아들처럼 정작 생명의 부요는 누리지 못하고 가난하고 엄격한 율법의 종으로 살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이해하기 위해서 두 가지 인식이 필요합니다. 하나는 죄에 대한 세밀하고 깊은 인식입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인식이 있습니다. 바로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주시는 선물과 부요함에 대한 인식입니다.
– Chapter 3, 07 단순하게 돌이키라 중에서
세상은 영혼에 햇빛이 비쳐 변화된 이들의 모습을 보고 싶어 합니다. 그렇다고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쳐야 할지 부담을 갖고 살라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나 시선을 의식하면서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 믿음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 대한 평가 기준을 세상 사람들의 시선에 맞추기 시작하면 믿음의 기준을 세상 사람들이 정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기준은 그런 정도의 것이 아닙니다. 죄의 고백은 항상 의와 생명을 주시는 주님을 향해 있어야 합니다.
– Chapter 3, 08 회개의 선물, 의의 능력 중에서
우리의 마음은 거대한 소우주와 같은 영혼의 집입니다. 마태복음 12장 43절에 이 집을 차지하려는 귀신을 “더러운 귀신”이라고 표현합니다. (…) 귀신을 내쫓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에서 ‘강함’이 나와 결박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강함은 나의 강함이 아닙니다. 이 세상 권세나 사단 또는 귀신은 나의 힘만으로는 절대 이겨낼 수 없습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강한 자,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역사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믿음을 끌어올려서 결단하십시오. 그럴 때 내 안에 가장 강한 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하게 능력과 사랑으로 역사하십니다. 이것이 축사의 원리입니다.
– Chapter 4, 09 마음의 도둑들 중에서
믿음을 ‘사용’해야 한다는 말을 꼭 기억하십시오. 그냥 가지고만 있으면 그 믿음이 막연하고 교만한 관념이 되기 쉽습니다. 때로 우리는 기도하면서도 믿음을 사용하지 않고 걱정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사용’한다는 것은 구체적인 상황에서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힘과 능력을 자꾸 실천해본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관념이 아닙니다. 믿음은 자기 확신이 아닙니다. 믿음은 강박도 아닙니다. 믿음은 요술 주문처럼 주문을 외우면 뚝딱 실현되는 도깨비방망이도 아닙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지만 사용할 때 그 능력이 나타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빛으로 이긴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 Chapter 4, 10 믿음을 사용하라, 강한 힘과 자유로 중에서
거짓 경보에 속은 두 가지 신앙 형태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생명의 부요를 제한하는 거짓 신앙입니다. 하나님 안의 부요를 함부로 의심하고 제한하며 겸손한 척 가장합니다. 그 결과 정신적인 교만과 율법에 갇혀 하나님의 의를 사람의 의로 둔갑시킵니다. (…) 두 번째는 생명의 부요를 물질로 도구화하고 환원하는 거짓 신앙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생명의 부요를 알지만, 물질적 부요를 위해 생명을 도구화하고 현상계와 욕심에 집중합니다. (…) 율법과 기복 모두 참된 신앙이 아닙니다. 물질적 차원을 아예 제거하고 그럴듯한 추상적 관념에 갇히거나, 물질적 차원에만 갇히는 것 둘 다 잘못입니다.
– Chapter 4, 11 영혼의 고장 난 경보시그널을 점검하라 중에서
영으로 깨어 이 실상을 보십시오. 온 세상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살고 있으니 우리도 그리 살아야 한다고 속지 마십시오. 십자가의 방식이 어리석다는 대 착각에서 벗어나십시오. 십자가는 새사람을 탄생시키는 하나님의 극비 프로젝트입니다. 죽음으로 가던 모든 피조계 전체의 운명이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새사람으로서 생명의 대로를 하나님과 동행하며 놀라운 능력과 성품을 받습니다. 이미 받은 것을 믿고 행하는 사람, 십자가에 있는 모든 것을 믿고, 누리고, 사용하는 생명의 사람이 바로 새사람입니다.
