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대가 변하지 않으면 변할 수 없습니다. 예수의 추구점을 향해 계속해서 변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그대가 인생에서 추구하는 <꿈>을 말하기 전에, 그대가 가지고 있는 〈신앙을 이해하는 방식〉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p.45
세상의 메커니즘으로 ‘꿈’을 꾼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겪은 ‘훈련’, ‘무명’, ‘사명’, ‘유명’의 검질긴 과정을 겪어야 합니다. 도망칠 수 없습니다. p.55
하나님이 그대의 마음을 욕심내는 이유는, 하나님이 아직 그대의 마음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무수한 역사와 이야기들은, 사실 인간의 마음을 원하시는 하나님의 노동입니다. p.76
왜냐하면 진정한 기독교의 믿음의 위대성은, ‘받아들임’에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원치 않는 결과, 내가 원치 않는 상황, 내가 원치 않는 그 모든 시간을,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수용성이, 기독교가 추구하는 믿음의 고차원입니다. p.94-95
그대가 잘못하지 않았다면, 잘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대가 믿었던 것들에 대해 자신감을 가집시다. 그렇게 그대에게 주어진 시간과 기회 그리고 그대의 인생을 이해할 때, 훈련은 어느덧 종점으로 가고 있을 것입니다. p.100
그러나 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받는 수업을 ‘무명’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본격적인 하나님의 수업을 받을 때, 이들은 철저하게 인간적인 희망과 가능성을 잃어버리는 사건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시간(혹은 기간)은 언제가 마지막일지 알 수 없으며, 심지어 앞뒤, 좌우라는 삶의 방향을 완전히 잃어버릴 때도 있습니다. p.108
하나님은 언제나 하나님의 대답을 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인간의 상황을 무시한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 자체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 자체에 대한 우주적인 자신감이 있으신 분입니다. p.127-128
그대가 무대에서 주인공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인이 그대에게 주는 무대에서 충성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사명을 좇아간다면 그대는 언제든지 예수만큼 낭만적일 수 있습니다. p.211
왕이 한 명의 신하를 왕의 식사 자리에 단독으로 초대하는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공적인 업무가 아니라 사적인 부르심의 성격입니다. 즉, 왕이 신하에게 부탁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명령입니다. p.213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그리스도인의 목표는 영원히 유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한때의 유명을 주를 위해 사용하는 것입니다. p.252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단순한 고백은, 복잡한 인간관계와 더 복잡한 상황의 한가운데서, ‘유명’한 그대가 추구해야 할 가장 단순한 얼굴입니다. 보통의 평범한 그리스도인이 할 수 없는 것들 가운데, 그대만 할 수 있는 ‘사명’은 분명히 존재할 것입니다. 그것을 발견할 때, 하나님 이 그대에게 왜 ‘유명’을 주셨는지도 깨닫게 될 것입니다. p.267-2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