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쌩 땅을 파라

$70.00 $49.00

저자 : 추귀환  |  출판사 : 도서출판 아이네오
발행일 : 2021-03-25  |  (175*245)mm 652p  |  979-11-85637-37-2
나는 감히 자서전을 써야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나는 ‘자서전이란 누가 보아도 아! 하고 놀랄 정도의 쓸 만한 이야깃거리가 있는 사람이나 쓰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다른 사람들에게 내놓을 만한 화려한 이력(履歷)이 없을 뿐 아니라 나 자신의 삶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016년 말 즈음에 갑자기 나의 아내 박경자 사모가 ‘자서전을 쓰면 좋겠다’고 제안을 하는 것입니다.
나는 한마디로 “No!!”라고 거절했습니다.
“내가 자서전을 쓸 자격이 있나? 적어도 자타가 공인할 만한 걸쭉한 사람이나 자서전을 쓰는 것이지, 내가 무슨 자서전을 쓸 일이 있나?”

아내는 이런 나의 자신 없는 대답에 다음과 같은 말로 용기를 주는 것이 아닙니까?
“아니, 자서전은 엄청나게 위대한 사람만 쓰라는 법이라도 있어요? 목사님이 걸어온 발자취를 솔직담백하게 기록하여 먼 훗날 우리가 천국에 간 후에도 우리 자손들이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들이 한 시대를 풍미하며 이렇게 신앙과 목회자의 삶을 살다 가셨음’을 글로나마 체감하고, ‘우리도 그분들의 삶을 본받아 이 길을 따라 가야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간다면, 그것만으로도 자서전을 쓸 만한 확실한 이유가 되는 것이고, 목사님이 걸어온 길이 알려지면 안 될 일이 그 어디에도 없는데 자서전을 쓰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어요?”

이에 ‘자서전을 쓴다면 더 유익하고, 은혜롭고,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있겠다’는 생각이 나의 마음을 흔들어 열게 한 것이 동기가 되어서, 나는 용기를 내어 자서전을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2012년에 ‘흔적’(痕迹)이라는 책을 출간(出刊)할 때도 ‘읽는 이들이 칼럼과 시사상식과 설교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고 주저하는 마음과 두려움이 앞섰을 때 성령님께서 ‘용기 있게 출판하라’는 감동을 주셔서 출판하게 되었는데, 지금도 독자들에게서 직·간접적으로 ‘참 좋은 책이고, 많은 유익이 된다’는 기쁜 소식을 듣기도 합니다.

세상에는 세 가지 철칙이 있습니다.
첫째는 비밀이 없고, 둘째는 공짜가 없으며, 그리고 해결 못할 문제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인생 역정에 숨기고 싶은 비밀이 녹아 있어 감추고 싶기도 하고, 어떤 것은 보여주고 싶기도 할 것입니다.
‘역사’(歷史)라는 단어는 ‘History’, 그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즉, 사람의 이야기가 역사인 것입니다.
시간으로 말하면 ‘크로노스’(Cronos) 흘러가는 계산적 시간과 ‘카이로스’(Kairos) 의미 있는 일들이 일어난 두 개의 시간 속에서 일어난 일들일 것입니다.
화려하고 호사스러운 삶이 아니었을지라도 나의 감추고 싶은 비밀마저도 카이로스적인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의 역동적인 섭리를 조심스럽게 공개하여, 조금이나마 유익을 추구하고자 하는 바람으로 용기를 내어 붓을 들게 되었습니다.
“나의 가족과 자손들이 먼 훗날까지 살아가면서 그래도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복 줄기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늘 확인하고, 또한 사실 관계적인 일들이 정직하고 솔직하게 공개되는 부분도 막혔던 담이 풀어지고 무너지듯이 그동안 궁금하게 여겼던 헝클어진 실타래 같은 일들이 확실하게 풀어지는 계기가 되어서 앞으로 더 좋은 미래를 바라보게 된다면 보람된 일이 아닐까?”

이것이 솔직한 나의 심정이기도 합니다.

이 책의 제목처럼 내 나이 18세, 1968년 8월 어느 여름날 전북 남원 소재의 고평교회(현 최봉진 목사 시무 장로교 합동측)에서 부흥회를 인도함으로 시작하여 2021년 5월에 목회성역(牧會聖役)을 마치니, 54년의 세월이 흘러 ‘인생은 짧고, 목회는 길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의 자전적(自傳的) 이야기를 통해 작은 흔적을 남기고자 하는 것입니다.
탈무드에는 정신분석의 대가 ‘프로이드’(Freud)의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상처 많은 나무가 아름다운 무늬를 남기고, 가시밭의 백합화가 찌르는 가시에 향기를 토하며, 잔잔한 파도로 익숙한 사공을 만들 수 없다. 그 사람을 이해하려면 그 사람의 어린 시절을 살펴보라.”

거창한 말들을 끌어다 옮긴 것 같으나 나 자신을 연관시켜 생각해보곤 합니다.
소위 출세나 성공을 이야기하려면 자서전을 쓸 일도 없습니다.
내 인생의 화려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서전(自敍傳)이란 순전히 자기 몸을 홀딱 벗기는 것입니다.
내 개인의 가난했던 과거의 삶 가운데서 느껴야 했던 창피함과 치부까지도 적나라하게 드러낼 일이기에 수사적 과장에 빠질 필요도 없습니다.
그리고 ‘누가 이 글을 읽어줄까?’ 하는 두려움이 있기도 하지만 나는 그마저도 극복하고 씁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다소나마 어떤 유익이 되었으면’ 하는 나의 작은 소망이 되기도 하겠습니다.

‘나’라는 존재(存在)는 지구상에 현존하는 70억이 넘는 사람들 속에서 오로지 하나뿐인 존재이며, ‘쌩 땅을 파라’는 자서전은 갓 70세를 넘긴 나의 인생의 경험과 신앙의 체험과 목회 54년의 파노라마(panorama)를 넘나든 나 자신의 역사입니다.

