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가장 큰 화두는 ‘생명’이다. 이 말은 우리가 생명의 위기를 이미 목도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J. 몰트만(J. Moltmann)이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이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생태 위기로 인해 야기되는 생명 위기1는 곧 인간 위기다. 다시 말해 생태 위기는 생명 위기인 동시에 인간 생활양식의 위기다. 이런 주장을 명확하게 보여 주고 있는 단어가 ‘기후 변화’ 혹은 ‘기후 위기’다.
-p.22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사실에 그의 존엄함이 있으며 존재의 의미가 있다. 즉 인간은 자신에게 부여된 존재 그 자체로 인해 존중받고 존재의 의미를 지니는 인간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의 효용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존재 가치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만약에 우리가 인간의 가치를 그의 ‘기능성’과 ‘효용성’으로 국한시킨다면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과 불평등에 대해 우리는 말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미숙한 인간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학적 윤리학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는 존재로 이해한다. 이와 같이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고 하는 것은 비유적으로 하나님이 인간을 자신을 위한 영광의 도구로 창조하셨다는 말이다.
-p.78
기독교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생명은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에 거하는, 즉 영원한 생명이신 하나님 자신이 내 안에, 내가 하나님 가운데 거함으로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통해 가능한데, 기독교는 그리스도와 생명의 관계를 맺을 때만 참 생명을 얻는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통한 생명은 상호 내재 혹은 상호 관계에 의해 생성되며 기독교의 생명관은 타자의 생명이 곧 내 생명의 일부임을 인지하고 모든 생명의 살림을 중시하는 생명 사상을 가지고 있다.
-p.79
유감스럽게 우리는 공평성을 도덕적인 것으로 인식하기보다는 경제적인 것이나 정치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공평성의 사회적 기초가 연대성에 있다는 사실에서 이 문제 역시 도덕적인 것이고 종교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다.
-p.114
생명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죽음의 권세에 대한 저항이자 대안이다. 생명 주권인 하나님의 주권은 비인간적인 조건을 거부하고 죽음의 지배에 반대한다. 오히려 이것은 고차원의 인도주의적 자세를 취하면서 이루어 낼 수 있는 온전한 생명의 새로운 방식이 하나님 나라요, 생명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p.2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