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에서 32년을 살고 네덜란드에서 41년을 살았다. 한국에 가면 네덜란드에 오고 싶고, 네덜란드에 살면서 한국 뉴스를 본다. 한국에 가면 변화에 뒤처진 사람 같고, 네덜란드에 오면 이방인 같 다. 또 한국에 가면 네덜란드 음식이 그리워지고, 네덜란드에 오면 한국의 쑥갓, 미나리, 동치미가 먹고 싶어진다. 몸은 네덜란드에 살 면서 마음은 한국에 있는 것 같기도 하다.
1980년 네덜란드에 와서 선박회사의 공무감독으로 근무하다가 사 직하고 미국에 이민했다가 다시 네덜란드로 돌아와 사업을 시작하였다. 처음 화학제품 수출업을 하려다가 실패하고 선박 기술을 바탕으로 다시 시작한 사업이 점차 발전하여 작지만 강한 나라 네덜란드에서 선박 기술자로 32년간 해양 관련 비즈니스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왔다.
나의 조국은 어디인가? 당연히 나의 조국은 대한민국이다. 그리고 내가 반평생 이상을 보람을 느끼며 황금 같은 중 장년기를 산 나라 네덜란드 또한 나에게는 조국과 같다. 마찬가지로 나의 고향은 인천 이지만 이제는 로테르담도 나의 고향이 되었다. 부모가 다 소중하듯 두 나라 다 나에게 소중하며 두 나라 중에서 한 나라를 빼고는 나의 인생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어릴 적 동네 뒷산에 오르면 멀리 인천 앞바다에 떠 있는 커다란 외항 선들이 눈을 사로잡곤 했다. 그때마다 가슴이 뛰었다. 어느새 나는 상상 속에서 큰 상선을 타고 드넓은 대양을 항해하는 멋진 바다 사나이가 되어 있었다. 어릴 적 나의 꿈은 벌써 오래 전에 실현되었다. 해양대학을 졸업하고 적지 않은 세월을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며 바다와 더불어 또는 관련된 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바다 사나이를 꿈꾸던 그때의 나보다 훌쩍 커버린 손주들을 둔 할아버지가 되었다
1980년 9월 4일 아침 7시에 도착한 암스테르담 스키폴공항은 꽤 쌀쌀했다. 공항을 나서는 순간 낯선 광야 한가운데 떨어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곳이 앞으로 내가 살 곳이라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비장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우리만 독점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경쟁자들이 항상 있었다. 경쟁사는 여러 군데 있었다. 독일, 덴마크, 영국 등… 대부분의 경쟁사는 오랜 역사를 가진 회사들이고 재고를 많이 갖고 있기도 했고 축적된 경험과 자료를 많이 갖고 있었다. 그에 비하여 우리는 역사가 짧고 축적된 자료도 많이 없고 자금력도 약하여 재고를 많이 갖추기도 힘들었다. 이는 마치 초등학생과 고등학생 이 경주하는 것 같았다.
우리만의 경쟁력을 어떻게 하면 갖출 수 있을까 고민하며 연구해 보아도 묘책이 없었다. 서비스를 잘해서 핸디캡을 극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당연히 경쟁자들도 서비스를 잘하려고 한다. 그러니 우리는 더 잘해야 한다. 나는 지독하게 성실하게 상대방의 입장 이 되어 생각하기로 하였다. 고객이 나에게 무엇을 바라나, 무엇을 해주어야 하나를 늘 생각했다. 어떨 때는 거래처 회사 선박에 발생 한 문제를 도와주려고 애를 쓰는 나를 보고 아내는 왜 그렇게 지나 치게 애를 쓰냐고 했지만 나는 정말 내일 같이 잘 도와주려고 애를 썼다.
고객을 만족시키는 것을 넘어서 고객이 감동할 정도까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고객은 웬만하여서는 감동하지 않았으므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하다 보면 때로는 격심하게 경쟁할 때도 생기는데 그럴 때는 체면도 양보도 없고 누가 먹이를 먹느냐 빼앗기냐 하는 동물적인 경쟁이 된다. 동물은 먹이 앞에서 가장 적나라해지고 사람은 돈 앞에서 가장 적나라해지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이 나보고 영국 사람은 신사라고 했다. “글쎄? 너그러워도 되는 상황에서는 영국 사람만 신사가 되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경쟁자 앞에서도 마냥 그렇게 될까?
맨땅에 헤딩하듯 시작한 사업,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내가 좋아하며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다 보면 시너지가 생기고 경쟁력도 생길 것이라고 믿고 지독하게 열심히 최선을 다하였다. 나는 다른 사람 이 닦아 놓은 길을 가는 것보다 길이 없는 광야일지라도 내가 헤쳐 나아가는 길에 뜻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해외 거주 사업가로서 내가 애국하는 방법은 유럽에서 축적한 기술과 경험을 한국 기업들과 나눔으로써 조국의 산업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까지 달려올 길을 달려와 여기까지 왔는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남아 있는 길을 다 가도록 의미 있는 삶을 살며 인생을 마무리하게 된 다면 더 바랄 바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