학력(學歷)은 두 개의 검정고시(중·고교), 네 개의 신학교와 두 개의 대학원을 거쳤고, 7개의 개척교회와 열 개의 기관 기성교회 목회사역을 거쳐 오면서 부족함과 부끄러운 발자취도 있지만, 감히 뛰어넘을 수 없는 미지의 정글을 헤쳐 온 길목마다 하나님이 강력한 손과 일곱 영의 눈으로 살펴주셨기에 인생은 짧고(18세), 목회는 깁니다(54년).
질경이 같이 질긴 세월의 길섶에서 모질게도 잘 견뎌 이제는 그나마 목회의 짐을 내려놓고, 나의 남은 인생의 삶을 새로이 펼쳐가다가 천상으로 이사 가렵니다.

끝으로 모든 영광 하나님 아버지께 올려드리고, 나의 아내와 아들 가족(경희, 수), 딸 가족(진협, 호·하·휘)과 기쁨을 나누고, 자자손손(子子孫孫) 우리 가족 영원히 천국에서 함께 할 것입니다.

* 헌사

모든 영광 하나님께 드립니다.

이 책을 손에 들고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시노라면
곡괭이를 들고 쌩 땅을 파내려 가는 한 인생의 굴곡진 삶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제 그 인생 4막(四幕)의 장막을 함께 바라보면서 쌩 땅을 파봅시다.

일곱 등대(촛대)는 이스라엘 광야 통과시(출 25장) 모세에게 지시한 그대로 만든 금촛대로 성소를 밝히는 하나님의 칠 영, 즉 하나님께서 온 땅을 살피시는 눈으로(슥 4:10, 계 3:1) 지금도 온 우주를 살피시고, 우리 각 사람을 살피고 계십니다.

숫자 54는 54년 성역을 나타내는 것으로 인생은 짧았고, 목회는 길었음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 막(幕)을 올리며

하나님께서는 자연계의 순환 고리를 아름다운 조화로 일 년 12개월 365일 5시간 42분 27초의 시간 속에 사계절 봄(춘; 春)·여름(하; 夏)·가을(추; 秋)·겨울(동; 冬)의 한 편의 드라마를 제작하여 생명의 연극 4막(四幕)으로 연출하셨습니다.
이렇듯 인생도 소년(少年期)·청년(靑年期)·장년(壯年期)·노년(老年期)이라고 하는 인생의 사계절 드라마에서 하나님은 총감독으로서 메가폰의 주권을 통해 인생의 무대에서 한 편의 드라마를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인생 연기에 조연은 없습니다.
모두가 주연입니다.
그리고 엔지(No Good), 즉 다시 반복이 없습니다.
인생은 연습이 없기 때문입니다.
출생에서 죽음까지(요람→무덤) 단 한 번의 기회로 시간과 공간 안의 삶의 무대에서 치열한 선역(善役)과 악역(惡役)이 있을 뿐입니다.

이것이 저의 자서전을 인생 4막(四幕)으로 나눈 이유입니다.
제1막 소년이여! 꿈을 가지고 씨를 뿌려라!
제2막 청년이여! 꿈을 잘 가꾸어라!
제3막 중·장년이여! 잘 거두어라!
제4막 노년이여! 잘 누리다 잘 가자!
그리고 부록으로는
삼승제일교회 삼십 삼년! 삼삼하고 알싸한 이야기와 삼승제일교회 교회연혁,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 경성노회 노회장으로 활동한 이야기와 더불어 하나님의 부름과 함께 받았던 칠영의 계시를 기록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의 이 자서전은 전문적인 학문을 위한 연구논문이 아닙니다.
문학이나 철학적 지식이나 기도서도 아닙니다.
한 시대 역사의 수레바퀴 그 톱니에 끼인 삶을 살아온 작은 목자인 저의 드라마틱(dramatic)한 삶의 이야기입니다(히스토리; History).

1885년 4월 5일 미국 장로교회가 파송한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 선교사에 의해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상륙하여(조선말) 한국 기독교 역사에 첫 단추를 꿴 복음시대의 발자취를 따라 1968년 18세 소년이 목회에 첫 발을 내딛어 험지와 정글지대를 누비며 2021년까지 도달하여 이제는 현역무대의 종착역에 당도하여 목회의 뒤안길목인 원로 연기자로 물러섬으로 무대에서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대체적으로 대행업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미사여구 가득한 자서전을 출간한다고 알고 있지만 저는 결단코 그 누구의 도움의 손길을 받거나 의탁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밝힙니다.

책 제목에서부터 표지의 전면과 후면 그림에 이르기까지 저의 손끝에서 시작하고 끝을 맺었음을 정직하게 밝혀 드립니다.
그리고 이 자서전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께서 혹시 과찬하시거나 과소 비교평가하시는 것도 삼가 주시고, 쌩 땅을 파내려가는 마음으로 책(자서전)을 읽어주시기를 감히 요청하면서 이러한 제가 하나님을 만난 것처럼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도 하나님을 만나고, 그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 가운데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여주의 넓고 푸른 들녘에서
추귀환 목사

* 서평

교회가 세상을 걱정하기보다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목회자로서 그 책임감으로부터 자유로울 분들이 얼마나 있을까요?
교회를 향해 비난의 도를 넘어 대적하는 사람들에게 맘속으로 자신이 목회자임을 부끄럽게 여기며 그들에게 대신 사과라도 해야 하는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하고 진단하며 대처해야 할까요?
목회비전을 성취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왔어도 그것을 포기하고, 주어진 환경 속에서 자족하며, 오직 사랑하는 양떼들을 돌보는 목회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삶의 어두운 부분을 감추려 하고, 밝고 훌륭한 부분만을 들어내고 싶어 합니다.
목사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 『쌩 땅을 파라』의 저자 추귀환 목사님은 오히려 자신의 지나온 세월동안 그가 살아왔던 부끄러운 모습을 매우 솔직하고도 적나라하게 들춰내고 있습니다.

