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와 삶에 관해서 “이것 아니면 저것” 식의 양자택일 입장은 신자의 삶에 대한 불완전한 처방이다. 왜 머리 혹은 가슴, 진리 혹은 열정, 교리 혹은 삶 이런 식으로 강조하는 것일까? 머리만 있고 가슴이 없으면 금욕주의적인 지식인을 만들어내게 된다. 가슴만 있고 머리가 없으면 말랑말랑하고 깊이가 없는 감정주의자가 되고 말 것이다. 풍성한 삶은 잘 구워진 “양쪽 모두”의 입장을 취할 때만 가능하다. 머리와 가슴, 진리와 열정, 교리와 삶이 함께할 때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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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복음주의 진영의 가장 큰 약점은 하나님을 잊은 것입니다. 우리는 경험, 행복, 마음의 상태에 관심이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영혼의 첫 번째 필요는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입니다.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의 잘못은 하나님과 잘못된 관계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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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한 친구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겸손해질 수 있을까?” 그 친구는 자신이 교만하다고 느꼈고 교만함을 어떻게 없앨 수 있는지 알고 싶어 했습니다. 그 친구는 나에게 특별한 치료책이 있어서 “이렇게, 아니면 저렇게 해봐, 그러면 겸손해질 거야”라고 말해주기를 기대했습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어떤 방법이나 기술을 갖고 있지 않네. 무릎을 꿇고 기도하라고 충고할 수 없네. 왜냐하면 자네는 곧 기도를 자랑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네. 겸손해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자네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네.” 이것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겸손은 당신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그분이 누구신지를 알게 되고, 그분이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깨닫게 되고, 결국 겸손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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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성령에 관한 성경 교리 중 가장 놀랍고도 주목할 만한 것입니다. 성령은 자신을 숨기시기도 하고 드러내시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성령은 언제나 그러하시듯 초점을 성자에게 향하게 하시기에 성령을 받았는지에 대해 확실한 테스트는 성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성자에 관해 무엇을 알고 있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성자 하나님이 실제로 느껴집니까? 이것이 성령의 사역입니다. 성령은 간접적으로 영광을 받으십니다. 성령은 항상 우리에게 아들을 향하도록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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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식이 항상 믿음 뒤를 따른다는 사실을 신약성경이 매우 분명하게 가르친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마차를 끄는 말 같습니다. 함께 묶여 있고 절대 떨어져 있지 않지만, 말은 항상 앞에서 마차를 끕니다. 믿음과 지식의 위치도 이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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