– Chapter 5, 12 새사람의 기원 중에서
새사람은 이 현상의 세계를 초월해서 하나님과 교통하는 영혼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표면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또 바쁘게 살면서 자신의 안을 돌아볼 시간이 없으면 내적으로 뿌리내리지 않습니다. 그러면 애쓰고 힘쓰는 신앙생활을 함에도 불구하고 내적으로 튼튼하지 않으니 남탓, 환경 탓을 자꾸 하게 되고 율법적으로 정한 테두리 안에서 전전긍긍하다가 나중에는 ‘해봤더니 안되잖아!’하고 말하게 됩니다. 세상을 상대할 만한 내적 힘이 크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영혼의 법, 새사람의 법, 새 하나님의 법으로 내면의 무의식까지 깊이 뿌리를 내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 Chapter 5, 13 새사람의 방식 중에서
‘크티조’는 ‘새로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새사람은 하나님의 영으로 거듭난 것이지, 옛사람이 수선된 것이 아닙니다. (…) 그러니 행동을 착하게 교정해서 사람들에게 좋은 평판을 얻는 것이 초점이 아닙니다. 우선, 성령님을 모시고 영혼의 주인이 바뀌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으십시오. 그럴 때 그리스도인의 가장 중요한 성품인 ‘믿음’으로 능력과 사랑과 절제로 다스리는 힘이 발현됩니다. 이것이야말로 세상의 선한 덕목들과 차별화되고 초월하는 그리스도인의 성품으로, 자신과 환경, 문제를 다스리면서 나를 사랑하고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는 원천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진심으로 믿을 때 평강이 우리를 사로잡기 때문입니다. 그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를 아름다운 신의 성품에 참여하게 하시고, 그럴 수 있는 능력 또한 선물로 주십니다.
– Chapter 5, 14 새사람의 성품 중에서
우리의 삶과 일은 하나님의 표현방식입니다. 그분이 당신을 표현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이신 그분은 우리 각 사람의 ‘안’(內)을 거처로 삼으시면서 우리를 완성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각자에게는 역할이 있고 은사가 있습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신성이 사람의 안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 Chapter 5, 15 새사람의 표현 중에서
우리는 비전을 내가 어떤 것을 계획하고 어떤 방향을 향해서 나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러나 비전은 먼저 ‘도래하는 것’입니다. 비전이 미래로부터 달려오는 것을 보는 것이며, 다가올 미래가 현재화되도록 응답하는 것입니다. 이 말이 낯설게 다가오시나요? 스스로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애씀’이 아니라, 현재 속에서 미래가 우리의 시간을 열어 젖히며 ‘요청’하는 것이 비전입니다. 그러니 하나님 앞에 비전에 대해 기도할 때 기준을 나에게 자꾸 두지 말고, 하나님 앞에 우리 자신을 열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바를 잘 듣고 계획하십시오! 반드시 이루실 언약을 믿고 꿈꾸십시오! 비전의 시간은 하나님 안에서 ‘완료된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 Chapter 6, 16 비전과 자원 중에서
믿음의 여정을 걷는 동안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정직한 소원이 드러나게 하셨습니다. (…) 비록 아브라함의 소원은 그저 아들을 얻는 것 하나에 매달려 있었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소원을 정직하게 드러낸 아브라함을 25년 동안 이끌어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수많은 복을 주시고, 아브라함 안에서 능력과 사랑과 절제의 완성을 이루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여정으로 초대하면서 우리의 정직한 소원을 이끌어 내십니다. 그 소원이 비록 하찮게 보일지라도, 작은 믿음 하나를 얹은 그 소원을 하나님께서는 정말 귀하게 보십니다. 그리고 모든 일을 합력하여 마침내 선을, 그분의 꿈과 계획을 이루십니다.
– Chapter 6, 17 소원을 정직하게 중에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가문에 입적되었습니다. 그것을 믿으시나요? 그렇다면 그 가문의 기본 생활을 익혀야 합니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언어생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도하거나 말씀을 전할 때 자꾸 이방인들처럼 듣고 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내가 아버지께 어떤 말씀을 드려야 하는지, 사람들에게 어떻게 말씀을 전해야 하는지 잘 모릅니다. 아주 간단하게 두 가지만 하면 됩니다. 첫째, 들으십시오. 둘째, 전하십시오. 말에는 권세와 능력이 있기 때문에 이 두 가지만 우리의 언어에 잘 심어도 복된 생활이 저절로 이루어집니다.
– Chapter 7, 18 언어: 말씀의 에코잉 중에서
성경에는 돈에 관한 이야기가 참 많습니다. 돈 자체가 중요해서라기보다 돈이 가진 상징성과 관계성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돈은 우리의 마음과 가치관의 현주소를 말해줍니다. 삶에 대한 태도와 방향성, 선택의 기준과 목적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관념, 생각, 철학, 가치관들은 우리의 존재를 결정합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돈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정신과 가치관을 기준으로 삼고 있으며 어떤 영적인 태도를 갖추고 있는가입니다.