왜 일까요?
자신의 어둠과 고통스러운 인생의 여정 속에 나타나 보여 주신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랑과 은총,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찬양하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요?
더 나아가 자신과 같은 부끄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사랑을 알려주면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체험하게 하여 새로운 인생을 펼칠 수 있도록 안내하기 위함이 아닐까요?

본서의 저자는 물량주의를 추구하는 현대사회에서 초야에 묻혀 목회하면서도, 영혼구령에 가치를 두고 행복해하는 보기 드문 목회자인 것 같습니다.
저자는 유년 시절부터 성장 과정, 그리고 신학교 입학에서부터 목사 임직, 심지어 가정사와 목회현장에 이르기까지, 때로는 부끄러운 일들까지 소상하고 적나라하게 밝히며, 지난날을 회개하고 미래지향적인 삶을 살아 온 진솔한 목사라는 생각이 듭니다.

추귀환 목사님의 진솔한 인생의 고백이 담겨있고, 그의 고통스런 삶의 여정 속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의 위대함을 간증하는 이 책은 하나님 없이 인생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삶을 살게 해줄 지혜를 갖게 해 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자에게 만남의 복을 주셔서 교회와 가정을 섬기는 일꾼도 주시고 교회부지도 기증하는 사람도 붙여주셨습니다.
큰 교회의 청빙과 안정된 교회조차 단호히 뿌리치고 오직 기도와 하나님 말씀, 그리고 성령의 위로로 기쁨과 평안과 소망 중에 54년을 묵묵히 목회하여 온 겸손한 목사!

많은 목회자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연을 꿈꾸며 자신을 드러내기에 바쁜 시대에 스스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농촌 작은 시골 마을! 조연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마주하고 양 때들을 인도하여 온 추귀환 목사님의 굴곡진 삶의 모습을 보면서 저 자신에게 있었던 낙담의 순간들조차 사치였음을 깨닫고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도의 수에 자유로울 수 없는 성공병에 시달리며 그 압박을 벗어나기 위해 세속적인 수단과 방법을 찾는 목회자들이 적지 않은 현실에서도 저자는 자신의 아픔과 성도들의 연약함에 말씀을 붙들고, 눈물로 기도하며, 오직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를 힘입어 묵묵히 정도를 걸어오신 진실한 목회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말로 다 형언할 수 없는 삶의 질곡에서도 잠시 낙담할지언정 절망하지 않고 열정적으로 달려오신 목사님의 사역의 편린은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새삼 깨닫게 해주며, 아직도 시대를 분별치 못하고 자신의 사명을 확신치 못하는 분들에게 큰 자극과 각성을 주리라는 기대를 갖게 합니다.

절망할 수밖에 없었던 지난날들도 동행해주셨던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처럼 주실 상을 기대하며 푯대를 향하여 달려오신 추귀환 목사님의 남은 삶의 여정에서도 은혜로 함께 하셔서 더 풍성한 꽃 봉우리를 피우게 하실 것을 기도합니다.

아이네오 출판사
대표 나상만 목사

· 헌 사 _ 쌩 땅을 파라 _ 3
· 권두언 _ 붓을 들고서 _ 4

· 축사의 글
1 _ 손달익 목사(서울 서문교회 _ (통합)제97회 증경 총회장) _ 12
역경을 딛고 극복한 생생한 도전의 삶을 간증하는 회고록이 되기를
2 _ 전계헌 원로목사(익산 동산교회 _ (합동) 제102회 증경 총회장) _ 14
62년 전 동산교회 개구쟁이 성역 54년 마친다비!!
3 _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_ (합동) 제105회 (현)총회장) _ 16
저는 추귀환 목사님을 종종 뵐 때마다 숨겨져 있는 저력의 목회자라고 느꼈습니다.
4 _ 신용현 목사(평택 평안교회 _ (개혁) 총회장) _ 18
함께 신학생 시절 밀가루 수제비로 보릿고개보다 더 험난한 쑥죽 고개를 넘으면서
5 _ 조복희 목사(백암중앙교회 _ 용인기독교총연합회 (현)회장) _ 20
사람(人) 내가 만난 사람 추귀환 목사
6 _ 양대규 목사(이천 믿음의교회 _ (현)경성노회장) _ 22
노회장으로 노회를 섬기실 때 매우 독특한 코이노니아를 통해서
7 _ 이성룡 목사(대전 평강교회 _ (대신) 증경 노회장 _ 24
사선을 넘나들던 기도의 사람 복음의 풍운아
8 _ 강희호 목사대구 서촌교회) _ 28
내가 목사가 되어 목회를 하면서 평강교회에서 체험한 은혜로 지금도
9 _ 박윤태 장로(일산 삼위교회 시무장로 _ DMGMORI KOREA 부사장) _ 31
주님께서 가라사대 하면 가시고 오라사대 하면 오시는 분이기에
10 _ 명노종 장로(삼승제일교회 시무장로 _ 장호원 대동기업사 대표) _ 34
추귀환 목사님은 성직 일생으로 살아오셨다.
11 _ 추요환 장로(서울 마천 세계로교회 장로 _ (주)브이엔케이 대표) _ 37
형수님 박경자 사모님의 사랑과 헌신이 없으셨다면

