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전지하시므로 루시퍼의 타락 계획을 다 아셨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므로 루시퍼가 반역하는 것을 막아 내실 수도 있었다. 하나님이 가만히 계셨던 것은 다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시고자 함이었다. 즉, 루시퍼의 타락을 허용했다고 함이 옳은 것이다. 루시퍼의 타락을 허용하시므로 하나님은 아담이 타락할 줄도 아셨다. 그래서 선악과를 만드시고 먹지 말라고 하셨다.
– p.39~40
이렇듯 가는 인생앞에서 무엇을 자랑한들 다 도토리 키 재기 하는 어리석은 짓이다. 이유는 인간은 스스로 구원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수명이 다하면 버려지는 중고차와 같이 수명이 다하면 아스라이 사라지는 슬픈 존재이다. 기가 막힌 절망의 존재일 수밖에 없다. 무엇을 탐구하고 애써 보아도 다 놓고 갈 수밖에 없다.
– p.55
체험 없는 믿음은 오래가지 못한다. 하나님은 아담이 연약하여 넘어진 것을 보셨다. 하나님이 아담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기를 원하셨다. 아담이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체험하고 탕자와 같이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원하셨다. 억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게 아니라 온전한 마음으로 말씀을 순종하기를 원하셨다.
– p.143
그 돌아옴은 바로 에덴에의 회복을 상징하는 행복이다. 가로막고 있던 화염 검과 그룹을 헤쳐 버리신 예수님의 손길을 체험하는 행복이다. 탕자의 아버지는 탕자의 더러운 손을 잡았다. 내치지 않았다. 야단치지 않았다. 네가 버린 돈이 얼마나 되는지 아느냐고 따지지 않았다. 불쌍히 여기며 그를 끌어안았다. 채색 옷을 입히며 아들로서 인정했다. 아들이라고 선포했다. 이 놀라운 사랑에 탕자는 진심으로 개과천선을 했으리라는 것은 의심할 이유가 없다. 탕자는 변했다. 아버지가 일어나라 말라 할 필요도 없었다.
– p. 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