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감리교회 여교역자가 수십 수백에 달하지만 그들 중 무의무탁한 여교역자로써 은퇴 후 갈 곳, 식생활을 의탁할 데가 없어서 노상에서 푼전 장사로 후구(後軀)하는 참경”이 목격되곤 하였다. 채핀은 자신이 길러 놓은 제자들이 “이 강산 교회에서 전도 일을 하다가 은퇴, 병퇴될 때 조선 교회가 처리하지 못함으로 그들의 종말이 하나님께나 인간 사회에 빛이 못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런 안타까움으로 ‘여전도사 은퇴 거처소’ 설립에 대한 뜻을 내비친 것이었다. 스승의 뜻을 받든 제자들은 먼저 ‘채 부인 교장 선교 35주년 기념식 준비위원회’ 이름으로 초청장을 발송하며 ‘여전도사 은퇴 거처소’ 준비를 시작했다.
(제1부, 24~25쪽)
안식관 입사자들은 여선교회 회원들에게 위안을 받는 한편 자신들은 일선 장병들에게 성탄 선물로 「새가정」 잡지와 성탄 트리 만드는 비용을 마련하여 보냈다. 성탄절이면 방위성금을 보내고, 남북 완충 지대인 대성동마을 교회와 서부전선 군인 교회에 타종 헌납을 했다. 매년 3월에는 전 세계 180개국 교회 여성들과 함께 한 주제, 한 예배문으로 예배하는 기도 운동인 ‘세계 기도일’을 지키며, 온 세계 기독교 여성들과 함께 같은 사업에 동참하는 역군이 됨을 기뻐하였다.
(제1부, 63쪽)
미용 봉사를 하는 이도 있었고, 밑반찬을 가져오는 사람도 있었다. 학생들은 손수 뜨개질한 양말과 덧버선을 선물하기도 했으며, 안식관 어르신들을 위해 무대에 연극을 올리기도 하고, 작은 잔치를 준비하기도 했다. 화양교회 이삼복 장로는 1년 동안 채소 장사를 하며 푼푼이 모은 돈 8,230원(1969년 당시)으로 안식관에 방석과 스텐 식기 등을 선물하기도 했다. 따듯한 마음들이 모였고 많은 사람의 발걸음이 이곳을 향했다.
(제2부, 108쪽)
김 전도사는 평상시 방 안에 있을 때면 늘 바느질을 했다. 팬티며 양말이며 꿰매는 게 일상일 정도로 모든 옷이 낡고 헐었다. “선물받은 옷들은 다 언제 입을 거냐.” 하며 타박하는 이들에겐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선물받은 새 옷이나 속옷들을 전부 모아 자신이 목회했던 시골 교회 어려운 이들에게 우편으로 보내고 있었다.
(제2부, 11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