· 여는 글 _ 막을 올리며 _ 40
· 목차 _ 막을 올리며 _ 40

_제1막_ 소년이여! 꿈을 가지고 씨를 뿌려라! · 53
· 6·25 포성보다 나의 응애 울음소리가 먼저 터졌다 _ 57
· 여덟 개 입을 먹이는 26세 젊은 엄마 – 못 말리는 두 아들 _ 58
· 철부지 삼총사, 빵집 습격 사건과 자진 퇴학 _ 60
· 철의 여인 젊은 엄마! 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했다 _ 63
· 좋은 신발 꼼짝 마! _ 65
· 종치는 소년, 양철지붕 돌 던지고 개구쟁이 대장 _ 67
· 공동묘지는 나의 놀이공원 _ 70
· 정안수(정화수) 떠놓고 빌어대는 어머니 _ 71
· 꿈에 그리던 아버지! 칠 년 만에 살아서 오다 _ 72
· 술독에 빠진 아버지 _ 74
· 하늘 천(天) 땅 지(地) _ 75
· 시멘트 마루 원조는 우리 집 _ 77
· 순풍 순풍 산부인과 _ 80
· 마침내 울음 그친 어머니 _ 82
· 어린 소년 귀환이 드디어 교회 입성 입교하다 _ 84
· 사도행전적 성령 역사 일어나다 _ 87
· 자살은 지옥 직통 보여주심 _ 89
· 자칭 안과의사, 선무당 식 부모님의 돌출행위 _ 91
· 드디어 예수 영접, 빛이 어둠 속에 비치다 _ 96
· 기로에 선 소년의 길목 _ 98
· 운명아! 비켜라! 하나님의 섭리가 나가신다! _ 100

_제2막_ 청년이여! 꿈을 잘 가꾸어라! · 115
· 바람도 자고 가고 구름도 쉬어 가는 추풍령 고개 넘어 _ 119
· 기차에 치어 죽을 뻔하고 손을 든 아버지 _ 122
· 팔도강산 껄렁패 내 손에 걸려들다 _ 128
· 대구에 입성하다 _ 129
· 쌀밥 한 그릇, 해골 102구 파묘작업하다 _ 133
· 입영열차 타고(1971. 1. 19.) _ 140
· 군인교회로 들어가다. 육군 28사단 교회부임 _ 143
· 군인교회 목회사역의 길로 들어섰다 _ 146
· 면회실 실장으로 발탁되다 _ 148
· 추락한 면회실이 새로 태어났다 _ 150
· 옥계 장로교회 개척의 계획을 세우다 _ 156
· 개척교회 이렇게 하라! 성령의 감동을 받다 _ 159
· 정미소 집 마루에서 옥계 장로교회 개척을 시작하다 _ 160
· 언덕 위에 교회 성전 터를 주셨다 _ 163
· 송편 호통치고, 하룻밤 열세 번 설사, 철저히 회개하다 _ 166
· 보고 싶다 외치다가 천국 가신 방앗간 권사님 무덤에서 하모니카를 불었다 _ 168
· 제대하여 면회실과 옥계교회를 떠나다 _ 169
· 군 제대 직후 갈림길에 서서 3일 금식기도하다 _ 171
· 하나님의 음성(하나님의 칠 영)을 듣다(1973.12.3.23:30) _ 172
· 선지동산 영남신학대학교 합격, 입학하다 _ 173
· 거액 등록금 장벽 하나님이 뚫어주셨다 _ 175
· 성령의 불이 붙었다 _ 177
· 난생 처음 포드 자가용 타고 _ 178
· 문석이는 철학자, 이놈을 이겨야 산다 _ 179
· 추 전도사를 빨리 쫓아내시오! 그리고 칠곡 양로원으로 _ 182
· 대구 중동교회 개척과 성주 신계교회와 동원교회 주말 목회하다 _ 185
· 무당 돌아오고, 불이야! 소동 _ 189
· 대구기도원 총무로 발탁, 엘리야 선지 겉옷, 기적의 등록금 _ 194
· 선지동산 영남신학에 성령의 불을 붙였다 _ 206
· 대구교도소 재소자 사상범(간첩) 83명 예수 영접 세례 역사적 사건, 포항제철소 견학하다 _ 211

_제3막_ 중·장년이여! 잘 거두어라! · 223
· 쌍 칠 년도 1977. 5. 17. 영신축제, 결혼축제, 5월의 신부 만난 날 _ 227
· 청혼은 쉽고, 허락은 벽에 부딪혔다 _ 230
· 새벽 제단에 직통 계시 받은 장모님! 두 손 번쩍 들었다 _ 233
· 경상도 문둥이와 전라도 개똥새(와이카노와 아글씨 말여잉) 드디어 물 만났다 _ 235

* 서울 정릉 정문교회 전도사 부임하다(1978. 1. 23.) _ 239
· 아들 이삭이 세상에 태어나다. 무식이 파도치고 유식이 출장 간 담요 뒤집어 쉬운 사연 _ 244
· 개척자금도 싹 쓸어가 벼랑 끝에 서다 _ 246
· 생사결단 40일 금식기도 얍복 강가 야곱 절체절명(絶體絶命) 기도판 씨름판 _ 248
· 40일 금식기도 돌입하다 _ 251
· 전도사 양반! 걱정 마소! 하나님이 쓰신다 카이! _ 254

* 충남 서산 관리교회 개척 부임하다(1979. 4. 3) _ 257
· 충청도 태안 관리교회 개척 시작하다 _ 257
· 무당다리 세 토막으로 부러지다 _ 262
· 귀신들린 38세 여인에게서 귀신을 쫓아내다 _ 267
· 소 살려 주세유! 절간마다 절한 후 일 년 내 사망(하나님의 진노) _ 271
· 지혜(딸)가 태어나다. 땅콩 밭 맨 이튿날 새벽 _ 276

* 서산 남면교회 부임하다(1981. 11. 11.) _ 283
· 관리교회 사임하고 남면 장로교회 부임하다 _ 283
· 남면교회를 새로 개혁하고 개척하라! 최재철을 깨뜨려라! _ 287
· 쌩 땅을 파라! 곡괭이 한 자루 벌판에 던져졌다 _ 290
· 이렇게 하라! 헝겊은 가위로! 나무는 톱으로! 돌멩이는 망치로! _ 292
· 이 개 새끼야! 그 남면교회는 목사 자리야! 당장 나가 이 새끼야! 꺼져 버려! _ 295
· 통합측 교단에서 총신 합동측 열차로 갈아타다 _ 296