– Chapter 7, 19 재정: 맘몬 신을 이기라 중에서
오직 예수님만이 중보자가 되신다면, 도고와 중보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 유일한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실 때, 우리도 중보기도자로서의 자격을 갖출 수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선한 마음으로 도고기도를 시작할지라도, 어느 순간 우리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탄식하며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시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성령께서 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실 수 있도록 우리의 영과 혼과 몸을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유일한 중보자이신 예수께서 우리 안에서 중보하시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 지점이 도고에서 중보로 옮겨지는 과정입니다.
– Chapter 7, 20 기도: 도고에서 중보로 중에서
일치의 기도만큼 기가 막힌 기도는 없습니다. (…) 그러나 삶의 많은 관념과 여러 가지 고통스러운 기억, 상처, 감정들이 우리의 단순한 믿음을 방해합니다. 기도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분심들이 그것입니다. 그 생각들은 대부분 하나님과 일치하지 않은 생각들입니다. 그때 단순히 이렇게 기도하면 됩니다. “주님, 제 영이, 생각과 감정이 성령님과 하나 되기를 원합니다.”(…) 간절히 그것을 ‘원할 때’ 주님께서 우리의 소원과 계획을 주님의 크신 계획 안에 안착 시켜 주십니다. 연합이란 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더 큰 차원 안에서 우리의 모든 것들이 살아있게 하는 것입니다. 마치 바다라는 큰 차원 안에서 고래, 새우, 그 모든 것들이 생명을 누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 Chapter 7, 21 일치: 가장 아름다운 연합 중에서
새로운 세계는 영과 진리로 새롭게 된 자, 곧 예수 생명이 그 안에 있는 사람들만이 이루어 낼 수 있는 나라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이기적인 자기 자신을 추구하고 세속성을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경쟁하고 남을 죽임으로써 내가 사는 방식을 선택하고 추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끊임없이 탐욕을 부리면서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교회가 예배와 기도와 교제를 통해 이 새사람이 태어나는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거듭나기 전의 옛사람은 이 세상과 자기에게만 관심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십시오. 옛사람은 신앙이 있어도 형식적인 종교 생활만을 추구하면서 자기만족에 급급하고 있음을 인식하십시오. 교회는 다시 태어난 사람들이 아버지의 뜻에 따라서 하나님 나라에 관심을 두고,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는 일을 위해 세상으로 뻗어 나가도록 해야 합니다.
– 에필로그 중에서
Chapter 1. 이 복된 인생
01. 제발 잘 살아다오
02. 뜻이 이루어지이다.
Chapter 2. 조에의 생명과 사는 죽음
03. Zoe, 좁은 길의 보물 찾기
04. 노예해방의 원조, 예수 죽음
05. 조에가 사망을 삼켜버리기에
Chapter 3. 회개, 아버지의 집으로
06. 죄가 속한 허상의 세계
07. 단순하게 돌이키라
08. 회개의 선물, 의의 능력
Chapter 4. 우리 집을 지켜라
09. 마음의 도둑들
10. 믿음을 사용하라, 강한 힘과 자유로
11. 영혼의 고장 난 경보시그널을 점검하라
Chapter 5. 하나님의 비밀이 그 안에
12. 새사람의 기원
13. 새사람의 방식
14. 새사람의 성품
15. 하나님의 표현
Chapter 6. 새사람의 꿈
16. 비전과 자원
17. 소원을 정직하게
Chapter 7. 새사람의 생활
18. 언어: 말씀의 에코잉
19. 재정: 맘몬신을 이기라
20. 기도: 도고에서 중보로
21. 일치: 가장 아름다운 연합
에필로그 – 새사람이 만들어가는 하나님 나라
지은 책으로는 『영성, 삶으로 풀어내기』(우수학위논문상), 『비극을 견디고 주체로 농담하기』(한국연구재단 저술지원), 『자유의 영성』(문화진흥원 이북지원), 『광야에서 부르는 노래』(사순절 묵상집), 『영원의 사랑이 시작되다』, 『욥, 모든 질문이 사라지던 날』, 『내일의 종교를 모색하다』(한국연구재단 저술지원, 출간예정)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사랑의 신학』(제디스 맥그리거)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통합적 영성의 현상과 과정에 대한 연구」, 「무의 몸-되기를 통한 신학과 과학의 연대: 신비의 근원과 탈 영토화된 몸 안에서 만나다」, 「침묵하는 자에서 코레의 복원가로」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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