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육체로 오시기 전 구약 시대의 사람들은 부활 혹은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을까? 구약과 신약이 각각 완전히 다른 무엇인가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을 본질적으로 동일하게 증언하는 것이라면, 부활 신앙에 대해 구약과 신약은 어떻게 상응하는가? 오늘날 우리는 부활 신앙을 강조하는 설교나 가르침을 여기저기에서 쉽게 들을 수 있다. 만일 부활 신앙이 그저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믿는 신앙이라면 이런 경험과 상상이 전혀 없었을 구약 시대와 부활 신앙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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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시편 기자가 육체 부활에 대해 알고 믿었더라면 그의 진술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내세와 육체 부활을 확고하게 알고 믿었던 바울의 글을 생각해 보면, 우리는 부활을 진정으로 알고 믿는 사람의 말이 어떨지를 짐작할 수 있다. 바울에게는 부활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며 모든 것이 헛것이다. 바울은 평생에 부활을 증언하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에 비해 구약성경에서 우리는 바울처럼 강력한 확신에 차서 부활을 증언하는 예를 찾아볼 수 없다.
_ 59쪽
나라와 다윗의 후예가 없어진 현실을 살면서 포로기 이후의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온 땅에 임하시며 통치하시는 날을 기대했다. 그리고 이러한 날을 소망하는 그들의 삶의 기본적인 단위는 국가가 아니라 한 가족, 한 개인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스라엘의 종교와 신학에서 생겨난 ‘개인의 발견’은 나라의 멸망 이후 나타난 중요하고 의미심장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국가적이고 민족적인 운명에 대한 기대들과 더불어 개인의 운명에 대한 관심사가 증대되었고, 이러한 변화는 부활에 대한 신앙과도 연결된다.
_ 88쪽
최후의 재판에 대한 기대는 하나님께서 친히 다스리시는 하나님 나라라는 새로운 미래에 대한 기대와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최후의 재판을 기대하는 고백이 제2성전기 문헌에 빈번하게 출현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기대가 이 시기에 명료해진 것과 관련 있다. 하나님 나라를 기대하는 배경에는 이 땅에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재판,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혹하고 고통스러운 현실이 놓여 있다.
_ 134쪽
의인의 고난이라는 문제에 대한 가장 명료한 대답은 죽음 이후에 부활할 것이며 내세에서의 영광을 약속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보았듯이 놀랍게도 예레미야와 하박국은 그런 내세에 대한 기대 없이, 심지어 전도서는 이름이 기억되리라는 기대도 없이 이 땅에서 야훼를 경외하며 살아가는 삶을 견지한다.
_ 174쪽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영원한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해, 그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게 하시려고 이 땅의 한계 많은 인간의 몸으로 오셨다. 잠시 몸만 빌린 것이 아니라, 완전한 인간으로 이 땅에서 태어나고 성장하셨다. 그러므로 부활로 상징되는 하나님 나라의 영광이 이 땅에 오신 예수의 죽을 몸을 통해 표현된다. 그것이 구약이 우리에게 증언하는 바이기도 하다.
_ 18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