* 성남 판교교회 이동하다(1982. 2. 10.) _ 299
· 무작정 판교교회로 돌진했다 _ 299
· 아니! 누가 이렇게 이사 오라 했어요? _ 302
· 목매달아 죽은 방! 육 개월째 빈 방, 여호와 이레였다 _ 304
· 아들 이삭! 포니 원(현대승용차) 덕분에 찾은 재미있는 일화 _ 305
· 신명기 8장을 보라! (1982. 11. 13. 토 오후 4시) 1983년 총신 졸업하다 _ 308
· 잊지 못할 판교의 추억들 _ 309

* 용인 근삼교회 개척 부임(1983. 12. 23.) _ 312
· 천막 열두 평 용인 근삼교회 개척교회 시작하다 _ 312
· 백암 술꾼 만배가 예수 믿는다네! 소문은 성령의 바람을 타고 _ 321
· 가가호호 부서지는 바알 우상, 세워진 십자가 _ 324
· 은혜 역사 강한 곳에 마귀 장난 짓궂다 _ 329
· 부추 밭과 이삭이 위기일발 백만 원 부도 발생 _ 330
· 아빠, 언제 밥 먹어? _ 332
· 잘못 찾아온 택시 한 대 _ 337
· 갑자기 건축가 보내신 하나님의 특별섭리 _ 338
· 앗! 이럴 수가! 절대농지를 상대농지라고 _ 340
· 나의 유언이다. 아들아! 근삼교회 짓게 땅 줘라! _ 342
· 개미군단 건축재료 준비작전 _ 343
· 자살소동 _ 346
· 세 번째 성전 터 또 물거품 _ 348
· 네 번째 도전 (4) 고난과 죽음의 수를 넘자 _ 350
· 서울 연희동 007 여리고 작전 _ 352
· 신 장로를 접수하라! _ 354
· 만배 집사의 핵폭탄 발언 _ 356
· 방앗간을 주겠소 _ 357
· 제3한강교 주유소에서 5시에 만납시다 _ 359
· 마을공동회의와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다. 그 이튿날 목사안수를 기쁘게 받다 _ 361
· 선교원(교회 어린이유치원) 개설하다 _ 368
· 구역예배의 대포소리는 진노의 곡소리로 _ 371

_제4막_ 노년이여! 잘 누리다 잘 가자! · 435
· 교회 부흥과 학업 정진 _ 440
· 여주 떠날 세 번의 기회와 못 말리는 둘째 처남(박윤태 둘째 장로) _ 443
· 세 장로들과 합동작전 _ 445
· 천국 이사 가신 날, 주여! 주여! 소천하셨네 _ 451
· 죽음에서 건져주셨다 _ 454
· 사택건축 모험하다(1997. 7. 10.-1997. 11. 17.) _ 458
· 장난감 자동차놀이에서 육군참모총장(대장) 운전병으로 변신하다 _ 460
· 드디어 육참 총장 운전사가 되었다(축복기도 예언 성취) _ 462
· 국방부 육군 참모실! 서울로 입성하다 _ 464
· 딸 지혜(아름) 전격적으로 중동 스턴트 선교 가다(2004) _ 467
· 씨맨(C.C.C.) 지혜·진협(신랑·신부) 만나다(2006.10.) _ 470
· 삼총사(호·하·휘) 가족 필리핀과 우간다 정글을 지나 삼승제일교회로 오다(2017) _ 471
· 아들 이삭! 나는 사장이 될 거야! _ 476
· 엥거스 월드미트(다주) 창업(2007. 11.) 그리고 결혼하다(2009. 10.) _ 479
· 가족을 넘어 명문 명품 가문으로! (즐거운 가족여행) _ 484

_부록1_ 삼승제일교회 삼십 삼년! 삼삼하고 알싸한 이야기! · 489
· 삼승 삼십 삼년 삼삼하고 알싸한 이야기 _ 490
· 삼인방 권사 삼총사(1) 권·박·엄 _ 512
· 찾아온 지원발길, 거절한 용기(1989.7.23.) _ 516
· 故 홍을순 집사! 짧은 인생 두 남매 두고 떠나다 _ 519
· 젊은 부부 아쉬운 작별, 최금규·염미선 _ 521
· 보건소장 서지현, 권석배 부부 로맨스 _ 523
· 용감하게 떠난 김욱관·박순덕 선교사 _ 525
· 청년회와 남전도회 조직한 황규진·신정원(신혼의 단꿈) _ 528
· 좌충우돌 진용구! 성경을 화장실 거시기로 _ 533
· 해군 대령 출신 김형봉 집사 부부 _ 540
· 마룻바닥을 내리치면서 나를 전도사로 쓰세요! (2003) _ 544
· 삼인방 권사 삼총사(2) 허·박·홍 _ 548
· 그를 ‘홍 천사’라 부르고 싶다 _ 551

· 부록2_ 삼승제일교회 교회연혁 _ 561
· 부록3_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 경성노회장 _ 583
· 부록4_ 하나님의 부름과 칠영의 계시를 받고 _ 621
· 붓을 놓고서 _ 648

역경을 딛고 극복한
생생한 도전의 삶을 간증하는 회고록이 되기를

하나님의 은혜가 참으로 놀랍습니다.

추귀환 목사님과 저는 1974년 영남신학교 신입생으로 처음 만났습니다(영신 24회).
우리는 선지학도로서 형설지공(螢雪之功)으로 졸업할 때까지 각고의 노력 끝에 학문과 영성의 준비를 하여 목회의 좁은 길을 걸어 왔습니다.
그로부터 반세기 가까운 세월이 흘러 어느덧 우리 두 사람은 모두 은퇴를 준비해야 하는 초로(草露)의 목회자들이 되었습니다.

