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는 편지다. 교리 해설서나 복음 입문용 교재가 아니라 말 그대로 편지다. … ·로마서는 고대에 쓰인 글이다. 로마서는 2,000년 전 문화를 바탕으로 쓰였다. 까마득한 고대의 글을 21세기의 우리가 곧장 이해하기는 당연히 어렵다. 로마서는 종이와 볼펜 혹은 워드 프로그램으로 쓰이지 않았다. 양피지나 파피루스 글쓰기는 내용을 고치고 편집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로마서는 논설문이다. 바울은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반박하고 주장하면서 로마교회를 설득하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이런 논문 형태의 글은 읽기가 어렵다. ·로마서는 말이 바탕이 된 글이다. 바울의 구술을 더디오라는 대필자가 받아 적은 것이다(롬 16:22). 애초에 글로 시작한 글과 대필한 글은 많이 다르다. 로마서에서 돌발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은 이 때문이다.
_로마서 워밍업 “로마서를 읽을 때 주의할 점”
로마서를 읽다 보면 흐름이 끊기는 곳들이 있다. 혹자는 이런 부분들을 가지고 로마서가 일관성이 약하다고 지적하지만 오해다. 이미 밝힌 대로 로마서는 바울의 연설이 모체이다. 연설은 글과 달리 잠시 논지의 흐름을 벗어날 때가 있다. 잘 활용하면 청중에게 색다른 긴장을 주기 때문이다. 물론 제자리를 못 찾아 산으로 가기도 한다. 하지만 잠시 샛길로 나간 이야기가 정확히 돌아오고 뒤에서 새로운 주제와 결합될 때 청중은 오히려 감동과 깨달음을 얻는다. 이런 연설은 교장 선생님 식 훈화보다 훨씬 역동적이고 정교하다.
_로마서의 세 가지 암초
바울은 지금 로마제국의 수도에 있는 교회를 향해 황제와 그 권력의 심기를 건드리지 말라고 조심시키고 있다. 바울은 로마교회에게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으려느냐”(롬 13:3b)라고 질문한다. 이 부분을 가지고 후대의 모든 교회들이 반드시 따를 정치신학적 원칙을 말할 수는 없다. 바울은 당시의 역사를 종말 직전으로 보고 있었다(롬 13:11-12). 그렇다면 바울은 왜 새로 등극한 로마 황제 네로를 로마교회에 위협을 가할 수 있는 ‘두려운’ 존재로 여겼을까?
_본론 후반부 “서로 화목하라”
사도행전은 지금 로마에서 온 순례자들 중 ‘유대인’뿐 아니라 ‘개종자들’ 중에도 복음을 받아들이고 귀환한 사람들이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로마의 유대인들이 그리스도 신앙으로 분쟁할 때 이 ‘개종자’들도 함께 있었다. 그러다가 덜컥 황제의 추방령이 떨어지자 희한한 일이 생겼다. ‘모든 유대인’이 다 추방된 후 로마에 누가 남았을까? 가능성은 하나뿐이다. 로마 회당 구성원 중 ‘유대인 개종자’만 남게 되었다
_더 깊이 읽기: 로마교회의 갈등하는 두 그룹
하지만 이것은 확실하다. 무서운 칼과 맹수 앞에 선 로마의 성도들은 수년 전 바울이 보내온 로마서의 말씀을 굳게굳게 붙들었을 것이다. 그 말씀 하나하나가 심령에 되살아나 현재의 고난 너머 찬란한 천국 문과 그들을 기다리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기꺼이 죽음을 껴안았을 것이다.
_나가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