추귀환 목사님은 신학교 시절부터 남달랐습니다.

1976년도 겨울방학 때 총학생회 주관으로 담당교수진과 학생회 봉사
전도단을 구성하여 경남 창녕군 지역 교회 특별봉사 전도집회를 나갔을 때
추 목사님이 주 강사로 설교를 맡아 불길 같은 성령의 말씀을 외쳐서 그 지역에 큰 영적 파장을 일으켜 총학생회 전도단을 놀라게 한 사실을 밝혀보고 싶습니다.

목사님은 신학교 시절부터 전도사로서 교회를 개척하며 사역했고, 교도소 강사, 부흥회를 인도하는 강사로서 종횡무진(縱橫無盡) 활동하며 매우 바쁜 일상을 보냈습니다.
목사님은 놀랍고 담대한 사역을 펼치면서 당시 모두를 감동시켰던 동료였습니다.
그 후 나는 예장 통합에, 추 목사님은 예장 합동 교단에 한국교회 양대 거대한 산맥 줄기를 타고, 노선은 달라도 목적은 목회의 길이었기에 서로가 힘껏 달려왔습니다.
불가능에 도전하는 사역자의 거장(巨匠)으로 54년이란 반세기를 넘어 기나긴 목회여정을 돌고 돌아 이제 조용히 마무리 할 시점에서 남은 생애에 또 다른 도전을 꿈꾸며 남은 푯대를 향해 달려갈 것입니다.

저는 추귀환 목사님이 수많은 역경을 딛고 극복한 생생한 도전의 삶을 간증하는 회고록(回顧錄) ‘쌩 땅을 파라’는 자서전을 출판하게 된 것을 동기 동료로서 매우 기쁘게 생각하며, 많은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과 은혜를 끼치리라 믿으면서 일독을 권해 드립니다.

다시 한 번 추귀환 목사님의 탁월한 목회적 삶을 존경하며, 사모님과 가족 위에 하나님의 크신 은총과 축복이 넘치시길 간구합니다.

목사님! 사모님!
참으로 수고 많으셨습니다.

손달익 목사님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제97회 증경 총회장
기독교방송 CTS 이사장
서울 서문교회 당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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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년 전 동산교회 개구쟁이
성역 54년 마친다네!

저는 전라북도 익산시 동산동에 소재한 익산 동산교회에서 37년을 담임목사로 시무하고, 2019년 정년 은퇴와 함께 원로목사 추대를 받았습니다.
동산교회는 6·25 전쟁으로 피난 온 한 가정에 의해서 설립되어 금년에 교회 역사가 70년이 됩니다.

60년 전,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소년은 몹시 개구쟁이로 교회는 다니지 않았으나 교회가 조용히 예배드리는 시간에 갑자기 두꺼비집 전기 스위치를 내리는 장난을 치거나 종각에 올라가서 매달린 종을 치고 도망가고, 어떤 때는 예배당 함석지붕에 큰 돌을 던져 예배를 못 드릴 만큼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예배를 훼방하는 짓을 반복하는 대단한 꾀돌이였습니다.
이에 교회는 예배시간만 되면 신경을 곤두세우고 합심기도까지 했으며, 교회 청년회에서는 ‘반드시 잡겠다’면서 체포 조까지 결성하였으나 상당한 시간이 흐르도록 잡을 방도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상당한 시간이 흘러 ‘소년’은 드디어 청년들에 의하여 붙잡혔습니다.
그가 바로 소년 ‘추귀환’이었습니다.
대체적으로 그런 아이들을 잡으면 심하게 꾸짖고 혼쭐을 내든지 아니면 적당한 매질을 한 후 훈계를 하고 보냈는데 당시 주일학교 교사였던 ‘조상두’ 선생님은 꾸지람 대신 부드러운 손길로 철없던 소년을 껴안아주고, 오히려 예수의 사랑으로 품어서 감싸 주었다고 합니다.
이에 개구쟁이 소년의 마음은 감동되어 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 후 ‘조상두’ 선생님은 동산교회 장로님이 되셨고, ‘추귀환’ 소년은 그때부터 신앙으로 성장하여 주경야독으로 선지동산 신학도의 길을 갔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18세 소년시절부터 부흥회를 인도하는 특별한 은사를 받아 목회를 시작하여 목사가 되었고, 그로부터 파란만장(波瀾萬丈)한 험로(險路)의 54년 목회의 사역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제가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동 교단 제102회 총회장으로(2017-2018) 교단을 섬길 시기인 2018년 7월 5일 주일, 60여 년 만에 개구쟁이 소년이 목사로서 경성노회 노회장을 역임하며 사모님과 함께 동산교회를 방문하셨는데, 온 교우들이 매우 은혜롭게 환영해 주어서 예배 설교 시에 장난꾸러기였던 지난날의 사연을 털어놓으며 한바탕 웃음바다를 이루었고, 큰 기쁨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추 목사님과 저는 동 교단 총회장과 노회장이라는 신분으로 만나서 이런 귀중한 시간 속에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였음을 실감했습니다.

추귀환 목사님은 어린 시절 개구쟁이 모습대로 열정적인 목사님이십니다.
54년이란 기나긴 목회의 고난도(高難度)의 길을 걸어오며 그 누구보다도 험지 협곡을 누비면서 개척자요 목회자로서 불굴의 투지로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는 사명과 열정으로 수없는 고비를 무릎으로 걸어서 오직 사명자로서 잘 견뎌 결국 승리자의 모습으로 목회(牧會)를 은퇴하여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이제는 원로목사로 추대 받아 뒤에서 묵묵히 주님을 바라보시며 값진 여생(餘生)의 삶과 행복이 가득 넘치시길 바라며, 사모님과 온 가족 위에 주님이 축복과 칭찬으로 보상되어지기를 기원합니다.

전계헌 목사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제102회 증경총회장
익산 동산교회 전계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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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져 있는 저력의 목회자

저는 추귀환 목사님을 종종 뵐 때마다 숨겨져 있는 저력의 목회자라고 느꼈습니다.

지구촌 최대 축제인 세계 제24회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해인 1988년도에 제가 가락동 지하상가에서 맨주먹을 쥐고 맨땅에 헤딩하며 개척자로 십자가 아래에서 청춘을 불태우던 가난하고 외로운 시절 사명자의 길을 가고 있을 때 당시 노회 목사님들이 찾아와서 따뜻하게 격려해주시던 일이 떠오릅니다.

그때 추귀환 목사님께서 제 손을 굳게 잡아주시면서 용기와 희망을 주셨고, 유독 저를 격려하셨습니다.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세월이 흘러서 저는 어느덧 신도시 대형교회의 중견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추 목사님께서는 54년의 성역을 드디어 승리하시고 마침표를 찍고 은퇴의 뒤안길로 가신다니 너무 아쉽습니다.
목사님은 1960년대 보릿고개를 수없이 넘으시면서 복음의 씨를 뿌리기 위하여 아골 골짜기와 같은 험지 협곡의 정글지대를 종횡무진 거침없이 누비시며 도시와 농촌교회의 목회자로 달려오셨습니다.
또한 개척자로 가시는 곳마다 십자가를 여기저기 세우시며 때로는 성령의 불을 일으키는 부흥사로서 한 번뿐인 인생을 아낌없이 주님을 위하여 바치신 분입니다.

저는 추 목사님을 종종 뵐 때마다 불멸(不滅)의 목회자로 느껴왔습니다.
추귀환 목사님처럼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복음을 위하여 희생하신 숨겨진 목회자가 계셨기에 한국교회가 오늘의 부흥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추 목사님과 같은 사명자들의 눈물과 희생이 한국교회가 세계적 부흥시대를 이끌며 선교의 대역사를 이루는 데 밑거름이 되고, 미래를 향하는 저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아! 반세기를 넘나든 54년의 목회자의 좁은 길 속에 또 좁은 길을 걸어오신 추 목사님 성역의 가시밭길! 진정으로 존경을 표하고 싶습니다.

어느 날 추 목사님께서 전화로 저에게 ‘자서전을 출간하는데 글을 한 문장 써 달라’고 부탁을 하셨습니다.
그때에 저는 목회 성역 54년이란 말을 듣는 순간 “와∼!” 하며 가슴이 찡했습니다.
그리고 추 목사님께 “정성껏 써드리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정성껏 쓴다 해도 제가 어떻게 54년의 성역을 글 몇 자로 쓸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이렇게나마 제 마음을 쏟아서 써드리니 저도 기쁩니다.
오직 주님의 십자가만 바라보고 묵묵히 걸어오신 추귀환 목사님의 54년의 성역을 기록한 자서전을 출판하게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부디 남은 생애에 사모님과 자녀 가족 모두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평강과 축복이 가득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소강석 목사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제105회 총회장
새에덴교회 당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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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함께 신학생 시절 밀가루 수제비로
보릿고개보다 더 험난한 쑥죽 고개를

존경하는 추귀환 목사님께서 거룩한 성역을 마치고 은퇴와 더불어 자서전을 출간하게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하나님이 주신 성역 54년을 마치시는 추귀환 목사님은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하나님의 큰 은혜를 입으신 목사님이십니다.
내가 아는 추 목사님은 특별히 일찍이 어린 18세 청년 시절부터 부르심을 받아 곧 사명자로, 부흥사의 사역자가 되어 전국을 누비며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긴 세월 따라 성역을 마치면서 지난날을 회고해보니 모든 목회자들이 그랬듯이 추 목사님에게도 파란만장한 일들이 많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1968년 호렙 산중 가시덤불에 불이 붙고, 갈멜산 산상의 엘리야처럼 하늘에서 불을 끌어내려 불붙이던 선지동산 기드온신학교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세상에 여러 갈래의 길이 많지만 나와 추 목사님은 하나님의 특별은총을 입고 오직 한 길로만 걸어온 동역자입니다.

경천절대·인애여기·의리견수·면학종신·친토일생!
5대 정신의 신학교 교훈 아래서 철저히
기도로 영성을! 말씀으로 무장을! 실천으로 공격적인 전도를! 그리고 애국 애족을!

이 세상 그 어느 곳에 이런 선지학교가 있겠습니까?
나는 감히 그 시대 최고의 영적 엘리트 코스였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보릿고개보다 더 험한 쑥죽 고개를 함께 넘고 넘으면서 쑥을 뜯어 넣고 끓인 밀가루 수제비로 주린 배를 채우며, 모래도 소화시키는 혈기방장(血氣方壯) 한창 식욕이 왕성한 10대 후반에 때로는 금식 아닌 굶식을 하며 배고파도 올라가고 쓰러져도 올라가서 산골짜기에 엎드려 함께 소나무를 붙잡고 눈물로 기도하던 선지성산의 옛 추억을 떠올리니, 그 시절이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내가 알기로 추 목사님은 그토록 힘들고 어려운 날들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오직 외길을 걸으셨으며, 목사가 된 후에도 누구보다 열심히 여러 지역 곳곳을 누비며 개척과 목회지를 변혁시키고 교회를 세우셨는데, 그러한 성역의 길을 은혜롭고 명예로운 축제로 마치니, 은퇴의 결실이 무척이나 감격스럽고 기쁩니다.
목사님의 평생 최고의 동역자 박경자 사모님께 격려와 진심어린 축하를 드리며, 아울러 목사의 자녀로 태어나서 성공하여 아버지의 성역을 마음과 정성 다하여 아낌없이 지원하고 응원하는 아들과 딸에게 축하를 드립니다.

지금도 나는 추 목사님에게 “오늘 수제비 먹고 싶냐?”고 하면서 배고팠던 고학도의 신학교 시절을 떠올리며 함께 걸어온 발자취를 이야기하곤 합니다.
이제까지 먼 길을 걸어왔습니다.
성역 54년의 종착역과 그 달려온 애환에 얽히고설킨 사연을 그려낸 자서전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신용현 목사
대한예수교장로회(개혁) 총회장
평택 평안교회 담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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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人)
내가 만난 사람 추귀환 목사

가장 만나기 쉬운 것도 사람이고, 가장 얻기 쉬운 것도 사람이라네요.
하지만 가장 잃기 쉬운 것도 사람이랍니다.
물건을 잃어버리면 대체가 되지만 사람은 아무리 애를 써도 똑같은 사람으로 대체할 수 없답니다.
그래서 사람이 가장 중요한 것이지요.
그리고 한 번 잃은 사람은 다시 찾기 어려운 것이랍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사람답게 대하는 진실한 인간관계!
그것이 가장 아름다운 일이며, 진정 소중한 것을 지킬 줄 아는 비결인 것이랍니다.
인생에서 사람을 잃는 일이 최악의 실수가 아닐는지 생각해 본답니다.
항상 가까이 있는 소중한 사람을 잃지 않도록 서로 소통하며 자주 안부인사 나누어야 한답니다.

유난히도 매섭게 춥고 눈보라 치던 1983년 12월, 성탄절 축제 캐럴이 함박눈을 타고 울리던 날, 야무진 체구에 빛나는 눈동자의 추귀환 목사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나는 곧장 추 목사님을 백암 근삼리로 데리고 갔습니다.
거두절미하고 개척지로 향한 첫 날 용인민속촌에도 없는 쓰러져가는 초가집을 얻고, 80평 밭을 1년 계약으로 빌려 12평 천막을 치고 곧바로 개척 전투를 벌였습니다.

지금까지 40여 년간 휘몰아치는 목회의 깊은 질곡을 함께 울고 웃고 헤쳐 왔습니다.
근삼리에서 영적 전투로 대 부흥과 교회건축! 교회 터 문제로 네 번의 힘겨운 고비를 넘기고 마침내 성전건축의 개가를 올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추 목사님은 대구 도시개척의 꿈을 이루려고 떠났습니다.
참 못 말리는 동역자였습니다.
근삼리에서 갖은 고생을 겪은 후 안정된 목양지를 뒤로 하고 아무런 욕심이나 사심도 없이 깨끗하게 떠난 사람!
그 후 대구에서도 승리 성공적인 교회를 이루고 동일하게 여주 삼승제일교회로 이동하였고, 내가 대구에 가서 보고, 또 그 후까지도 욕심 없이 전·후임 간의 관계가 깔끔하여 의심할 만한 여지가 전혀 없었고, 삼승제일교회 33년 목회 마무리에도 청빙위원회를 조직하여 절차와 규정을 엄격하고 청렴하게 마무리 지었습니다.
나는 이 과정을 모두 지켜보면서 참으로 아름답고 감동적이라 느꼈습니다.

이제는 성역 목양 54년이란 길고긴 여정을 마치고 은빛열차를 갈아타고 사모님과 자녀 손(孫)들과 함께 행복열차 여행 길 삶의 정거장마다 축복이 넘치시길 기도합니다.
마지막으로, 나는 내가 만난 많은 사람들 가운데 가장 사람다운 사람을 만났습니다(추귀환 목사님·박경자 사모님). 추귀환 목사님은 지상 생애 평생 동지요, 장차 천국에서도 영원히 함께 할 친구이기 때문입니다.

이 자서전이 온 가족과 후대 사람들의 신앙과 인생의 삶에 유익이 되기를 바라고, 아울러 일독 추천을 드리면서 성역 54년을 마치심과 자서전(회고록)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조복희 목사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경성노회 증경노회장
용인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백암중앙교회 담임 목사

추귀환

– 가족 관계
· 박경자 사모
· 아들 : 추이삭 안수집사 (주)앵거스월드미트 대표이사
· 자부 : 강경희 집사 (다주 대표이사)
· 손자 : 수
· 사위 : 김진협 선교사 (C.C.C.-Gain; SOAP Movement 대표)
· 딸 : 추지혜 선교사 (C.C.C.-Gain; 민들레학교 교사)
· 손자 : 호연·하연·휘연

– 학력
· 전북 익산 출생(1949)
· 동산초등학교
· 중·고교(검정고시)
· 기드온신학교(김천)
· 영남신학대학교(대구)
· 총회신학교(서울)
· 합동신학교(수원)
· 한남대학교대학원(대전)
· 연세대연합신학대학원(서울)

– 목회
· 강남노회(1984, 목사안수)
· 제5221군인교회(군종근무)
· 연천 옥계장로교회(개척)
· 대구 중동교회(개척)
· 대구구국기도제단(강사)
· 대구기도원(총무)
· 대구교도소(전임강사)
· 대구산업단지교회(목회)
· 칠곡 복음교회(개척)
· 성주 신계교회(목회)
· 성주 동원교회(목회)
· 서울 정문교회(목회)
· 서산 관리교회(개척)
· 서산 남면장로교회(목회)
· 성남 판교교회(목회)
· 용인 근삼교회(개척)
· 대구 평강교회(개척)
· 여주 삼승제일교회(목회)

– 경력
· 부흥회(전국교회) 인도
· 엘림목양회 창립
· 경기경찰청 경목
· 여주합동장로교협회회장
· 수원노회장 역임
· 경성노회장 역임
· 총회 실행위원
· 총회 자립위원 이사
· 기독신문 이사

– 저서
· 바울신학과 사상(1976)
· 흔적(2012)
· 쌩 땅을 파라(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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